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을 새롭게 정의할 수 있는, 멋진 소설가가 되자!
직접 프랑크푸르트로 가다니 격 떨어지는 일이었다. 나는 늘 지고한 소설가를 꿈꾸었다. 고상하게 멋진 작품을 집필하면 독자들과 이 시대가 알아서 읽어주길 바랐다. 격 떨어지게 세상에 주목받기 위해 요란 떨지 않고 문학 작품에만 매진하는 삶을 살아보고 싶었다. 언젠가는 '소설가가 되지 않으면 아무것도 되지 않겠다'는 다짐도 했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지금까지 7권의 책을 출간하며 열심히 읽고 썼지만 소설가로만 살아갈 수 없었다. 소설가로 살아가는 삶을 영위하기 위해 경제 활동도 해야 했다. 더불어 SNS를 통해 나를 알리기 위해 열심히 활동도 해야 했다. 소설가로 정진하고, 삶을 영위하고, 열심히 작품을 알려야 했다.
이번 독일 여정은 이런 삶의 연장 선상 위에 있었다. 소설가로 세계 무대에 도전하고자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이 열리는 독일로 떠났다. 계기가 있었다. 이번 연도 초에 나의 두 번째 장편소설 <서울 이데아>가 영어로 번역되게 됐다. 이를 통해 나는 해외 진출에 대한 가능성을 강하게 느꼈다. 나의 무대를 국내에 국한시키지 말고, 세계로 확장해 보자. 그렇게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을 준비했다. 작품과 커리어를 담은 홍보 자료를 만들었고, 원고를 검토할 수 있는 영문 샘플 자료도 준비했다. 그리고 해외 진출에 대한 야망을 갖고 과외 선생님도 구해 꾸준히 영어공부도 했다.
할 수 있는 준비를 다 해 프랑크푸르트로 향했다. 홀로 도착한 낯선 세계는 광활하고 낯설기만 했다. 서울국제도서전의 10배 규모는 족히 넘는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의 거대한 스케일에 압도되고 말았다. 겁이 나는 것도 사실이었다. 가진 것이라곤 집필한 책과 용기 밖에 없었다. 함께 한국관에 자리 잡은 회사도 문학동네와 창비 같은 국내 대형 출판사들이었다. 그에 비해 나는 작은 출판사의 대표이자 소설가였다. 주눅이 들지 않았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하지만 나는 프랑크푸르트에 나의 책을 홍보하기 위해 온 것이다. 도서전을 위해 투자한 자금도 상당했다. 5일의 시간을 결코 허투루 보낼 수 없었다.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의 주목적은 전 세계에 있는 출판사와 출판사의 만남의 장이다. 5일 동안 열리는 이 도서전에서는 1년 간 출간한 출간물을 각국에 소개하며 판권을 사고판다. 이 B2B 비즈니스 장을 통해 전 세계의 지식과 정보, 그리고 문학예술이 교류하는 것이다. 내가 독일에 온 목적은 바로 해외 출판사를 만나기 위함이었다. 유례없는 도전이었다. 소설가는 보통 이런 국제적 비즈니스의 무대에 오지 않는다. 작가는 주로 창작에 매진하는 사람이니 말이다. 하지만 나는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었다. 나는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소개하는 게 가장 호소력이 있다고 믿었고, 그걸 증명해내보기로 했다.
한국출판진흥원에서 내게 마련해 준 작은 부스에 전 세계 여러 출판사들이 찾아왔다. 나는 열심히 나의 저작을 소개했다. 또 국내에 있을 때 해외 판권 수출 협업을 시작으로 인연이 되었던 에릭양 에이전시가 도움을 주어 함께 미팅을 하기도 했다. 함께한 에이전트 분은 해외 출판사에 내가 직접 책을 소개할 수 있게 시간을 할애해주기도 했다. 나는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미팅 시간이 비어있을 때면 걸음을 옮겨 새로운 출판사들의 문을 두드렸다. 펭귄, 하퍼콜린스, 아델피 같은 세계 최고의 출판사들이었다. 스케줄을 미리 잡지 않아 대부분 당연하게 거절했지만, 아델피는 내게 30분이나 할애해주기도 했다.
미소와 함께 호의 가득한 대화가 오가기도 했고, 차가운 반응과 거절이 있기도 했다. 하지만 거절은 두렵지 않았다. 오히려 반가웠다. '내년에는, 내후년에는 더 멋진 모습으로 돌아오리라.'는 다짐과 함께 다른 출판사로 향하면 되는 일이었다. 이 세상은 소설가인 나를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때문에 이번 도전은 내가 손해 볼 게 없는 도전이었다. 그렇게 5일간의 도서전 동안 전 세계 18군데 출판사와 미팅을 했다. 이탈리아, 프랑스, 러시아, 베트남,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프랑스, 이란, 터키, 이집트, 그리고 중국과 홍콩까지 정말 다국적의 사람들을 만났고,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에너지를 쏟았다.
진흥원 관계자는 혼자 왔지만 팀으로 온 다른 출판사들보다 더 많은 미팅을 했다고 놀랐다. 나는 그 비결을 알고 있다. 다른 출판사는 직원으로 오는 것이라 정해진 스케줄 이외에 능동적으로 움직이지 않지만, 나는 정해진 스케줄 이외에도 능동적으로 움직일 수 있었다. 5일 동안의 열정 어린 도서전 기간 동안 정말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다. 작가로서 자신의 작품을 소개하는 법, 비즈니스적인 대화를 하는 법, 첫 대화에서 스몰톡으로 호감을 얻는 법. 한 개인으로서의 역량이 엄청 넓어지는 걸 느꼈다. 그리고 세계 출판 시장의 동향, 문학작품들의 추이, 그리고 소설가들의 행보를 파악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프랑크푸르트 출장을 통해 어떤 성과를 이뤘을까? 이탈리아 출판사 Bonfirraro에서 나의 장편소설 <레지스탕스>를 출간하고 싶다며 판권 계약을 맺었다. 그리고 다른 출판사들과는 여전히 작품에 대해 논의 중에 있다. 나는 이번 출장을 계기로 내가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 명확하게 가늠해 볼 수 있었다. 나의 목표는 시대를 기민하게 읽는, 그리하여 살아있는 세상을 이야기하는 소설가가 되는 것이다. 물론 이 방향성의 대전제는 멋진 작품을 집필하고 인문학적으로, 문학적으로 계속해서 정진하는 것이다. 나는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다짐했다. 한국문학을 새롭게 정의할 소설가가 되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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