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오페라 투란도트 아레나 디 베로나 오리지널 Review
천재라는 칭호가 붙는 사람들에게 으레 따라붙는 기대가 있다. 어린 시절부터 영재의 두각을 보이며 부모님과 이웃들을 놀라게 했을 것이라고 어렴풋이 생각한다. 실제로 모차르트는 5살이라는 어린 나이부터 미뉴에트와 트리오를 연주했고, 6살이 되자 유럽 전역으로 연주 여행을 다녔다.
하지만 이번 글에서 이야기할 작곡가는 은근한 기대를 깨트린다. 이탈리아가 낳은 세계적인 오페라 작곡가 푸치니. 그는 음악가 집안에서 천재적인 재능을 가지고 태어났지만 질 낮은 친구들과 어울리며 문제를 일으켰다. 음악에는 관심조차 없었다. 결국 음악 교사가 푸치니는 가업을 이을 가능성이 없다며 가르침을 포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어머니는 아들에 대한 기대를 버리지 않았다. 덕분에 푸치니는 음악과의 연결고리가 끊어지지 않았고, 카를로 안젤로니라는 스승을 만나며 본격적으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러다 18세 무렵에 베르디의 오페라 「아이다」를 보고 흥분하여 오페라 작곡가의 길을 결심한다. 마침내 자신의 숙명을 받아들이는 순간이었다.
푸치니의 첫 작품은 「레 빌리」였다. 독일 슈바르츠발트를 배경으로 하여 원혼이 된 처녀들의 이야기를 그려냈다. 처음에는 등단에 실패하였지만 당대의 막강한 출판사가 가치를 알아보고 공연을 추진하였다. 그들은 푸치니가 베르디를 계승할 스타 작곡가라고 생각했다. 그가 세상을 떠나고 한참이 지난 2024년에도 푸치니를 들어보지 않은 사람이 없으니 출판사 '카사 리코르디'는 시대를 초월한 안목을 가졌다고 볼 수 있다.
첫 작품으로 성공을 거두며 오페라 경력을 시작한 그는 「라보엠」, 「토스카」 등을 제작하며 명성을 얻었다. 하지만 「나비부인」 이후로 대중적 인기와 조금씩 멀어졌다. 하지만 푸치니는 절망하며 숨어버리지 않았다. 뉴욕으로 건너가서 미국적 소재로 새로운 시도를 하기도 하고, 첫 곡의 시작부터 불협화음을 넣는 도전을 하기도 한다.
그러다가 중국의 전설에 관심을 두고 마지막 작품을 제작하게 된다.
제3막의 전반까지 작곡하고 벨지엄에서 후두암으로 숨을 거두었다. 사후에 밀라노 음악원 후배인 프란코 알파노에 의하여 완성된 이 작품은, 푸치니의 중기 3대작을 어떤 면에서는 능가한다는 엄청난 명성을 얻게 된다.
이쯤 되면 어느 작품을 설명하는지 눈치챌 수 있으리라고 생각된다. 바로 푸치니의 유작인 '투란도트'이다.
도입부는 이렇다. 고대 중국 제국의 공주 투란도트는 세 가지 수수께끼를 낸다. 만약 정답을 맞힌다면 결혼하겠지만 그렇지 못한다면 참수형에 처하겠다고 말한다. 그 무렵에 전쟁으로 나라를 잃은 왕자 칼리프가 공주에게 반한다. 그래서 아버지와 하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수수께끼에 도전한다.
1913년 8월 10일에 베르디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처음 개최된 이 페스티벌은 매년 6월 중순부터 9월 초까지 열리고 있다.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오페라 작곡가인 베르디, 로시니, 그리고 푸치니의 작품을 중심으로 공연된다. 페스티벌 시기에는 베로나 인구 26만 명의 2배를 넘는 관객들이 방문한다고 하니 엄청난 규모를 짐작해 볼 수 있다.
대체 어떤 매력을 지닌 축제이기에 많은 관객들에게 사랑받으며 명맥을 이어왔을까?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달빛이 비치는 야외무대에서 펼쳐지는 황홀한 광경이 사람들을 이끌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전통적으로 공연은 밤 9시경에 시작하여 자정이 넘어서 끝이 난다. 평소 같으면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간, 유럽에서 세 번째로 큰 원형 경기장에 모여서 아름다운 광경을 공유한다는 사실이 낭만적으로 느껴진다.
이처럼 세계적인 오페라 축제 「아레나 디 베로나 페스티벌」의 투란도트가 창단 이래 최초로 첫 해외 공연을 했다. 화려하고 웅장한 축제가 100년 만에 처음으로 산책을 나왔다. 현지의 출연진들이 내한할 뿐만 아니라, 무대의 소품이나 의상을 그대로 가져왔다.
시작점으로는 다름 아닌 한국이 선택됐다. 이번 공연은 한국과 이탈리아의 수교 140주년과 푸치니 서거 100주년을 기념하며 결정되었다. 1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페스티벌이 국내 최대 규모의 실내 공연장인 잠실 올림픽 체조경기장 KSPO돔에서 펼쳐졌다.
그리고 10월의 어느 날에 감상하게 된 공연은 굉장히 만족스러웠다.
이번 투란도트는 '프랑코 제피렐리'에 의해 재탄생되었다. 그는 올리비아 핫세가 주연을 한 「로미오와 줄리엣」과 「말괄량이 길들이기」, 「챔프」 등의 유명한 영화들을 감독했다.
그렇게 영화 감독으로 명성을 떨치는 바람에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있는데, 그는 오페라의 연출에도 뛰어난 재능을 보인다는 것이다. 작은 빛들까지 섬세하게 고증하는 것이 프랑코 제피렐리의 특징이다. 그리고 천재 연출가의 손이 닿은 화려한 무대 디자인과 의상은 눈을 황홀하게 만들었다.
그런 와중에 세기의 마에스트로 '다니엘 오렌'이 지휘를 맡으며 귀까지 즐겁게 만들어주었다. 푸치니의 작품 해석에 있어서 세계 최고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그가 현장에서 분위기를 유쾌하게 만들며 관객들의 박수를 끌어내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오페라는 진지하고 엄숙하기만 할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칼라프는 결혼을 앞두고 절망한 공주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한다. 동이 트기 전까지 자신의 이름을 맞춘다면 목숨을 바치겠지만, 그렇지 못하면 자신의 아내가 되라는 내용이었다.
투란도트는 왕자의 이름이 밝혀질 때까지 아무도 잠에 들 수 없으며 이를 위반할 경우 사형에 처하겠다고 선언했다. 우스꽝스러운 세 명의 대신 핑, 팡, 퐁은 칼라프의 이름을 알아내기 위해 온갖 뇌물을 들이밀며 유혹하지만 그는 넘어가지 않는다.
그리고 승리를 확신하며 영웅적인 아리아 '아무도 잠들지 말라(Nessun dorma)'를 부른다.
Il nome mio nessun saprà
아무도 나의 이름을 모를 거야
No, no, sulla tua bocca lo dirò
아무도, 아무도, 내가 직접 말해 주리라
Quando la luce splenderà
빛으로 환해질 때에
Ed il mio bacio scioglierà il silenzio
나의 입맞춤이 침묵을 녹이면
Che ti fa mia
그대는 내 것이오
All'alba vincerò
새벽이 되면 승리하리라
/ Nessun dorma 일부 가사
결국 공주는 자신을 사랑하게 될 것이며, 아침이 밝으면 승리자가 될 것이라고 노래한다.
거침없이 밀려올 승리를 자축하는 듯한 아리아를 들으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작품을 대표하는 아리아 'Nessun dorma'가 '투란도트'의 미래 역시 상징하고 있는 듯하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일부 평론가들은 푸치니의 3대 걸작이라고 꼽히는 「라 보엠」, 「토스카」, 「나비부인」을 제치고 「투란도트」를 최고로 평하기도 한다. 투란도트는 푸치니의 마지막을 찬란하게 장식했다.
그리고 작곡가의 마지막을 장식한 작품이 2024년에 대규모 공연의 시작을 열었다.
여기에서 느껴지는 대비가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푸치니의 서거 이후로 충분한 사랑을 받았던 것이 무색하게, 앞으로도 많을 사랑을 받을 것이라는 근거로 보인다.
아마도 새벽이 되면 승리하겠다는 대표곡의 가사처럼 살아남을 것이다. 아무도 잠들지 말라는 명령을 지킬 것이다. 투란도트는 아직 잠들기 이르기 때문에.
* 아트인사이트(https://www.artinsight.co.kr/)에서 티켓을 제공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