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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 Jan 30. 2021

누군가의 엄마가 되는 일은 피하고 싶은 걸

선택은 오로지 나의 몫


  나를 닮은 아이가 세상에 빛을 보는 일은 경험해보지 않고서야 절대 알 수 없는 새로운 차원의 행복이라고 기경험자들은 말한다. 그 행복을 과연 평생 동안 어림짐작이라도 할 수 있을까.


  모처럼 평일에 연차를 내서 대형쇼핑몰에 갔다. 주말이 아닌 평일이라 사람이 없어 한적한 분위기가 낯설면서 좋았다. 늘 오늘처럼 남들 일하는 시간에 여유롭게 쇼핑을 하고, 서점에 들러 책을 뒤적거리면 참 좋을 텐데라는 철없는 생각이 들었다.


  몇 걸음 걷다가 밀려오는 허기에 대충 눈에 보이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메뉴를 고르고 점원이 안내하는 자리에 착석했다. 양 옆의 테이블은 이미 식사가 진행 중이었다. 오른쪽 테이블에는 건설회사 사원증을 목에 맨 3-40대의 남자 직장인들이 점심을 때우고 있었고, 왼쪽 테이블에는 비슷한 연령대로 보이는 여성이 한 손으로는 유모차를 흔들며 앞에 앉은 동성친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묘하게 이질적인 두 테이블은 어쩐지 조금 불편했다.


  육수가 잘 우러난 바지락 칼국수는 국물을 한 숟가락 떠넘길 때마다 시원했지만, 가슴은 갑갑해져 왔다. 오른쪽 남자 직장인들은 부동산 이야기에 열을 띠며 토론을 했다. 어디에 아파트를 사야 하며, 그쪽은 너무 올랐다는 등 나름 건설적인 주제들을 공유했다. 문득 그들과 엇비슷한 또래인, 나의 상사들과 관심사가 별반 다르지 않구나라는 생각에 웃음이 났다. 마치 이 곳이 회사 식당인 것 마냥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남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좋은 일은 아닌 것 같아 주의를 환기해도 우렁찬 목소리는 자꾸 내 귓속을 파고들었다.


  별안간 유모차 안에서 곤히 잠들어 있던 아기가 울부짖기 시작했다. 아기의 엄마는 허겁지겁 젓가락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나 아기를 안아 들었다. 째지는 아기의 울음소리에 식당 안의 모든 시선이 아기와 아기 엄마를 향했다. 대게 호의적인 눈빛들이었지만, 따가운 시선 역시 존재했다. 아기의 엄마는 난감해하며 알아듣지도 못할 아기에게 울지 말라며 애원했다. 상황이 지속되자 앞에 앉아있던 아기 엄마의 친구가 주위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나름 최대한 눈치를 주지 않기 위해 눈 앞에 놓인 음식에 집중했다.


  아기가 가까스로 울음을 그치고 아기 엄마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다시 자리에 앉은 순간, 직장인들은 어느새 식사를 끝마치고, 커피 내기를 하고 있었다. 분명 내가 들어오기 전에 이미 식사를 시작하고 있던 아기 엄마의 밥그릇은 반도 채 비우지 못한 상태였다. 아기의 엄마이기 전에 그녀 또한 동료들과 건설적인 이야기를 하며, 따분한 일과 중 유일한 재미인 커피 내기에 동참하던 사람이었겠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르르 나가던 직장인들 중 한 명이 계산을 하며 혼잣말을 뱉었다. 혼잣말은 속으로 할 것이지, 식당 안의 모든 사람들이 들릴만큼 그의 목소리 크기는 과하게 높았다.



 "아. 나도 여기 이 사람들처럼 매일 밖에서 여유 있게 밥 먹었으면 좋겠다."



  정신이 아찔했다. 좀 전에 이 쇼핑몰에 들어서며 내가 했던 생각과 남자의 말은 일맥상통했다. 배려 없다고 느꼈던 저 자와 나는 하나도 다를 것이 없었다. 아기 엄마는 못 들은 척 덤덤한 얼굴로 김치를 찢었다. 앞에 앉아있던 친구는 굳은 표정으로 아기 엄마의 손에 쥐인 유모차를 뺏어 들었다.


 "아기는 내가 볼 테니까, 너는 밥부터 먹어."


  인파가 나간 조용한 식당에는 고르지 못한 바닥 위로 유모차 바퀴 구르는 소리와, 젓가락질 소리만 들렸다. 침묵 속에서 오고 가는 수많은 감정들은 그들과 일면식 조차 없던 나조차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아직 치우지 않은 오른쪽 테이블의 빈 그릇들을 눈에 담다가, 이유 없이 화가 치밀어 올랐다. 분노의 대상은 빈그릇의 주인이었던 직장인들도 아니고, 다른 누구도 아니었다. 구체화할 수 없는 그 대상은 어쩌면 나 자신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 순간 내게 닥칠 미래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결혼 적령기가 되니, 주위에서 슬금슬금 결혼에 대해 물어오는 이들이 많아졌다.



"결혼 언제 할 거야?"
"아직은 생각이 없어요."
"아이는 빨리 낳을수록 좋아."
"글쎄요. 꼭 낳을 필요가 있을까요"
"젊으니까 그런 소리 하지. 늙어서는 어쩌려고."
"제 노후를 책임지라고 아이를 낳나요? 제 노후는 제가 책임져야죠."



  제 인생이 아니라고 틀에 박힌 말들을 1에서 10까지 빠짐없이 늘어놓다. 그 말들에 고통받는 건 듣는 사람의 몫이다. 그렇다면 진짜 내편은 다르지 않을까. 매일 결혼 염불을 외는 아빠 대신, 나와 같은 여자인 엄마는 생각이 조금 다르지 않을까. 나의 기대와 무색하게 엄마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았다. 엄마의 걱정은 간결했다. 네가 외로울까 봐. 나중에 혼자 남겨질 네가 걱정이 돼서.



  엄마. 사랑하는 아이가 생긴다는 것은 분명 큰 행복일거야. 엄마가 나를 가지고 느꼈던 행복을 내게도 나눠주고 싶은 마음 알아. 하지만 엄마, 나는 누군가의 엄마가 되는 일은 피하고 싶어. 나는 변해 버릴 나를 감당할 자신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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