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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정체성

2020 대한민국의 역사적 정체성을 재고해보다.

by 이우

그간 대한민국에 믿을 수 없는 일들이 벌어졌다. 문재인 대통령에 이어 미 트럼프 대통령도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함께 군사분계선을 넘었다. 싱가포르와 하노이에서는 북미 정상회담이 어어졌다. 9.19 남북 군사 합의로 인해 비무장지대의 GP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평화지대화 되었다. 이에 여론은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남북간의 우발적 충돌 가능성이 사라졌으므로 적대관계의 종식이며 종전 선언으로 가는 과도기로 보는 이들도, 그럼에도 잇따른 군사도발을 하는 북한 때문에 국가 안보의 위기만 초래했다고 보는 이들도 있다.


이러한 외교노선 변화는 갑자기 진행된 것이 아니었다. 2018년 4월 27일 남북 정상회담과 같은 해 9월 19일 남북 군사 합의가 있기 이전부터 정부는 이미 노선적 의지를 보여왔다. 문 대통령은 취임한 지 7개월째 되던 2017년 12월, 중국 충칭에 있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를 찾았다. 청사에 방문한 건 역대 대통령 중 처음이었다. 그는 각료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했다. 바로 그곳은 광복 후 김구를 비롯한 임시정부 요인들이 기념촬영을 했던 곳이었다. 그리고 방명록에 이렇게 남겼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우리의 뿌리입니다. 우리의 정신입니다.'


문 대통령의 충칭 임시정부 청사 방문은 무척이나 상징적인 일이다. 그가 방명록에 남긴 '임시정부가 우리의 뿌리'라는 말은 앞으로 문 정부의 사상적 방향성과도 같은 말이었다. 그간 대한민국은 임시정부와 독립운동에 대한 조명을 등한시해온 것이 사실이었다. 정치적 이념의 갈등으로 분단되어 탄생한 국가이기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 임시정부와 독립운동의 역사는 사실 사회주의 노선과 깊이 얽혀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간 대한민국은 반쪽자리 독립운동만을 조명해왔다.


그 극명한 실례를 보여주는 것이 바로 여운형과 김원봉이다. 2006년, 국가보훈처는 여운형의 훈격을 두고 무려 세 차례에 거쳐 무기명 투표를 했다. 논란 끝에 2등급인 대통령장을 추서 받았다. 독립유공자의 서훈이 투표에 부쳐진 것은 전무후무한 일례였다. 논란이 된 이유는 바로 그가 독립운동가인 건 주지의 사실이었지만, 정치적 노선이 사회주의에 얽혀있기 때문이었다. 대표적 보수 언론인 조선일보는 이를 두고 사설을 통해 이렇게 밝혔다. "정부는 이번 조치가 독립운동에 대한 복권이지 공산주의에 대한 복권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해야 한다."


이는 김원봉도 마찬가지였다. 2019년 현충일, 문 대통령은 현충일 추념사를 통해 김원봉이 이끌던 조선 의용대가 임시정부에 편입되어 민족의 독립운동 역량을 집결했다고 언급했다. 이에 김원봉에 대한 독립운동 서훈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하지만 청와대는 '독립유공자 포상심사 기준 8번 항목'에 따라 김원봉은 서훈 불가하다고 공식 입장을 밝혔다. 8번 조항은 북한 정권 수립에 기여 혹은 적극 동조하거나 정부 수립 이후 반국가 활동을 하게 되면 포상에서 제외한다는 항목이다. 실제로 김원봉은 독립운동가이기는하나 해방 후 월북을 했으며, 북에서 6.25 전쟁 영웅 훈장을 받은 것은 물론 북한 고위직까지 지냈다. 그럼에도 그의 서훈 문제는 청와대의 국민청원에까지 올라 공론화되었다.


대한민국은 그동안 역사관을 통해 독립운동에 대한 경계선과, 건국이념을 조명하는데 신중을 기했다. 무려 대한민국의 역사 지식을 판가름하는 '한국사 능력 검정시험'의 유명 모 강사는 강의 도중 이런 말을 할 정도였다. "독립운동의 사회주의 계열에 대해서는 공부할 필요가 없어. 왜? 정치적 이념 문제가 아니야. 이건 시험에 나오면 사회적으로 너무 시끄러워 지거든. 그러니 출제 가능성 0%야." 심지어 지난 정부는 광복절과 이승만 정부, 유신 체제로부터 이어지는 대한민국의 역사적 정체성을 공고히 하기 위해 국정교과서를 도입했다. 거국적인 반발이 일었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3일 만에 국정교과서를 폐지했다.


역사란 무엇이길래 이토록 여론은 민감한 것일까. 역사란 단순히 연도와 사건을 나열하는 서술의 영역이 아니다. 오히려 시대의 정서와 의식, 그리고 국가적 행보마저 결정짓는 하나의 사상에 가깝다. 때문에 조지 오웰은 그의 저작 <<1984>>에서 이렇게 말했다. "과거를 지배하는 자는 미래를 지배한다. 현재를 지배하는 자는 과거를 지배한다." 영국의 역사학자 에드워드 기번은 <<로마제국 쇠망사>>라는 대작을 18세기 중반에 집필했다. 그는 난데없이 천팔백 년 전의 로마제국 역사를 집필한 것이 아니었다. 때는 제국주의 시대, 대영제국이 세계 곳곳에 식민지를 건설하던 시기였다. 지중해를 지배했던 로마제국에 대한 조명은, 곧 영국의 제국주의에 대한 사상적 변명이자 정서적 찬양이었던 것이다.


이번 정부가 열을 올리는 것은 대한민국의 역사적 정체성을 광복절인 1948년 8월 15일 이전으로 정서적 소급시키려 한다는 것이다. 그 출발점은 임시정부의 수립일인 1919년 4월 13일이 분명하다. 그간 대한민국은 국가적 정체성의 출발점을 광복으로부터 삼아왔다. 그 이전을 근원으로 삼지 않았던 이유는 그렇게 되면 국가적 정체성이 '국가'가 아닌 '민족'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분단국가가 하나의 정치체제가 아닌 민족적인 근원을 정체성으로 여기게 된다면 이는 국가 존립에 문제가 될 수 있다. 민족적 관점은 분단과 더불어 각기 다른 두 정치체제의 존립 자체를 그저 과도기적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민족적 관점은 대한민국에게 자칫 위험한 관점일 수도 있지만, 이는 아이러니하게도 국민적 정서와 불가분하다. 더 이상 민족국가의 개념이 적용되지 않는 서구 사회와 달리, 대한민국은 부정할 수 없는 엄연한 민족국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제한될 수밖에 없는 국가적 정체성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이 시대는 광복 이전의 시대에 계속해서 시선을 던지고 있다. 불가분한 민족적 정서와 시대가 그것을 종용하는 것이다. 그곳에는 이념이 아닌 민족이 있다. 과연 그곳에 뿌리를 조금씩 뻗고 있는 우리의 정체성은 어떤 자양분을 흡수할 수 있을까. 그렇게 된다면 우리는 장차 어떤 나무가 되어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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