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세상에 몸을 맞춥니까, 세상을 당신에 맞춥니까?
275mm. 나의 신발 사이즈이다. 하지만 줄 곳 나는 이 사이즈를 부정해왔다. 고등학교 무렵부터였다. 학창시절 나의 주된 관심사는 패션뿐이었다. 당시에는 나이키 에어맥스 95와 97이 먹어주던 그런 시절이었다. 신발 하나면 세상을 다 가진 것만 같았다. 멋의 추종자였던 나도 당연히 그 대세를 따라갔다.
어느 날 패션리더를 자처하던 형들이 내게 말했다. 에어맥스는 사이즈를 255 정도 신어줘야 가장 간지가 난다고 했다. 신발 사이즈가 260이 넘어갈 경우 디자이너가 의도했던 이상적인 디자인이 망가져버린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형, 저는 적어도 270은 신어야 하는걸요." 내가 말했다. "야 인마, 형은 원래 280 신는데 일부러 255신고 다닌다. 맥스는 금방 늘어나." 나는 그날 큰 깨달음을 얻은 것만 같았다.
그때부터였다. 나는 멋의 마지노선인 260을 신고 다녔다. 발을 구겨 넣었다. 신발이 늘어나기까지 언 한 달가량을 고생해야만 했다. 어느 날 친구가 내게 물었다. "어디 아파? 왜 다리를 저는 거야?" 나는 발가락을 다쳤다고 얼버무렸지만, 사실 신발을 늘리는 중이었다. 멋있어지는 것은 그렇게 힘든 것이었다.
발이 큰 것은 정상이 아니다. 발이 큰 것은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나는 나 자신이 아름답지 않다는 사실에 낙심하까지 했다. 하루 종일 고생한 발을 바라보며 조금만 더 작았으면, 하고 한숨을 내쉬기까지 했다. 그래서였던 것 같다. 그럴수록 260에 나의 발을 다시금 욱여넣었다. 나는 정형화된 아름다움의 기준에 나를 욱여넣었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젠 275를 신는다. 그간 이십 대의 방황이 나의 신발 사이즈를 찾는데 도움을 주었던 것이다. 가난한 젊은이의 여행은 발이 고생을 해야 한다. 홀로 한국의 여러 명산들을 종주했다. 총 두 차례, 1,800km의 산티아고 순례길을 두 발로 완주했다. 그리고 도보로 이십여 개국을 이곳저곳 여행했다. 나의 신발 사이즈는 점점 5mm씩 커지기 시작했고, 이제는 275mm를 신는다. 가장 걷기 편한 사이즈를 찾은 것이다.
나는 내게 맞는 사이즈를 찾기까지 언 십 년의 세월을 보내야만 했다. 그렇다면 이제 나는 나의 온전한 사이즈를 찾은 것일까. 그렇다고, 나는 이제는 좀 지혜롭다고, 결론을 내리려 했지만 그건 또 아닌 것 같았다. 홀로 앉아 친구를 기다리던 카페, 창밖에 어둠이 내렸고, 유리창은 거울처럼 나를 반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속에는 여전히 사이즈를 찾지 못한 내가 있었다.
나는 최신 트렌드를 따라 낙낙하게 떨어지는 오버핏 스웨터와 코트를 입고 있었다. 하의는 여전히 먹어주는 슬림핏이었다. 한데 이것이 나의 사이즈였던가. 사실 제대로 맞아 떨어지는 것은 기껏해야 신발 하나 뿐이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여전히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세상의 아름다움에 나 자신을 우겨넣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고 말이다. 나는 도대체가 나만의 사이즈를, 나만의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