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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 Jan 25. 2018

무기력증에 효용 있는 몸부림

혹은 당신이 우울하다면


자주 그리는 '식물인간'시리즈 중 하나. 사람의 몸통이지만 머리엔 선인장이나 난초가 돋아 있다. 숨길 수 없는 인간의 약한 살점을 그려내고 싶었다. 자아성찰이 잦은 만큼 스스로의 초라한 모습을 자주 목격하는데 그런 것에 비해 사람들은 나를 꽤나 번듯하게 알고 있는 모습이 슬퍼서 이런 그림을 그린다. 주로 혼자 있고, 정적인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다. 이런 그림이나 그리는 사람이 무기력증 극복에 효용 있는 방법을 공유하려 한다. 나름 여러 번의 실천을 거쳤고 효과를 보았으니 반 정도는 믿으셔도 좋다. 이 기록이 당장 우울한 사람들에게 1그램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라며, 무기력을 전부 떨쳐내지 못한 가여운 스스로에게도 함께 헌사한다.






무기력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아무것도 안 하는 사람에게도, 너무 많은 일을 하는 사람에게도 찾아온다. 우열을 가릴 수 없을 만큼 두 경우는 최악이다. 수면 아래 깊이 가라앉은 내가 겨우 할 수 있는 것은 검색창에 "무기력증 극복"이라 검색하는 것이었는데 "무기력하게 있지 마세요~"라는 무성의하지만 맞는 말을 보고 낮게 욕하며 이를 갈았던 생각이 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분하게도 저 문장이 정답이다. 스스로가 무기력해질 틈을 주면 안 된다. 바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 설명을 하자면...




1. 우선 좋은 숙면을 취한 다음날부터 시작한다.

좋은 숙면은 어떻게 취해야 하는 것일까? 사실 이것부터 어려운 사람들이 있다. 낮과 밤이 바뀌었거나 낮잠을 너무 많이 자거나 불면증을 앓고 있는 경우 등등 다양하다. 그럼에도 질 높은 수면이 기력을 보충하는데 가장 기본이 되기에 '내일은 무기력하지 않으리'라고 다짐한 날 저녁부터 작전을 시작한다. (하루의 허리엔 기력이 없거든. 나는 이 심정을 매우 잘 안다.) 네이버 지식인처럼 원론적이고 무능한 말은 하고 싶지 않지만, 실제로 무능한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무기력한 사람들이야 말로 좋은 숙면이 필요하며, 잘 자야 한다는 뻔한 당부뿐이다. 대신 몇 가지 구체적인 행동에 대한 조언이 아래에 있다.




핸드폰은 비행기 모드로 바꾼다. 

쓸데없는데 허비하는 집중을 줄일 수 있고, 핸드폰을 하며 누워있는 일을 하지 않게 된다. 침대 위 중력은 무기력의 촉매니 경계해야 한다. 신경 쓰이는 SNS나 문자 등으로부터 도망갈 수 있는 순기능도 있다. 


침대에 눕는 시간은 12시를 넘기지 않는다.

이게 가장 어렵고 중요하다. 12시가 넘으면 새벽과 함께 자괴감이 괴롭히러 오니 잠으로 도망쳐야 한다. 출근을 해야 하는 경우 수면 시간이 짧아지니 여러모로 늦게 잠드는 것은 좋지 않다.


잠들기 좋은 환경을 조성한다. 

이건 사람마다 다른 것이라 각자의 취향에 맞는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나의 경우 너무 어둡고 적막한 공간에서는 잡생각이 많이 들어 잠이 잘 오지 않았다. 그래서 무드등을 켜고 재즈 라디오를 작게 틀어놓는다. 이젠 엄마가 동화책을 읽어주지 않으면 잠들지 않는 외국 영화의 아이처럼, 그런 장치 없이는 불안해서 잘 못 자는 것이 부작용이지만(분하다) 다들 자신에 맞게 '자고 싶은 침실'을 만들어야 한다. 

추천 아이템 : 아로마 가습기, 따뜻한 물 한 잔, 시집, 파자마, 깨끗한 침구, 푹신한 베개


자기 좋은 신체를 만든다.

가벼운 운동을 하라는 말은 차마 못 하겠다. 나도 못하는 일을 어떻게.. 하루를 힘들게 살아낸 것으로도 이미 충분히 우리는 잘 자격이 있고 휴식이 필요한 상태다. 대신 야식은 삼가길 바란다. 숙면에도 방해가 되고 소화도 잘 안되기 때문이다. 야식 대신 따뜻한 물 한 잔과 유산균 한 알을 먹고 '내일은 쾌변 할 거야..'하는 의식을 추천한다. 따뜻한 샤워도 많이 도움된다. 그리고 자괴감이 드는 생각으로부터 스스로를 용서한다. 이만큼 자기를 미워했으면 충분하다. 잘 하고 싶었으니까 그렇게 불안하고 우울했던 가여운 자신을 미워하지 말자.






2. 원하는 삶을 흉내 내는 아침을 시작한다.

말이 조금 이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난 정말 이런 각오로 하루를 임한다. '나 혼자 산다'를 촬영하는 셀럽 인척 하루를 살아내야지. 지인 중에 힙스터를 표방하는 사람이 있어 종종 친구들과 비웃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니 정말 그 친구는 그럴듯한 힙스터가 되어있었지. 흉내를 내는 사람에게 '손민수'라며 비난하는 세상이지만 흉내는 삶에서 중요한 자양분이 된다. 그림을 잘 그리고 싶으면 모작을 많이 해야 한다. 다른 분야도 다 비슷하지 않나. 상업적인 활용에 의한 법적 문제만 없으면 카피는 자유다. 바라는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카피는 더욱 무료고. 다시 한번 말하지만 흉내 내는 일은 중요하다. 바라는 모습에 똑같이 도달할 수는 없지만 얼마간 비슷해질 수는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흉내를 창피해하지 말자.



그럼에도 말하기엔 창피한 내가 흉내 낸 일들

운동은 자신 없으니 1분 동안 기지개, 모델처럼 아침으로 과일 먹기, 마실 차 내리기, 따뜻한 물에 샤워하기, 신문 읽으며 출근하기. 이런 삶을 사는 사람이고 싶었다. 일어나자마자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면 이 모든 일을 시작하기 어렵다. 그러니 기지개를 켜고 중력을 이겨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욕쟁이 할머니처럼 욕하면서 '어휴 무기력증 없애자고 이게 무슨 고생이야.'투덜대도 좋으니 우선 일어나자. 수많은 날을 일어나 살아낸 기특한 자신을 떠올리며.


누구나 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

우선 일어나서 바로 이를 닦는다. 그리고 세수를 한다. 나는 저녁에 샤워를 하는 사람이지만 이참에 샤워를 하면 하면 더 좋겠지. 로션을 꼼꼼히 바르고 찬 물을 마신다. 끝. 그다음엔 각자 멋진 삶을 흉내 내는 시간. 정확히 말하자면 타인은 벤치마킹 대상이지 궁극의 롤모델이 아니다. 롤모델은 바라는 모습의 자신이어야 한다. 살고 싶은 아침을 살아보자.






3. 퇴근 후, 절대 눕지 않는다.

아침에 대한 대략적인 가이드, 아니 가이드를 설계하는 방법을 제안했다. 삶의 허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내야 한다. 얼마간 무기력하게 있어도 된다. 훌륭한 아침을 살아냈으므로. 다시 찾아온 저녁에 우리는 찾아올 무기력에게 틈을 줘서는 안 된다. 스스로를 괴롭히지 않는 방식으로 바빠야 한다.


저녁 먹기

되도록 좋아하는 음식을 먹는다. 하지만 좋아하는 음식이 있어도 그게 먹기 싫은 순간도 온다. 하.. 무기력증이라는 게 그래. 그러면 딱 한 숟가락만 먹는 것이다. 나머지는 다 버려도 괜찮다. 치킨도, 피자도 좋으니 꼭 저녁을 먹는다. 이쯤 되면 독자분들은 무기력을 이겨내는 과정이 스스로를 어르는 것과 같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아이보다 더 고약한 스스로를 어르고 달래는 일들이 자신을 위로해주고 구원한다. 무기력증이 있음에도 하루를 살아 낸 우리, 좋은 저녁을 먹자. 야식 말고 7시쯤에 먹는 따뜻한 저녁.


청소와 침구 정리

자기 전까지 눕지 않기 법칙을 잊어서는 안 된다. 밥을 먹고 바로 이를 닦은 후 설거지를 한다. 그리고 주방을 환기하고 방을 청소한다. 청소는 참 좋은 행위다. 실용적이고 눈에 보이는 성과가 있달까. 무기력해서 할 일이 없을 때 '할 일'이 되어주고, 정신을 또렷하게 해주며, 잡생각을 잊을 수 있고 기분이 많이 나아진다. 이때 침구를 정돈해둔다. 정돈된 침구는 자기 전엔 함부로 들어갈 수 없는 성스러운 분위기를 만들어주고, 잠들기 직전엔 어서 들어가고 싶게 포근해 보이는 효과가 있다. 


좋아하는 일들을 한다

그런 게 없는 사람은 없다. 다시 한번 말하자면 정말 그렇다. 덕질, 인터넷 서치, 게임 등 다 좋으니 12시 전까지 포상처럼 미뤄두었던 딴짓, 자유시간을 만끽한다. 금방 자야 할 시간이 올 것이다. 늘 그랬던 것처럼. 그럼 잠을 자기 좋은 환경을 마련하고 다시 1번으로 돌아가 좋은 숙면을 위해 노력한다. 비행기 모드는 풀어도 괜찮다. 우리는 지상에 살고 있으니.





써놓고 보니 굉장히 별 것 없는 일들인데 일부러 그런 것들만 쓰려 노력했다. 사실 나는 위에 나열한 것보다 더 하드하고 거창한 버전을 실천했다.(6시에 기상해서 조깅을 함) 쉬운 일도 무기력한 사람에겐 쉽지 않은 일이다. 숨 쉬는 일도 무겁게 느껴지는 심정을 나는 안다. 앞서 여러 번 언급한 무기력은 우울이라는 단어로 치환해도 다르지 않을 만큼 둘의 상관관계는 긴밀하다. 우울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울의 중력을 이겨내고 우선 일어나야 한다. 언제나 삶은 일어나는 것부터 시작된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실용서의 문장을 인용한다.



모든 것은 시간을 이용하는 방식에 따라 결정된다. 행복-누구나 도달하려 하지만 좀처럼 도달할 수 없는 저 목표-도 여기에 달려 있다.
하루가 24시간이라는 것을 정말로 알고 있는가
내가 말하는 '산다'라는 의미는 단순히 생존하고 있다거나 '아무 생각 없이 그럭저럭 세월을 보낸다'는 뜻은 아니다.
자신의 사고를 컨트롤한다.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는 동안에 인생의 성가신 일들 중 반 정도는 없어져 버린다. 특히 피하려고 생각하면 피할 수 있음에도 좀처럼 그렇게 되지 않는 저 비참하고 나쁜 병, 즉 쓸데없는 걱정은 말끔히 없어지고 만다. 반드시 스스로 확인해 보기 바란다.
그럴 생각만 있으면 언제라도 새로 시작할 수 있다.


하루 24시간 어떻게 살 것인가 - 아널드 베넷 저, 이은순 역




이 글은 무기력한 사람들, 혹은 무기력할 미래의 나를 위로하고 싶어 쓴 글이다. 한 가지 약속드리자면 나는 이 글을 쓸 만큼 견뎌냈고 스스로를 구할 힘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여러분도 할 수 있다. 몸부림치는 내가 사랑스러워서 이만큼 살아낼 수 있었다. 오늘도 선물처럼 좋은 잠을 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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