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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연 Aug 07. 2024

홀로코스트로부터 살아남은 그림

[도서] 무서운 그림들 Review


해당 저서는 어느 여성의 시신을 그린 그림을 소개하며 포문을 연다. 바로 클로드 모네가 자신의 연인을 그린 「임종을 맞은 카미유」이다. 이후로도 책의 제목에 걸맞은 오싹한 그림들이 이어진다. 화가를 죽음으로 몰고 간 그림, 인간이 아닌 존재를 그린 그림, 페스트를 겪고 난 뒤의 공포감을 표현한 그림 등. 다채롭고 오싹한 '무서운 그림'들이 줄지어진다. 직관적으로 눈을 즐겁게 해주는 그림과 뒷편에 숨겨져 있던 이야기가 흥미를 끄는 그림이 오마카세처럼 연속된다.


그리고 여기에서는 이원율 저자가 소개하는 명화 중에 나치와 관련된 두 점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서로 다른 장에서 소개되는 「유대인 신분증을 든 자화상」과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 Ⅰ」이다.




한때 촉망받던 인재가 도망자 신세로 



펠릭스 누스바움이 그린 「유대인 신분증을 든 자화상」이다. 그는 한때 유복한 집안의 도련님으로, 미래가 촉망받는 화가였다. 조국인 독일의 아카데미에서 장학금까지 받는 인재였다. 그래서 이탈리아로 유학길을 떠날 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그다음 해, 나치가 독일 정권을 쥐고 유대인에 대한 광기를 보일 줄은.


선전물을 그리는 나치 앞잡이로 나선다면 위태롭게나마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누스바움은 비겁한 선택을 하는 대신 유대인의 정체성을 유지했다. 그러다가 프랑스에 있는 포로수용소로 끌려갔고 그곳에서 전염병과 영양실조, 죽음을 목격했다. 하지만 누스바움은 굴복하지 않았다. 수송 열차를 타고 독일의 가스실로 끌려가던 날, 철로에서 용감하게 몸을 던졌다. 그렇게 벨기에로 돌아가서 아내를 다시 만났다.


부부는 나치에 저항하는 지하운동 단체 일원의 집 다락방에 얹혀살았다. 집주인이 준 위조 배급 카드 덕에 밥을 타 먹을 수 있었는데, 겨우 밖을 나설 때마다 살 떨리는 긴장감을 안아야 했다. 이쯤에 그린 그림이 위의 「유대인 신분증을 든 자화상」이다.


퀭한 눈과 굳은 입술, 경직된 손, 바짝 세운 옷깃은 그림 속의 남자가 두려움에 떨고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짙게 깔린 먹구름과 금이 간 벽, 가지 잘린 나무 등이 공포를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슬쩍 보이는 파란 하늘과 하얀 꽃은 놓을 수 없는 작은 희망을 의미한다.


하지만 누스바움은 안타까운 최후를 맞게 된다. 고작 마흔 살에, 연합군이 그들이 살던 지역을 해방하기 겨우 한 달 전에, 나치 친위대에게 붙잡혀서 아우슈비츠행 열차를 타게 된다. 그리고 누스바움의 사후에 그림들이 세상의 빛을 보게 된다. 나치에게 발각되지 않은 덕에 후대의 사람들이 누스바움의 그림을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




나치마저도 감탄하고 살려준 그림



반면에 나치에게 발각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살아남은 그림도 있다. 바로 구스타프 클림트의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 Ⅰ」이다.



2차 세계대전이 터지기 1년 전, 나치 독일은 오스트리아 합병 절차를 밟았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이 인종 청소에 나섰다. 그리고 돈 많은 유대인 페르디난트는 핵심 표적이었다. 거듭되는 압박에 페르디난트는 클림트의 그림을 포함해서 가진 재산을 놔둔 채로 스위스로 피신했다.


당시 전체주의 기조였던 나치는 개성 강한 예술에 '퇴폐'라는 꼬리표를 달았다. 마구 찢고, 밟고, 불태웠다. 클림트와 그의 뜻을 따른 에곤 실레, 오스카어 코코슈가의 작품이 대표적 희생양이었다.


하지만 페르디난트가 소지하고 있던 클림트의 그림만큼은 살려줬다. 물품을 챙기러 온 나치 일당들은 입을 벌렸다. 그림은 황홀할 만큼 아름다웠다. 금박과 색색의 유리를 쏟아부은 작품은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화려했다. 나치의 수뇌부는 유대인 여인의 이름이 쓰인 해당 그림을 「우먼 인 골드」라고 새로 명명하며 각별히 여겼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궁금해질 것이다. 나치에 의해 이름을 빼앗긴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는 대체 누구일까? 그녀의 그림을 가지고 있던 페르디난트, 클림트, 그리고 당사자인 아델레의 사연을 알고 싶다면 「무서운 그림들」을 읽어보기를 바란다.  




공포를 공통점으로 엇갈리는 화가들 


나치를 가운데 두고 누스바움은 작품은 살리고 본인은 죽었다. 반대로 클림트는 본인은 무난한 말년을 맞이한 반면 작품이 힘든 나날을 겪었다. 서로 엇갈린 운명을 가진 명화가 이원율 저자의 책에서 모였다.


하나같이 '무서운' 그림들이다. 어느 작품은 작가가 공포에 시달렸고, 어느 작품은 보는 이로 하여금 공포심을 불러일으킨다. 작가가 공포에 시달리며 만들어낸 작품이 보는 이로 하여금 같은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책장을 넘기다 보면 알 수 있다. 전부 사람 사는 이야기라는 것이다. 사람이기에 가끔은 실수하기도 하고, 실의에 빠졌다가도 극복해 내기도 하고,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기도 한다. 그 사실을 알고 나면 그림들이 마냥 무섭기만 하지는 않다. 


그로테스크한 작품을 보고 기이한 감정을 겪기를 바라며 선택한 책이었지만, 점차 느껴지는 인간미가 나쁘지 않았다. 무섭게만 느껴지던 그림들에 애정이 커지는 과정이었다. 덕분에 작가들의 삶이 압축된 '무서운' 명화들을 살펴보며 무더운 여름밤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시원하게 보낼 수 있었다.




* 아트인사이트(https://www.artinsight.co.kr/)에서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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