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블루 베이컨 Review
1945년 런던, 르페브르 갤러리에서 많은 관람객들이 발길을 멈추고 침묵하였다. 「Three Studies for Figures at Base of Crucifixion」이라는 작품의 앞이었다. 작가인 프랜시스 베이컨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복수의 세 여신 에우메니데스를 이용하여 인간의 고통과 비극을 강조하였다. 여신들이 절규하고 있는 끔찍한 이미지를 보며 모두가 생각에 잠겼다. 세계 2차 대전이 끝나던 마지막 달의 일이었다.
대표작이라고 볼 수 있는 「벨라스케스의 교황 인노켄티우스 10세의 초상」만 봐도 프랜시스 베이컨의 작품 세계를 알 수 있다. 입을 커다랗게 벌리고 비명을 지르는 듯한 교황의 모습을 보자마자 르페브르 갤러리의 관람객들처럼 말문이 막혔다. 그림에 담긴 공포와 긴장감, 혼란, 경악, 절망이 삽시간에 달라붙었다. 천천히 살펴볼 여유는 이후에나 생겼다. 옷에 사용된 짙은 보라색은 기괴함을 더했고, 마치 새장처럼 교황을 감싸며 직선으로 떨어지는 선들은 파괴적인 느낌을 주었다.
이처럼 특유의 강렬한 화풍으로 인간의 암울함을 표현하면서, 프랜시스 베이컨은 의외의 이야기를 했다.
내 그림은 폭력적인 그림이 아니라 즐거운 그림입니다. 5분간의 텔레비전 뉴스가 내가 그린 그림보다 훨씬 더 폭력적이란 말입니다. (52-53p)
요즈음의 뉴스 속보들을 되새겨보면 얼핏 이해될 것도 같다가도 '즐거운 그림'이라는 부분은 도통 공감하기가 힘들다. 대체 어디서 즐거움을 느껴야 한단 말인가? 뭉개지고, 일그러지고, 폭발하는 그림을 보며 즐거워할 수가 있을까?
의문은 얼마 지나지 않아 풀렸다. 1967년에 프랑스 렌에서 태어난 한 남자, '야닉 에넬'이 베이컨에 대해 오래 천착한 결과를 읽으며 반항심이 사그라들었다. 경악스러운 그림이 누군가에게는 즐거움을 가져다주기도 한다는 점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도서 「블루 베이컨」에는 저자가 프랜시스 베이컨의 작품을 보며 느낀 폭발적인 황홀함이 전부 담겨있다.
프랑스에서 특별한 전시가 열렸다. 길고 어두운 밤 동안 프랜시스 베이컨의 작품을 오로지 혼자서 향유할 수 있는 전시였다. 전시장에는 간이침대가 있었고, 만일의 경우를 위해서 소방관들도 대기하고 있었다. 전시회장 입구에 설치된 상자 안에 '응급 구조대와 직통으로 연결된' 붉은색 전화기를 들기만 하면 그들이 올 것이었다.
프랜시스 베이컨을 누구보다 사랑하는 야닉 에넬로서는 전시에 참여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는 미술관 관장과 농담을 나누며 전시장으로 들어섰다. 걷잡을 수 없는 설렘과 기대가 야닉을 점령했다.
하지만 들어왔던 문이 닫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끔찍한 문제가 찾아오게 된다. 머리가 빙글빙글 돌고 열이 나고 눈이 얼얼해지기 시작했다. 고질적인 편두통이었다.
그런 야닉을 구한 것은 바로 프랜시스 베이컨의 그림이었다. 가방에 있던 트라마돌 두 알을 먹고 잠시 잠들었던 그는 일어나자마자 얼굴에 파란색이 튀는 것을 느꼈다. 그렇게 간이침대 옆에 있던 프랜시스 베이컨의 그림을 마주했다. 이윽고 통증이 사라지며 진작부터 기대했던 기쁨이 찾아왔다.
데이빗 실베스터와의 인터뷰에서 프랜시스 베이컨은 「Water from a Running Tap」을 'immaculé(흠잡을 데 없이)' 그려진 자신의 가장 완벽한 작품이라고 언급했다. 유화 물감을 여러 겹 칠한 다음 스프레이를 들고 캔버스에 코발트블루를 뿌려서 거품 같은 물방울 효과를 만들어낸 그림이었다. 간단히 말하자면, 수도꼭지에서 흐른 물이 세면대에서 넘치고 있는 작품이었다.
물(즉 붙잡을 수 없는 것)을 그릴 수 있다는 것, 그것 외에는 아무것도 그릴 수 없다는 것, 그것은 호쿠사이에서 모네를 거쳐 톰블리에 이르는 모든 화가들의 꿈이 아닐까? 이것이 회화 그 자체의 절대성, 그것의 기원과 영역 아닐까? (56p)
야닉은 '물은 시간의 유년기다'라고 표현했다. 또한, 산다는 것은 곧 줄줄 흐르는 것을 향해 입을 뻗는 것이며, 갈증은 진실에 대한 접근이라고 여겼다.
우리는 정체적이며 영원한 안식을 향해서 언제나 흘러가고 있다. 대체로 잔잔하고 편안하게 흐르지만, 간혹 물보라를 만들며 크게 파도치기도 한다. 그리고 파도에 적극적으로 맞설수록 죽음에 대한 체감 대신 모순적인 생명력을 느낄 수 있다. 프랜시스 베이컨은 이러한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화가였다. 그래서 내면의 불안감을 예술로 표현하며 지옥에서 벗어나는 법을 발견했다.
야닉은 「수도꼭지에서 흘러나오는 물」에서 그러한 과정을 읽어냈고, 넘쳐흐르는 생명력을 느끼며 환희에 휩싸였다. 맑은 샘물로 목을 축이고 싶다고 생각하며 입을 크게 벌리고 그림 쪽으로 다가갔다. 물은 더할 나위 없이 시원했으며 그 시원함 덕분에 유익한 빛이 그의 머리 주위로 흘러들었다.
야닉 에넬이 영원히 잊을 수 없을 밤을 표현한 책이 바로 「블루 베이컨」이다. 비교적 짧은 분량이지만 프랜시스 베이컨을 향한 애정이 밀도 있게 들어차 있으므로 부족함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설명하는 문장들은 모두 신박하고 새로워서 저자의 깊은 고민과 두통, 그리고 사랑이 느껴진다.
나는 그림과 문학 사이의 매혹적인 틈새에 서 있다. 내가 가장 편하게 숨 쉬는 곳이 바로 거기다. ... 단어와 색채가 서로를 찾고, 교차하고, 얽히고, 맞물린다. 나는 글을 쓰면서 물속으로 몸을 던진다. 내 손가락 아래로 미지의 호수가 열린다. 그리고 이 반짝이는 허공에서 나는 몸을 씻는다. 이것이 나의 진정한 삶이다.
작가가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방법으로 누구보다 사랑하는 것을 표현한 글이다. 따라서 프랜시스 베이컨의 그림이 취향이 아니더라도 「블루 베이컨」은 한 번쯤 읽어보기를 추천하고 싶다. 화가를 향한 사랑과 저자의 고질적인 고통, 흐르는 삶에 대한 내용이 엉켜서 당신의 목덜미를 타격할 것이다. 불쾌하지만은 않은 충격에 시간을 맡기고 흘러가다 파란 새벽을 맞이하는 경험을 해 보기를 바란다.
* 아트인사이트(https://www.artinsight.co.kr/)에서 티켓을 제공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