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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전시

따끈한 모래와 에메랄드 바다

[전시] 이탈리아 국립 카포디몬테 19세기 컬렉션 Review

by 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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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di Napoli e poi muori. 나폴리를 보고 죽으라는 의미의 이 말은 18세기 유럽에서 시작되었다. 특히나 예술가와 지식인들이 입이 마르도록 나폴리를 칭송했는데, 장엄한 유산과 자연, 찬란한 햇빛이 공존하는 도시가 감각이 예민한 이들에게 얼마나 황홀했을지를 예상할 수 있다. 그들은 이탈리아 남부의 에메랄드빛 바다를 거닐며 이웃들이 같은 감정을 향유하기를 바랐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의 사람들이 찬사를 보냈던 나폴리는 더 이상 없다. 물론 지금의 그곳도 눈부시게 아름다울 것이 자명하지만, 분명히 말하자면 2025년만의 매력을 가진 나폴리다. 19세기의 나폴리는 우리가 영원히 가보지 못할 것이다. 군주제에서 이탈리아 통일로 이어지며 격동의 시기를 겪었을 19세기의 나폴리를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아쉬워하기는 이르다. 이번 여름에 마이아트뮤지엄이 사고를 쳐 버렸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국립 카포디몬테 미술관과 협업하여 엄선된 19세기의 소장품을 한국으로 옮겨왔다. 유화 68점과 파스텔화 4점, 수채화와 소묘화를 한 점씩. 총 74점의 명작을 통해서 예술 고유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다.


도심 속에 위치한 미술관, 마이아트뮤지엄. 그곳에서 당시의 화가들이 바라본 나폴리를 간접적으로 경험하며, 눈부신 자연과 충만한 사랑이 가득한 도시를 천천히 거닐어 보자.




빛이 있었고, 삶이 있던 곳



베리스모(Verismo): 대략 1875년에서 1895년 사이에 일어난 이탈리아의 운동으로, 프랑스 자연주의에 영향을 받아서 서민과 하층민 등의 삶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고자 하였다.


통일과 근대화를 겪으며 사회가 급변하자 이탈리아의 예술가들은 이상화된 미美나 신화적 이야기에서 벗어나 현실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진실'을 뜻하는 이탈리아어 「Vero」에서 유래한 미술 사조답게, 당대의 삶을 꾸밈없이 담아내고자 했던 흔적이 엿보인다.


Torre Annunziata.jpg ⓒEttore Cercone, Torre Annunziata. 1890


위의 그림은 에토레 체르코네가 그린 「토레 안눈치아타」이다. 지중해 연안이 누군가에겐 아름다운 광관지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일터라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그림이다. 앳된 얼굴의 소년들이 힘을 합쳐서 노동하는 모습은 관광의 도시 이탈리아 역시 사람이 사는 곳이라는 생각과 친근함을 불러일으킨다.


그림에서 바닷바람의 시원함과 활기를 충분히 느꼈다면 뒤쪽의 산에도 주목할 만하다. 흐릿하게 보이는 저곳은 바로 '베수비오 화산'이다. 폼페이를 순식간에 덮어버린 바로 그 화산이다.


사진-크기-001 (2).jpg ⓒVincenzo Caprile, On the beach. 19th-20th century


이번 전시의 포스터로도 쓰인 빈첸초 카프릴레의 「해변에서」이다. 일상적 장면과 해안 풍경을 따뜻한 시선으로 담아낸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햇살을 받아 따끈한 모래에 앉아 있는 여인과 밝은 옷차림의 남성이 마주 보며 서 있는 구도가 웃음을 자아낸다. 정적인 풍경과 대비되는 인물들의 생동감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전시 해설에서는 남성이 '익살스러운 몸짓으로 다가온다'고 해석했지만, 개인적으로는 뒷걸음질 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남자와 여자가 모두 당장이라도 발돋움할 준비가 되어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여자는 잽싸게 튀어 나갈 듯 긴장감 넘치는 모습 같고, 남자 역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갈 준비가 된 것처럼 보인다. 여성의 뒤통수에서 웃음보다는 살기가 느껴지는 이가 나 말고도 더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영원히 기억될 낭만의 도시 나폴리


나폴리를 사랑한 이들이 이토록 많았구나. 전시장을 나오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섬세한 붓질에서는 도시를 향한 정성이 와닿았고, 한 걸음 물러나서 바라본 한 폭의 풍경에서는 애정이 느껴졌다. 그런 작품이 한둘이 아니었기에, 19세기에 나폴리는 그 어느 곳보다 사랑받은 도시라고 생각하였다.


믿어주세요, 저는 그 분위기를 누구보다 잘 압니다.
수없이 그것을 그려왔으니까요.
공기와 하늘의 모든 비밀, 그 속 깊은 본질까지도요.

believe me, I know the atmosphere well;
and I have painted it many times.
I know all the secrets of the air and the sky in their intimate nature.

/주세페 데 니티스 Giuseppe De Nittis


커다란 사랑을 받은 도시이기에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나폴리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회자되고 칭송받을 것이다. 당시의 넘쳐흐르던 사랑이 노래와 춤, 그리고 붓질로 남겨져서 아직까지 전해져오고 있으므로.


영원히 기억될 낭만의 도시 나폴리, 그 연장선을 따라 걷고자 한다면 마이아트뮤지엄에 방문하기를 추천한다. 전시는 2025년 8월 1일부터 11월 30일까지 개최한다. 평일에는 11시, 14시 16시마다 정규 도슨트를 진행하고 있으니 「이탈리아 국립 카포디몬테 미술관 19세기 컬렉션 : 나폴리를 거닐다」 전시를 마음 깊이 이해하고자 한다면 시간을 맞춰 방문해도 좋을 것이다.




* 아트인사이트(https://www.artinsight.co.kr/)에서 티켓을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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