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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우 Dec 04. 2024

계엄의 밤

역사상 최단시간의 계엄령, 대한민국이 써내다

대한민국에 계엄령이 선포됐다. 45년 만의 일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긴급 대국민 특별담화를 통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때는 2024년 12월 3일, 오후 10시 25분, 국민 모두가 하루를 마치고 편안한 겨울밤을 맞이하고 있을 시간이었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계엄 선포에 전 국민이 충격에 빠졌다. 계엄령은 한민족의 정신에 깊이 박힌 트라우마나 마찬가지니 당연한 일이었다. 대한민국에서 계엄령이 선포됐을 땐 늘 유혈 사태가 있었다. 1948년 여수·순천 사건부터 1950년 6.25 한국전쟁, 1961년 5.16 군사정변, 1972년 10.17 유신정권, 1979년 10.26 사태(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까지 이어진)까지. 전국이 공포와 충격에 휩싸였다.


윤 대통령은 계엄령을 선포한 이유를 담화문을 통해 밝혔다. 그는 국회가 "범죄자 집단의 소굴이 됐고, 입법 독재를 통해 국가의 사법 행정 시스템을 마비시키고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전복을 기도하고 있다"라고 하며 "종북 반국가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했다. 여기서 말하는 '입법 독재'를 통해 국가 사법 행정을 마비시켰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이는 11월 30일에 있었던 예산결산특별위원회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는 야당이 단독적으로 예산안을 단독 강행했다. 이는 헌정사상 최초로 있었던 일이었다.


예결위에서 통과된 예산안은 정부 원안에서 4조 1000억 원이 삭감된 677조 4000억 원이었고, 특히 대통령비서실과 국가안보실 특수활동비를 비롯한 검찰, 감사원, 경찰 특경 특활비는 전액 삭감됐다. 더불어 야당은 최재해 감사원장 및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 등에 대한 탄핵 소추안을 국회 본의회에 올렸다. 이러한 정치적인 사건이 이어진 바로 다음 날, 대통령은 '종북 반국가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하겠다며 계엄령을 선포했다. 단독적 예산안을 강행한 야당, 그리고 그들을 척결하기 위해 날을 간 대통령. 정계에 벌어진 일련의 상황은 그야말로 정치적 싸움일 뿐이었다.


그럼에도 윤 대통령은 결코 '계엄령'을 사용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헌법은 제77조를 통해 계엄령 선포 상황에 대해 규정하고 있다.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에 있어서 병력으로써 군사상의 필요에 응하거나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 때'에만 계엄령을 선포될 수 있다. 그러나 작금의 대한민국은 결코 국가비상사태가 아니었다. 계엄령은 선포가 되면 국가의 행정, 사법, 입법을 모두 군부가 도맡게 된다.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은 물론 국민을 영장 없이도 체포, 구금, 압수수색이 가능하다. 나아가 국민의 재산을 파괴 또는 소각하는 것도 허용된다. 이것이 계엄령이다.


무엇보다 심각한 건 이번 계엄령의 선포는 국민들에게 트라우마를 발동시켰다. 한반도의 계엄령은 늘 유혈사태를 촉발했고, 그 끝은 무엇으로도 위로할 수 없는 죽음만이 난무했다. 계엄령이 선포되자 과거의 악몽이 고스란히 재현되기 시작했다. 고요한 어둠이 깔린 서울의 상공에는 공수부대의 헬기가 모여들었고, 경찰 버스는 줄을 지어 한강을 건너기 시작했다. 군경의 병력이 모인 곳은 여의도의 국회였다. 하지만 다행이었다. '계엄군'과 국회위원 그리고 시민들과 일부 충돌이 있었지만 유혈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고, 국회위원 190명의 만장일치로 계엄령은 해제 요구 결의안이 가결됐다. 이에 윤 대통령도 계엄령을 해제했다.


이로써 윤 대통령의 계엄령은 6시간 만에 종료되는 세계 기록을 세웠다. 하지만 계엄령은 그저 해프닝으로 끝날 수 없는 문제였다. 단 6시간의 계엄령은 현재까지도 엄청난 여파를 남기고 있다. 환율은 1,400원 대를 돌파했고, 코스피는 일제히 하락했다. 한국은행은 경제 위기를 막기 위해 비정례 RP매입을 실시하여 원화 유동성을 사실상 무제한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필요시 국고채 매입까지 하겠다고 강수를 두었다. 또한 행정부서들의 공식 업무는 모두 취소됐고, 해외 국가 사절들은 한국 방한을 일제히 미루었다. 미국, 영국, 일본, 이스라엘 등의 국가에서는 대한민국을 여행 위험 및 자제 국가로 분류했다.


윤 대통령은 대한민국 헌정사상 가장 어리석은 선택을 하고 말았다. 세계 역사에 가장 일찍 끝난 계엄령이라는 우습기 그지없는 기록을 남겼으며, 단 6시간만으로 한 국가의 행정을 마비시키고 경제와 국격을 실추시켰다. 계엄령은 끝이 났지만, 계엄령의 여파는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다. 계엄령으로 인해 국민들의 지난 상처도 되살아났다. 국가가 정상화되려면 얼마나 걸릴지 가늠이 되질 않는다. 계엄령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지만 그것을 선포하는 것은 결코 남용되어서는 된다. 우리 역사는 이번 사건으로 계엄령의 의미와 그 여파를 똑똑히 기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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