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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연 Oct 17. 2024

도망친 언덕에서 띄워 올린 별

[전시] 툴루즈 로트렉: 몽마르트의 별 Review

앙리 드 툴루즈-로트렉은 프랑스 귀족 가문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화려하고 아름답던 시기에 축복받은 집안까지 갖춰진 충만한 탄생이었다. 하지만 로트렉이 14살 때 사고가 생겨버리고 만다. 의자에서 떨어지는 바람에 다리의 성장이 평생 멈춰버리는 장애를 갖게 된 것이다.


어머니인 아델은 아들을 열심히 돌보았으나 아버지는 그를 없는 자식 취급하였다. 사랑하는 대상에게 부정당하며 어린 시절부터 마음고생을 심하게 했다. 어른이 되고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는데, 신체장애가 있던 로트렉은 역동적인 귀족 사회에 조화될 수 없었다.
 

공허함을 느끼던 그가 향한 곳은 파리의 몽마르트였다. 그리고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도시에서 유달리 빛나는 별을 띄워 올릴 수 있었다.  




로트렉의 눈을 빌려서 보는 벨 에포크의 밤 


로트렉은 유흥문화가 성행한 그곳에서 무희, 연예인, 카바레 인물 등의 유명 인사들에게 끌렸다. 특히나 로트렉은 직업여성의 '평범한 일상'에 애착을 가졌다. 그의 동료였던 에두아르 비야르는 "귀족적인 정신을 갖췄지만 신체에 결함이 있던 그에게 신체는 멀쩡했지만 도덕적으로 타락한 매춘부들이 묘한 동질감을 줬을 것이다."라고 추측했다. 


그들과 동류라는 생각이 로트렉의 눈동자를 바꿔놓았다. 도시 하층 계급의 여성들에게서 화려함이나 저급함만을 엿보던 귀족 남성들과는 시선이 사뭇 달랐다. 가장 아름답던 시절에 유달리 눈부시던 밤의 거리를 거닐면서도 본질을 꿰뚫어 볼 줄 알았다.


총 12점의 판화 작품으로 구성된 판화집 「엘르 ELLES」에서 그의 시선이 잘 드러난다. 로트렉은 1892년에서 1895년 사이에 종종 파리의 사창가에서 지내며 매춘부의 모습을 주의 깊게 관찰하여 그렸다. 자신이 직접 가까이에서 관찰하고 경험했던 매춘부 여성의 일상생활을 친밀하게 묘사하였다. 


위의 작품은 「목욕 중인 여인 - 욕조」로, 얼핏 봐서는 매춘부라고 알아챌 수 없을 정도로 평범하게 그려졌다. 이 외에도 코르셋을 입는 여인, 머리 빗는 여인, 거울 보는 여인, 잠자는 여인 등의 연작에서 소박한 일상과 숨겨진 애환을 그려냈다.   




아름다운 몽마르트에서도 눈에 띄는 별 


Belle Époque.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회고할 정도로 아름다운 시절이었다. 파리의 문화가 화려하게 번성했던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니 빛나는 예술 작품이 쏟아지던 시절에 묻히지 않고 살아남아서 아직까지 전해진다는 사실은 많은 의의가 있다.


위의 작품은 「물랑 루즈의 영국인 신사」이다. 몽마르트의 카바레 물랑 루즈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남녀를 그려냈다. 콧수염을 기른 신사는 로트렉의 절친한 친구이자 영국의 화가인 윌리엄 톰 워레너로, 단색의 실루엣으로 표현하여 다채로운 색으로 구성된 여성들에 대한 남성의 열망을 강조했다. 두 여성을 향해 쏠려 있는 남성의 자세와 게슴츠레한 눈매, 독특한 표정은 그들 사이에 은밀한 대화가 오가고 있음을 짐작게 한다.


로트렉은 인간의 본성을 노골적이지만 천박하지 않게 표현했다. 가식을 덧씌우지 않는 솔직한 작품들은 익살스럽고 편안하게 다가온다. 또한, 특유의 흘러가는 듯한 필체는 매혹적이고 도발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며 작품을 더욱 매력적으로 만든다. 그리고 이는 아방가르드 예술의 중심지였던 몽마르트에서 새로운 예술의 다양성을 흡수하고 독창적인 조형성을 개척한 결과였다.


귀족 사회에서 섞이지 못하고 도망쳐서 도착한 몽마르트, 그곳에서 로트렉은 아름다운 작품들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본질에 집중하던 작가의 모토를 이어가는 전시 


툴루즈 로트렉은 대상의 겉모습이나 배경에만 집중하지 않았다. 남들은 미처 보지 못하는 숨겨진 내면을 포착해서 그려낼 줄 아는 화가였다. 그리고 이번 전시는 본질에 집중하던 작가의 모토를 이어가기에 의미 있다.


로트렉의 심리적 결핍과 비운의 생애를 강조해 온 이전의 경향을 벗어나 그의 예술을 새로운 관점에서 입체적으로 바라보았다. 신체적 장애를 개의치 않고 사람들과의 교류를 즐긴 호방함이나 어떠한 유파에도 속하지 않고 새로운 예술을 받아들였던 자유로움을 조명한다.


이는 화려함과 저급함 이면의 인간미를 강조했던 로트렉의 휴머니즘과 일맥상통하는 경향이 있다.


2024년 9월 14일부터 2025년 3월 3일까지 마이아트뮤지엄에서 이어지는 「툴루즈 로트렉 : 몽마르트의 별」 전시에서는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보려고 했던 로트렉의 시선을 따라갈 수 있다.




* 아트인사이트(https://www.artinsight.co.kr/)에서 티켓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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