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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전시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일하는 여자들

[전시]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 방법 Review

by 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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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은 오랜 시간 동안 일해왔다. 보이는 곳이든 보이지 않는 곳이든 항상 일해왔다. 하지만 부당하게 이용당하거나 합당한 대가를 받지 못하는 여성 노동자들이 있다.


따라서 이번 전시에서는 역사와 사회의 변곡점에서 일해왔던 여성들의 단상을 살펴보며, 이러한 과정에서 당시 여성들에게 봉착했던 난관들과 사회 구조적 문제들을 발견한다. 동시에 서로를 의지하며 위로를 나누고, 하나로 뭉치고 투쟁하며 고된 시간을 지나온 그녀들을 사랑하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한다.




자신의 삶을 적극적으로 개척하는 여성들


독일의 신 라이프치히 화파를 대표하는 로사 로이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회화 작업을 통해 폭넓은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녀의 작품에는 항상 자신의 삶을 적극적으로 개척하고 영위하는 '여성들'이 등장한다.


로사 로이의 그림에는 대부분 두 명 이상의 여성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쌍둥이일 때도 있고 서로가 서로의 또 다른 자아인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다. 이는 상상 속의 또래 친구들을 만들어 외로움을 달랬다는 작가의 유년 시절을 연상시킨다.


20240501083542_iuhrslhw.jpg 로사 로이, 변신, (2022년)


위의 작품에서는 인간의 신체를 닮은 식물인 맨드레이크(mandrake)로 약을 조제하고 있는 여자들이 나온다. 비현실적인 작업의 풍경은 그녀들을 동화 속의 마녀들처럼 보이도록 만든다. 그리고 그 마녀들은 역할을 분담하여 노동을 하고 있다.


이처럼 서로를 돕고 의지하는 여자들의 모습은 작가가 추구하는 이상적인 여성상이다.




세월의 손때가 묻은 여성들의 흔적


다시 말하지만, 이번 전시는 오랫동안 노동을 해온 여성들에게 집중한다. 그리고 그들의 흔적은 조그만 관심만 가진다면 금세 발견할 수 있다. 노동하던 여성들의 세월이 묻어있는 실제 물품들을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 방법」에서 감상해 볼 수 있었다.


20240501084448_bxmcckrh.jpg 「여성중앙」 1983년 3월호 전단


중앙일보사에서 발간한 「여성중앙」은 실생활에 필요한 생활정보나 교양, 읽을거리 등을 수록한 월간 여성 잡지다. 그리고 당시 여성들에게 빠질 수 없는 관심사는 바로 가정과 관련된 것이었다.


우측 아래에서는 새 학년 새 학기에 필요한 아이들의 용품을 설명하고 있으며, 싸구려 옷시장에서 싸게 살 수 있는 생활정보에 대해서도 알려주고 있다. 고된 노동을 하며 동시에 아이들까지 돌봐야 했을 그녀들에게 존경을 표하게 된다.


동시에 자기 전에 생미역 팩을 추천하는 구절에서 예나 지금이나 자신을 가꾸는 일에도 관심이 많았음을 알 수 있으며, 뜻을 세운 여자들을 소개하는 부분에서 여성임에 자부심을 가졌음을 알 수 있다.


20240501084448_pipgypci.jpg 아모레 화장품 외판원 가방


또한, 상당한 크기를 자랑하는 외판원의 가방이 눈에 띈다. 국립여성사전시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이 가방은 당시 여성의 노동이 쉽지만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화장품을 잔뜩 넣은 커다란 가방을 들고 다녔을 당시의 외판원들. 그리고 미처 전시되지는 못했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무겁고 고된 노동을 했거나 지금도 하고 있을 많은 여성들. 그녀들에게 존경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국가 간의 힘의 불균형은 여성에게


한국을 대표하는 다큐멘터리 사진가 강용석은 전쟁 이후 한국의 근현대사에 다층적인 시각으로 접근한다. 그의 작품은 분단 이후 한국 사회와 한국인의 의식이 어떻게 변화하였는지 살피며 전쟁이 남긴 상처를 역사적, 사회적으로 고찰한다.


20240501090432_mhfsswnv.jpg 강용석, 동두천 기념사진, (1984년)


위의 사진들은 강용석의 초기작으로, 미군 부대가 위치했던 동두천의 한 주점을 배경으로 한다. 사진에는 미군과 그들을 상대로 일했던 기지촌 접객원들이 등장한다. 그녀들은 적극적인 신체 접촉에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거나, 반대로 호의적인 태도로 손님을 응대한다.


이러한 점에서 「동두천 기념사진」은 전후 강대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약소국의 슬픈 초상으로 해석할 수 있다. 국가 간에 발생하는 힘의 불균형은 여성의 일에 고스란히 전이된다.


불쾌한 기색을 내비치며 소심하게 밀어내는 모습도 마음이 아팠지만, 개인적으로는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이 더 씁쓸하게 다가왔다. 그녀들이 정말로 기쁘게 손님을 응대했을까? 전혀 아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국제 정세가 심상치 않은 요즘, 분단국가에서 살고 있는 한 여성이기에 위의 작품은 남다르게 다가온다.




자신의 신체를 활용한 섬뜩한 퍼포먼스


카위타 바타나얀쿠르는 자신의 신체를 활용한 퍼포먼스 비디오 작업을 활발히 이어오고 있다. 밝고 높은 채도의 색감이 감상자의 눈을 사로잡는 동시에 특정 행위를 반복하는 모습이 섬뜩한 인상을 풍긴다. 전시에서 소개하는 작품들은 방적과 방직, 염색 등 직물 산업의 공정과 노동을 신체의 움직임으로 표현한 것이다.


극한의 육체적 고통을 수반하는 작업들은 후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억압받고 착취당하는 아시아 여성들의 현실을 대변하고 있다.


20240501091043_ldehbxuz.jpg 카위타 바타나얀쿠르, 염색, (2018년)


20240501091043_agkzlyrb.jpg 카위타 바타나얀쿠르, 물레, (2018년)


그녀는 열악한 근무 환경 속 들리지 않는 여성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한다. 작가의 신체는 그 자체로 도구이자 기계가 된다. 그녀는 스스로 방직기의 셔틀이 되어 지면으로 추락하기도 하고, 누군가의 손에 거꾸로 매달린 채 염색 안료가 담긴 통에 얼굴을 담갔다 빼기도 한다.


충격적이고 섬뜩한 퍼포먼스 비디오가 도돌이표처럼 끝을 알 수 없이 이어지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점차 안타까운 기분이 든다. 지금도 고통스러운 근무 환경에서 일하고 있을 아시안 여성들의 노동 환경이 하루빨리 개선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수많은 여성들이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노동에 참여하는 여성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녀들은 우아하거나 고상하지 않다. 현실적인 노동의 현장에서 투쟁하듯 일을 하고 있을 뿐이다.


그들이 일궈온 일들에 대해 존중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아직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열악한 노동 환경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식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이번 전시는 굉장한 의미가 있었다.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 방법」은 수원시립미술관 전시실 2, 3, 5(프로젝트 룸)에서 2024년 6월 9일까지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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