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박한 꿈은 사기꾼들의 먹이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일까.
한 시인의 전화를 받았다. 출판사로 걸려온 전화였다. 업무를 보고 있었지만 절박한 목소리에 전화를 쉽게 끊을 수 없었다. 나는 하던 걸 내려놓고 그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그는 우여곡절 끝에 등단한 과정을 조심스레 꺼냈다. 한 문예지를 통해 등단을 했다고 했다. 꽤나 그럴듯한 문학적인 이름을 가진 모 계간지였다. 사실 나는 문학-출판계에 어느덧 몸 담은 지 6년 차였기에 이런 문예지가 벌이는 일을 잘 알고 있었다. 이곳은 문인들을 등단시켜 준다는 명목으로 돈을 받고 '등단증'을 파는 곳이었다. 일정 비용을 지불하면 자신의 원고가 실린 계간지와 더불어 등단증을 발급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등단증은 사실 유명무실한 종이왕관이나 다름없었다. 등단을 '증명'하는 그들의 정체가 미심쩍기 짝이 없다. 문학계와 출판계에 이렇다 할 영향력도 활동도 전무한 단체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문예지를 표방하지만 대외적으로 어떤 울림도 만들지 않은 채 그저 등단을 원하는 이들의 원고를 모아 출간하는 게 고작이다. 문인들에게 고료나 상금을 주는 게 아니라 오히려 작가들에게 돈을 받고 책을 판다. 문예지도 문제 투성이다. 한 번에 30여 명을 한 번에 등단시키고, 오탈자가 가득한 글을 교정도 없이 문예지에 싣고, 심지어 문예지에 레이아웃이 정해져 있어 원고가 넘치면 뒷부분을 그냥 날려버린다.
이들에게 절박한 문인들은 군침이 도는 비즈니스나 마찬가지이다. 등단이 간절한 이들의 원고를 책으로 만들어주고 등단증만 발급해주기만 하면 되는 간단한 일이다. 한 번에 30여 명을 70만 원가량을 받고 등단시키니 어림잡아도 2,000만 원짜리 규모의 수익 모델이다. 만든 책을 유통시키는 것도 아니니 출판사에서 고정 지출로 잡히는 물류비도, 홍보비도 들지 않는다. 제작 도서도 문인들에게 모두 팔아치우니 재고도 없다. 고료나 상금도, 인세도 없으니 다른 마진율도 크다. 그들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으니, 등단한 이들 중 자신의 책을 내고 싶은 이들에게 출판 서비스까지 제공했다.
그는 등단에 이어 출판까지 진행했다. 추가적으로 300만 원을 지불하고 책을 만들었는데 서점으로 납품될 줄 알았던 책 300권은 집으로 도착했다. 보내준 책 사진을 보니 디자인은 엉망진창이었고 대학가의 제본소에서 만든 것처럼 퀄리티가 떨어졌다. 자신의 책이 출간되며 작가가 되는 줄 기대하고 있었던 그는 집에 쌓인 300권의 책에 충격을 받았다. 그는 내게 물었다. "이제 어떻게 하죠?" 문예지 측에서는 고유도서코드인 ISBN도 발급받지 않은 채 책을 만들어서 서점 입고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나는 잘하면 독립서점 쪽에 입고는 할 수 있을 거라고 가장 현실적인 방안을 알려주었다.
그는 등단을 했더니 370만 원을 지출했고, 집에는 산더미처럼 쌓인 책 재고와 허울뿐인 등단증만 있을 뿐이었다. "그럼 이제 저는 어떻게 하죠?" 그는 이제 무얼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는 절박하게 작가가 되고 싶을 뿐이었다. "저는 작가가 맞는 걸까요?" 그는 다시 한번 물었다. 나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조심스럽게 이 등단증은 없었던 셈 치고 계속 써 보면 어떻겠냐고 말했다. 그리고 모아둔 원고가 있으면 함께하고 싶은 출판사에 투고도 해보고, 괜찮다면 내가 운영하는 출판사인 몽상가들에도 보내달라고 했다. 그는 알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이건 등단 제도가 만든 폐해였다. 문인에게 등단은 꿈만 같은 통과의례이다. 작가 지망생들은 모두가 등단을 목표로 열심히 달려가고 있다. 이렇게 등단에 얽매이니 등단을 이용한 사기가 성행하는 것이다. 그런데 등단이란 무엇일까. 과연 예술이란 게 자격증이 필요한 것일까. 주위에 등단을 하신 분들도 하나같이 말한다. 등단을 하고 삶이 바뀐 건 정말 하나도 없다. 등단 이후 전업 작가가 된다거나 세간의 큰 주목을 받지도 못한다. 애석하게도 등단을 하고도 이렇다 할 작품 활동을 하지 못하시는 분들도 있다. 이제는 그 의미가 점점 퇴색되어 신문사에서도 등단의 장인 신춘문예를 하나둘씩 폐지하고 있다.
사실 세계적인 대문호인 헤세, 도스토예프스키, 카뮈, 멜빌, 체홉 같은 작가들은 등단을 한 적이 없다. 그저 자신의 작품을 묵묵하게 집필해 오다가 우연치 않은 기회에 세상으로부터 인정과 사랑을 받은 것이다. 나는 작가란 세 가지의 자질이 있다면 등단을 한 것보다 더 큰 힘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작가라 불릴 때 부끄럽지 않은 자신감과, 자신의 작품을 사랑해 주는 독자층, 그리고 고유한 방향성을 갖고 묵묵히 나아가는 집념이 바로 그 자질이다. 이 자질만 있다면 등단은 필요 없다. 오히려 등단을 한 것보다 더 멀리 나아갈 수 있다. 부디 작가들이 너무 아프지 않게 자신의 길을 나아가기를 바라본다.
소설가 이우 : iam@theleew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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