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한 독서, 보여주기식 독서는 어떤 문화 경향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인가
텍스트힙이라는 신조어가 생겨났다. 이는 MZ세대를 중심으로 나타난 하나의 문화 경향을 지칭하며, Text와 Hip의 합성어로 독서를 힙한 문화로 여기는 풍조이다. 텍스트힙의 열풍이 불기 시작한 건 최근 뉴진스의 <Bubble Gum> 뮤직비디오에 이디스 워튼의 장편소설 <순수의 시대>가 등장하면서부터였다. 영상에서는 뉴진스의 멤버 민지가 이 소설을 흥미롭게 읽고 있는 장면이 연출된다. ”독서도 힙할 수 있구나“ 이 시대의 트렌드 세터 역할을 하고 있는 뉴진스의 독서 행위는 Z세대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뉴진스의 세례를 받은 순수의 시대는 베스트셀러에 등극하게 됐다.
텍스트힙의 열풍은 단순히 뉴진스의 영향 때문만은 아니다. 한편으로는 필요에 의해 형성됐다. 오늘날은 세상의 모든 콘텐츠가 숏폼으로 축약된 세상이다. 영화와 드라마도 이제는 리뷰 영상으로도 모자라 숏폼으로 파편화되어 재생산되고 있다. 또한 공영방송은 물론이고 뉴스 기사, 정부 브리핑마저도 숏폼으로 가공되고 있다. 여기에 각종 숏폼 챌린지 열풍은 MZ세대를 사로잡는 의무 목록으로 자리 잡게 됐다. 이들은 숏폼의 소비자이며 동시에 생산자가 돼야 했기에 숏폼에 지배되고 말았다. 이들을 숏폼으로부터 구원해 줄 새로운 무언가가 필요해졌다.
텍스트힙은 이들의 필요를 완벽하게 충족했다. 독서의 본질은 자발적 사고와 사유이다. 앉아서 가만히 숏폼을 보는 것과는 달리 텍스트는 능동적으로 에너지를 들여 계속해서 읽어나가야 한다. 숏폼 하나에 비하면 실로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이렇게 시간을 들여가며 읽게 되면 문장은 독자의 사고체계와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고유한 시선으로 서사를 형성해 가고, 이를 통해 사유를 확장해 간다. 숏폼에 시대에서는 전혀 느끼지 못했던 슬로우 콘텐츠의 향유와 사유의 즐거움이라는 새로운 도파민을 얻게 된다. 이제 독서는 텍스트힙이라 정의되며 새로운 문화 경향으로 자리 잡게 됐다.
하지만 이런 힙한 독서에는 반드시 전제 조건이 따른다. 바로 행위의 인증과 세상으로부터의 인정이다. MZ세대는 이른바 ’Look at me‘ 제너레이션으로 정의되고 있다. 일거수일투족을 다양한 콘텐츠로 보여주며 스스로의 존재 양식을 형성해 가는 세대이다. 순수한 독서에 ’행위의 인증‘과 ’세상으로부터의 인정‘이 추가되면 텍스트힙이 되는 것이다. 텍스트힙은 ’책을 선정한 나‘, ’책을 읽고 있는 나‘, ’책을 통해 사유하는 나‘를 드러내며 독서를 통해 나의 존재 양식과 구축해 가는 것이다. 즉, 텍스트힙은 독서를 하를 나를 바라봐주는 관객이 있어야만 성립이 가능한 문화 경향인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텍스트힙의 문화는 ’댄디즘(Dandyism)‘과 매우 유사하다. 댄디즘은 18-19세기 영국과 프랑스에서 시작된 문화적 현상으로 젊은이들이 자신의 개성과 정체성을 패션과 삶의 태도 등을 통해 드러내는 생활 방식이다. 댄디즘의 발현은 패션과 태도에 그치지 않고 문화적 소비, 예술에의 헌신, 철학적 사유의 향유등을 통해 다층적으로 나타나는데 이 역시 가장 중요한 전제가 기재해 있다. 바로 댄디즘은 그것을 향유하는 이를 바라봐주는 관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오늘날로 치면 팔로워와 구독자들이다. 관객 없는 댄디즘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텍스트힙은 본질적으로 보여주기식 독서인 셈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이 시대의 시선은 차고 넘쳐난다. 독서하는 나를 드러내면 수많은 이들이 나를 바라보며 그 의미를 정립해 줄 수 있다. 먹방 영상 하나와 수십 만 개의 조회수가 먹방 유튜버를 만들어내는 것처럼, 우리는 독서 행위를 보여줌으로써 힙한 독서가가 될 수 있다. 우리 세대는 타인의 시선만 있다면, 그리고 그로부터 의미를 찾아낼 수만 있다면 간장도 마시고, 옷도 벗고 춤도 추며, 세계 어디든 혼자 여행하는 시대가 됐다. 어쩌면 우리 시대의 ’텍스트힙‘은 그동안의 인류가 보여주지 못한 사유의 시대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소설가 이우 : https://www.instagram.com/leewoo.sse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