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전시는 무조건 혼자 가셔야 합니다

[전시] 울트라백화점 서울 Vol.2 Review

by 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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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동대문구에 새 백화점이 지어졌다. 다만 푸트코트와 식당가는 없다. 에스컬레이터도 없다. 입장 시에는 장바구니 대신에 가방처럼 생긴 브로슈어를 건네준다. 관람객은 이제부터 여기에 본인의 취향을 모아 담으면 된다.




「울트라백화점 서울」은 이미 Vol.1 '하이퍼 알고리즘'을 통해 많은 사랑을 받은 바 있다. 이효리의 '아난다 요가'부터 대전 마스코트 '꿈돌이'까지.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이 조합은 새로운 소비문화의 탐구를 주제로 묶였다. 사회 · 문화적 트렌드에 개인의 창의성을 더한, '예측 불가한' 전시가 처음부터 목적이었다. 막걸리가 나왔다가 요가 매트가 나왔다가 하는 전시는 많은 사람들의 흥미를 끌었고 전시 기간이 연장되기도 했다.


그랬던 울트라 백화점이 더한 자유로움과 신선한 매력으로 돌아왔다. 이번 주제는 Vol.2 '포스트 서브컬쳐'다. 모든 것이 빠르게 복제되는 세상에서 이들은 '결과물이 무엇인가'에 집중하지 않는다. 대신에 이런 질문을 던진다.


Who made this?
누가 만들었는가?


자세히 풀면 이런 꼬리 질문들이 따라온다. 왜 이 방식을 고수했는가?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작업했는가? 어떤 시간 위에서 만들어진 작품인가?


주류 문화를 살짝 비껴간 사람들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는 전시였다. 음악, 출판, 영화, 패션 등 다양한 분야에서 획일화된 기준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세계관을 구축해 온 70여 개의 브랜드와 크리에이터들이 전시 내내 소비된다.


미리 설명하자면, 2시간 내내 심하게 즐거웠다. 그래서 압도적 규모의 아카이브를 천천히 돌아보며 이것저것 담았던 경험에 대해 자세히 풀어보고자 한다.



당신의 '취향'을 쇼핑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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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이야기했던 브로슈어다. 아니, 브로슈어인 척하는 장바구니다. 종이를 펼치면 왼쪽에는 전시의 섹션에 대한 간단한 설명이 붙어있고, 오른쪽에는 전시회장에 곳곳에 마련된 인쇄물들을 담을 수 있는 주머니가 있다.


여기서 잠깐 전시의 내용에 관해서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POINT SPOT

1. 서브컬쳐 스트릿 SUBCULTURE STREET
인사이트 플랫폼이 제안하는 길을 따라, 라이프스타일 전반을 관통하는 음악, 출판, 영화, 패션의 인사이트를 발견하는 큐레이션 스트리트

2. 비사이드 레코즈 B-SIDE RECORDS
단순한 음악 감상을 넘어, 아티스트가 구축한 고유의 세계관과 그 이면의 이야기를 제안하는 레코드

3. 텍스트 에비뉴 TEXT AVENUE
독립 출판이 세상에 던지는 날카로운 질문들을 마주하는 곳. '책'이라는 매체를 통해 그 답을 찾아가는 사유의 거리를 경험해 보세요

4. 리뷰어스 씨어터 REVIEWER'S THEATER
독립 영화를 단순히 관람하는 것을 넘어, 타인의 깊이 있는 시선을 통해 작품을 다각도로 재해석해 보는 특별한 영화관

5. 더 리얼 부티크 THE REAL BOUTIQUE
패션을 대하는 애정 어린 태도와 옷 한 벌에 담긴 깊은 서사를 감상하는 갤러리형 공간

울트라 스토어 ULTRA STORE
전시에서 발견한 서브컬쳐적 감각을 손에 잡히는 오브제로 제안합니다


위의 사진에서 오른쪽에 있는 배경은 「1. 서브컬쳐 스트릿」에서 라이프 스타일 전반을 관통하는 인사이트 페이퍼들이 늘어져 있는 모습이다. 가까이 다가가면 서브컬쳐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곧바로 흥미를 느낄만한 내용들이 줄지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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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트 코베인은 왜 여성복을 입고 다녔을까? 툭 던져오는 질문에 관심을 두고 다가가면 생각보다 깊은 내용들이 이어진다. 오타쿠들의 관심을 그저 수익성을 위한 통계로만 바라보는 패션 산업계를 날카롭게 지적하거나, 일반적인 오타쿠의 이미지를 뒤집어버리는 파격적 주장이 등장한다. 활자중독에 걸린 사람처럼 마구 읽어대며 이 장소에서만 오랜 시간을 보냈다. 1인당 15장만 담을 수 있다고 공지받았지만 사실 두 장 더 담았다. 모두에게 지탄받을 만한 양심 없는 일은 맞으나 억울한 면이 있다.


독서는 어떻게 패션이 되었나?

급할 때 쓰는 연애편지 레퍼런스

가스라이팅 잘하는 법


이런 내용들을 어떻게 집지 않고 지나갈 수 있겠는가? 특히 '내가 듣는 음악이 더 우월하다는 착각'에 대한 페이퍼는 나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리며 손을 뻗었다. 패션업계를 지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전시회장을 찾은 관람객들까지 가감 없이 비판한다. 아무래도 인디음악이나 밴드음악을 듣는 사람들은 외골수 같은 면이 없지 않아 있고, 나 역시 한때는 멜론 TOP 100을 우습게 여겼었다. 지금은 많이 철이 들었지만 잭 스타우버가 틱톡픽이 된 일에 관해서는 아직도 통탄스럽긴 하다.



자연스럽게 새로운 취향을 알아가는 자리


「2. 비사이즈 레코즈」에는 실제 LP들이 잔뜩 쌓여있었다. 심지어 관람객들에게 자유롭게 구경하라고 권하기에 '이거 어디서 안 쓰는 바이닐판을 구해다가 포장만 해 놓은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 정도로 접근성이 좋았다는 얘기다. 단순히 가치 높은 LP를 구해서 벽에 걸어놓은 것이 아니었다. 눈높이에 있는 앨범들을 직접 손으로도 들어보고 귀로도 들어볼 수 있었다. 전시장이 아니라 레코드 샵에 온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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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CONCERTA의 「Consumption」 앨범이다. 앨범 커버가 예뻐서 사진을 찍고 집에 돌아와서 들어보았는데 생각보다 좋았다. 아티스트가 1990년대 미디어 문화 속에서 성장하며 받아온 경험과 감각을 바탕으로 만든 작업물이라고 한다. 펑크 감성과 왜곡된 사운드가 섞여 불편한 느낌을 만들어내는 것이 특징이다. 마치 게임 글리치*같은 느낌이다.


*게임에서 개발자가 의도하지 않은 비정상적인 동작, 시스템 오류, 또는 작은 결함(Bug)


평소 전자음악은 전혀 듣지 않는다. 울트라 백화점에 오지 않았다면 평생들을 일 없었을 앨범이다. 하지만 우연히 알게 된 음악은 생각보다 좋았고, 나에게 이런 취향이 있었다는 사실을 새로 알았고, 이러한 과정이 마치 스며들듯 이루어졌다는 점이 특히나 매력적이었다. '이거 들어봐 진짜 좋아!'하고 눈앞으로 들이밀었다면 도망치며 다시 커트 코베인을 찾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연히 직접 발견한 앨범이었어서 더 애정이 간다.




독립 출판이 모여있는 「3. 텍스트 에비뉴」나 패션에 대한 애정이 보이는 「5. 더 리얼 부티크」에서도 많은 수확이 있었다. 주최 측에서 제공하는 페이퍼는 한참은 모자라서 사고 싶은 니트와 읽어야 할 책들을 카메라로 찰칵거리며 마구 담았다. 마침 일상의 반복 속에서 무료함을 느끼던 찰나였는데 이것저것 읽고 구매하며 앞으로 조금 바빠질 예정이다.



무조건 혼자 방문해야 하는 전시


같이 가보자는 말에 동생은 너무 멀다면서 거절했고, 친구는 흔쾌히 수락했다가 사정이 생겨서 약속 자체가 취소됐다. 결국 혼자 찾아간 전시에서 5분 만에 이런 생각을 했다.


'혼자 와서 너무 다행이다.'


위에서 언급했던 「1. 서브컬쳐 스트릿」에서부터 그런 생각이 든 것이다. 유독 시선이 가 닿는 파트를 원하는 만큼 읽고, 또 만족을 느낄 때쯤 다음 섹션으로 넘어갈 수 있어서 좋았다. 영혼의 단짝이라도 개인의 관심사는 미묘하게 조금씩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웬만하면 전시장에 홀로 방문하기를 추천한다.




분명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는 크리에이터들에게 집중한 전시가 맞다. 하지만 전시장을 나오며 거기서 끝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울트라백화점 서울」의 또 다른 주인공은 바로 전시장에 방문한 관객들이다. 전시 자체가 개인의 사적이고 비밀스러운 감각들을 일깨우기 위해 노력하는 느낌이었다. 어떠한 것을 '제시'하지 않고 '방목'하는 형식이었기 때문이다. 일단 어마어마한 양으로 위압감을 주고 나서 여기서 한번 골라보라고 제안한다. 그 결과 관람객들의 평균 관람 시간은 2시간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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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찬가지로 2시간 동안의 탐색을 거친 후 남은 것은, 사실 새로운 취향의 발견이나 익숙한 얼굴들에 대한 반가움 뿐만은 아니다. 물론 출판사 전기가오리가 반갑고 안전가옥에 관심이 가긴 했지만. 가장 큰 변화는 소비에 대한 개념이 바뀌었다는 데에 있다.


이전에는 돈을 지불하고 물건을 받는 일에서 실용적인 의미만을 찾았다. 소품샵에 가도 귀여운 소품을 실컷 구경하고 나서 먹을 수 있는 밤잼만 구매해서 나오곤 했다. 쿠팡에서는 바디로션이나 티슈같은 생필품을 주로 산다. 옷은 화려한 것보다는 질이 좋고 오래 입을 수 있는 것 위주로 고른다.


하지만 「울트라백화점 서울」 전시를 돌고 마지막에 굿즈샵까지 지나치면서 기존의 개념이 크게 변화하였다. '생산'은 누군가가 자신만의 독창적인 세계를 경제적으로 표출하는 하나의 수단이며, '소비'는 구매자가 그것에 공감하며 적극적으로 응원하는 행위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꼭 실용적이지 않더라도 그것을 기꺼이 구매함으로써 소비자 역시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 나갈 수 있고 이러한 과정이 서로의 삶을 더욱 다채롭고 생생하게 만든다.


단순히 제품의 기능을 소비하기보다 브랜드가 가진 태도와 세계관에 반응하며,
소비라는 행위를 자신의 다음 움직임을 만드는 연결의 도구로 사용한다.


방문 전에 읽었던 기획 의도를 이제 깊이 이해한다. 전시 의도에 충실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 관람객 중 한 명으로서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 적극적으로 다리를 놓아준 (주)어반플레이 사에 고마움을 전한다.




이번 전시는 뜨거운 성원에 힘입어 5월 10일까지 기간이 연장되었다. 해당 리뷰를 읽으며 관심이 생겼다면 전시가 끝나기 전에 꼭 동대문 DDP 뮤지엄 전시 2관에 방문하기를 추천한다. 현재는 연장기념 특별 할인도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죽음의 바느질클럽(4월 16일, 30일)」같은 워크샵이나 「울트라 토크: 작지만 단단한 출판사 생존기(4월 11일)」, 이루리 감독과 DEFF 감독, 씨네21 조현나 기자가 참여하는 「리뷰어스 나잇: 나를 살게하는 작은 그늘(4월 4일)」, 「소소사 헌책 경매(4월 25일)」등의 프로그램들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으니 방문 전에 참고하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Vol.1 하이퍼 알고리즘」은 성황리에 끝이 났고, 「Vol.2 포스트 서브컬쳐」는 활발히 진행 중이다. 그리고 4월 3일부터는 「Vol.3 로컬 헤리티지」가 시작된다. 마지막 시리즈에서는 '지역성과 진정성을 담은 로컬 콘텐츠로 향하는 가치 소비'에 대해서 집중할 예정이라고 한다. 지역에 관한 주제를 또 얼마나 획기적으로 다루었을지 큰 기대가 된다.


서브컬처에 이미 관심이 있거나 본인의 취향을 찾고 싶은 사람이라면, 반년이 넘게 이루어지고 있는 대규모 취향 프로젝트를 동대문 DDP에서 함께 확인해 보기를 권한다. 분명 즐거운 시간이 될 것이라고 장담한다.





* 아트인사이트(https://www.artinsight.co.kr/)에서 티켓을 제공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