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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연 Jun 05. 2024

묻어두었던 감정의 파묘

[도서] 슬픔에 이름 붙이기 Review

'오늘 아침에 회사에 지각을 해서 기분이 안 좋다'를 자신의 언어로 표현해 보라. 해당 기사에 댓글을 달아도 좋고, 혼자서 생각만 해 봐도 좋다. 개인적으로는 '퇴사각'이라고 간단히 얘기하겠다.


아마 문장이나 단어를 생각해 내는 데 5초 정도가 걸렸을 것이다. 지각을 하는 상황을 언어로 표현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우리 일상의 대부분의 상황이 그렇다. 그래서 갓난 시절을 지나 말을 배우기 시작하는 그 순간부터 우리는 착각한다. 원한다면 얼마든지 언어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고. 믿기 힘들다면 이번에는 아래의 상황을 간단하게 표현해 보자.


대단히 놀랍다고 생각되는 무언가―명반, 좋아하는 식당, 친구가 운 좋게도 처음으로 보게 될 텔레비전  프로그램―를 친구에게 애탈 만큼 흥분되는 마음으로 소개해 주고는 당연히 경탄이 터져 나오길 기다리며 계속해서 친구의 얼굴을 살피지만 그 모든 작품의 결점이 처음으로 빛을 발하는 것을 깨닫고는 움츠러들 뿐인. (35p)


누구나 한 번쯤은 경험해 봤을 만한 감정이지만 명명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해당 저서에서는 위의 내용을 '라이코틱(licotic)'이라고 이야기한다.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것들



세상에는 분명 그런 것들이 존재한다. 대표적인 일례로 바람이 그렇다. 날카롭게 에이던 것이 초봄이 되면 기세를 바꾸어 살갗을 간지럽힌다. 초록이 무성한 나무를 자꾸만 흔들어 댄다. 그래서 우리는 바람이 거기에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리고 감정이 그렇다. 분명히 우리에게 존재하지만 보편적으로 설명되는 부류의 것이 아닌 탓에 남에게 설명하기를 포기하고 혼자서 간직해버린다. 혹은, 누군가에게 표현하기에 너무 개인적이고 추한 것이라 오히려 꽁꽁 감추기도 한다.


이 책에서 설명하는 '티러시(tirosy)'가 대표적이다


자신보다 어린 사람―활기로 반짝이는 눈, 가능성이 넘치는 미래, 갓 개봉한 땅콩버터 병처럼 매끈하고 온전한 자신감―에 대한 질투와 동경이 섞인 복잡한 감정. 그 땅콩버터 병을 영원히 보존하고 싶으면서도 동시에 흔쾌히 헐값에 팔아버리고 싶게 만든다. (210p)


필자가 요즈 느끼고 있는 감정으로, 졸업을 앞둔 상황에서 갓 입학한 새내기들을 보면 질투와 동경이 공존한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털어놓은 적은 없다. 남을 질투하고 있다는 사실은 남에게 보여주기 부끄러울 뿐만 아니라 스스로도 부정하고 싶어서 내면 깊이 숨겨놓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마 많은 사람들이 그럴 것이다.


이처럼 분명히 존재하지만 다들 마음 한켠에 숨겨두어서 사회적으로 논의된 적 없는 감정들. 혹은 애초에 논의할 필요까지는 느끼지 못할 정도로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들. 해당 도서에서는 그런 보이지 않는 감정들을 통쾌하게 꺼내어 버린다.



혼자가 아니라는 데서 오는 아늑함



존 케닉의 적나라한 감정의 파묘 아래서 독자는 발가벗겨진 것만 같은 민망함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분명히 하고 싶은 부분은, 이 책은 독자에게 수치심과 굴욕감을 주기 위해 집필된 것이 절대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그 반대의 경향을 띤다. 바로 위로와 공감을 선사하는 것이다.


부유하는 온갖 감정을 끌어모아서 고스란히 새겨넣은 이 사전은 우리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세상에서 혼자가 아니라는 위로를 건넨다. 그러니 텅 빈 방안에서 고독을 즐기는 사람에게는 추천하지 않는다. 공허한 방에 덩그러니 놓은 온색 조명이 주는 소박한 위로와 같은 부류의 온기를 받고 싶은 사람들에게 해당 도서를 추천한다.


책에서 처음으로 명명했던 단어가 바로 '크리설리즘(chrysalism)'이다.


뇌우가 쏟아지는 가운데 실내에서 느끼는 양막과도 같은 평온함. (23p)


「슬픔에 이름 붙이기」는 정확히 위와 같은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나도 그래'라는 단순한 공감은 감정의 표류에서 외로워하던 당신에게 한줄기 위로가 될 것이다.



내 언어의 한계가 내 세상의 한계다


이쯤 되면 호기심이 생길 수도 있다. 보이지 않는 감정들을 명명하는 일에 대체 어떤 의미가 있을까? 흥미롭긴 하다만 굳이 책을 읽어볼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비트겐슈타인은 이렇게 말했다. "내 언어의 한계가 내 세상의 한계다."


그러니 「슬픔에 이름 붙이기」는 당신의 세상을 한층 넓혀 줄 것이다. 웅웅대며 존재하기만 했던 감정들이 확실하게 정리되고 나면, 그것을 더 깊이 이해하고 직접 말로도 표현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스스로조차 부정하고 있던 감정을 읽어내리며 내면을 더욱 깊이 이해하게 될 수도 있다. 그렇게 세상이 넓어진다.


현대 사회를 바쁘게 뛰어가느라 미처 붙잡을 겨를이 없던 단어들을 존 케닉이 대신 모아서 따라오고 있으니 당신은 뒤만 돌아보면 된다. 그러면 세상이 한층 다채로워질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 아트인사이트(https://www.artinsight.co.kr/)에서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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