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가 몰아치는 해안으로 가자

방황의 끝자락에서 부서지는 파도를 바라보며

by 이우

문득 바다가 보고 싶을 때가 있다. 바다 내음과 파도 소리를 따라 무작정 걸어본다. 머지않아 해안에 다다른다. 휴양지의 모래사장이라면 발이라도 담가 볼 테지만, 대서양의 파도는 매섭다. 자칫하다간 집채만 한 파도에 사라질 수도 있다. 주머니에 손을 찔러놓고도 파도가 두렵지 않은 듯 제법 멋지게 서 있을 수 있는 곳까지 나아가본다.


굽이치는 파도를 바라보노라니 우리는 말이 없어졌다. 참, 나는 베를린에서 나를 보겠다고 찾아온 독일 친구와 함께 절벽에 서 있는 중이었다. 언 일 년 만의 만남이었지만, 우리는 말을 아끼기 시작했다. 그때 크리스티안이 침묵을 깨며 말했다. “잘 봐, 파도는 어떤 형태도 없어. 물리학에서는 파도를 파동이란 형태로 그래프와 수식으로 나타내지만, 그딴 건 말도 안 되는 짓일뿐이야. 봐봐, 파도는 단 한 번도 같은 모습으로 나타난 적이 없다고.”


그렇다. 절벽에서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것은 불확실성의 향연뿐이었다. 끊임없이 몰아치는 파도. 매 순간 전에 없던 모습으로 웅장하게 밀려와 처절하게 부셔 저 나간다. “그래, 그 누구도 같은 파도를 두 번 보았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거야." 나는 답했다. 우리는 저 태초부터 몰아쳤을 파도를 찬미하고 또 경외하며, 자연은 불확실성으로 이루어졌다고 정의했다.

이때부터 우리는 말을 하지 않았다. 말은 파도 앞에서 어떤 의미도 없었던 것이다. 적어도 나는, 우리의 언어란 불확실성을 극복하기 위해 고안되었다고 생각한다. 인간 사회의 뜨뜻미지근한 것들에 결말을 내는 것은 언어이다. 소유권 분쟁에 마침표를 찍는 것도, 부부의 연을 친히 갈라 주는 것도 저 재판관의 한 마디이다. 어머니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것도, 연인의 사랑이 시작하고 끝나는 것도, 한 마디의 말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그렇다. 저 광활한 자연이 불확실성으로 쉴 새 없이 굽이치고 있는데, 어떤 말이 필요했겠는가. 모세의 십계도, 아브라함의 율법도, 무함마드의 계시도, 자신의 명증함을 뽐내기 위해 주렁주렁 각주와 주석 그리고 참고문헌을 단 상상 체계도, 고문서에 기록된 어느 왕조의 찬란한 영광도, 사랑하는 이를 찬미한 어느 시인의 메타포의 향연도, 저 광활한 불확실성 앞에서는 산산이 부서지고 마는 것이었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해안은 모히또와 꽃목걸이, 그리고 우쿨렐레가 어울리는 그런 해안이 아니다. 굽이치는 파도와 부서지는 포말, 그리고 해무(海霧)가 흩날리는 그런, 불확실성의 해안이다. 여기에 어둡고 춥다면 더더욱 좋을 것 같다. 이러한 해안으로 향한 이가 있다. 바로 파우스트이다. 지상의 즐거움과 쾌락, 그리고 안락함도 뒤로 한 채 파도가 몰아치는 해안으로 향한 파우스트의 행보는 의미심장하다고 할 수 있다. 모든 것이 산산이 무너지는 해안에는 도대체 무엇이 있는 것일까.


굽이치는 파도 앞에 선 한 인간. 그는 모든 것이 무너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살아온 시간도, 지나간 과오도, 뼈저린 후회도, 덧없는 미련도 무의미할 뿐이다. 하지만 파도 속에서 언제나 남겨지는 것이 있다. 파도에 산산이 무너지고 발가벗겨져 있을 뿐, 우리의 존재는 언제나 남루하게 남게 되는 것이다. 그때 남루한 존재로 살아가고 싶은 의지마저 없어진다면, 우리는 파도와 함께 불확실성 속으로 스며들면 된다. 하지만 우리는 남루한 모습으로 다시 살아가길 택한다. 폴 발레리의 표현을 빌리자면, 파도가 치고, 우리는 살고 싶어지는 것이다.


언제나 해안에서는 모든 것이 부서지고, 본질적인 무언가만이 남게 된다. 하나의 생각, 하나의 가능성, 하나의 희망만이 남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찬미해야 마땅할 인간의 습성이다. 이제 뒤돌아서 삶으로 돌아간 인간에겐, 파도마저 적이 되고 만다. 저 위대한 파우스트라도 된 것처럼 우리는 파도에 대항하고, 방파제를 쌓고, 간척 사업을 한다. 이오니아 해의 파도에 대항해 수상도시 베네치아가, 핀란드 해의 조류 속에서 예술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가 탄생한 것처럼 말이다. 불확실성에서 태어난 확실성은 언제나 아름다운 법이다.

파도가 부서지는 해안으로 가자. 그곳에서 남루하게 발가벗겨져 되돌아오자. 살아가기 위해. 언젠가 파도가 굽이치는 해안으로 다시 돌아갈 그 순간을 위해.



KakaoTalk_Photo_2018-02-12-03-57-47_74.jpeg 모로코의 라밧, 대서양을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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