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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재 Sep 26. 2016

방치한 영어가 앞길을 막는다

10년을 방치하니 걸림돌이 되어 앞을 가로막아

어느 날 갑자기 영어가 내 앞을 가로막았습니다. 상사가 유럽으로 출장을 가는데 영어를 못 해서 동행하지 못하고 엉뚱한 사람이 나 대신 가고 나는 남아서 대신 땜빵을 했습니다. 상사와 함께 출장을 가지 못한 것도 열 받는데 남아서 남의 대타를 뛰어야 하니 부아가 치밀었습니다. 약이 올라서 영어를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어떤 구체적인 결심을 하지 못했고 행동이 달라진 것은 없었습니다. 나의 영어는 전혀 달라지지 않은 채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영어를 제켜 두고 지냈습니다. 

몇 달이 지나자 해외 유학생 지원자를 모집하였습니다. “아 이럴 줄 알았으면 지난번에 영어를 시작할 걸…”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 시험에 응시했지만 역시 영어 실력이 안 돼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듯이 내던져 두었던 영어에게 연거푸 물을 먹었습니다. 내가 영어를 외면한 그대로 영어도 나를 외면했습니다. 내가 아무리 생각을 하고 열을 받아도 행동이 변하지 않으니 내 영어 실력에는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때 내 나이 서른다섯이었습니다. 

두 번이나 영어에 걸려 넘어지고 나니 영어가 다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기회가 눈앞에 나타나도 영어를 못하니 그림의 떡이었습니다. 자존심은 무너졌고 아내와 어린 아들 얼굴 보기도 부끄러웠습니다. 술도 운동도 내 가슴속의 자괴감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달래지 못했습니다. 분노가 치밀고 오기가 발동하여, “이 참에 한 번 영어와 맞짱을 떠봐?”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서른다섯이 되도록 팽개쳐 두었던 영어를 이제 와서 한다고 되기는 할까?” 하는 의구심이 일었습니다. 두 번이나 물을 먹은 지라 영어가 마치 산더미처럼 느껴졌고 도저히 붙어볼 엄두가 나지 않아 몸이 움츠려 들었습니다. 한동안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결론을 내렸습니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시작하자. 아무리 해도 안 되면 그때는 할 수 없지만, 일단 붙어 보기라도 하자.” 그렇게 해서 서른다섯에 영어와 한 판 승부가 시작되었습니다.  

가장 먼저 부딪힌 영어의 벽은 듣는 것이었습니다. 글로 써 놓으면 알겠는데 외국인이 말로 하면 도무지 들리질 않았습니다. 초등학생 수준의 말인데도 들리지 않았고 머릿속으로는 아는 것도 입으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기가 막히고 복장(腹臟)이 터질 노릇이었습니다. “아니 도대체 왜 이런가?” 이걸 어찌해야 하나?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그동안 영어는 나에게 읽고 이해하고 시험 보는 대상이었지 듣고 말하는 소통 도구는 아니었습니다. 지식으로 습득하고 시험을 위한 공부만 했지 소통을 위해서 듣고 말하는 연습을 하지 않았으니 들릴 턱이 없고 말이 나올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니 영어를 알아듣고 입을 열려면 연습이 필요했습니다. 테니스나 골프를 책으로 공부하고 이론 강의를 들어서 잘할 수는 없는 것처럼 영어를 머릿속으로 배워서 이해한다고 해서 영어가 들리고 말이 터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듣고 말하는 것은 공부해야 할 이론이 아니고 연습을 통해서 숙달해야 할 대상입니다. 결국 연습의 양과 질이 영어 소통 능력의 수준을 결정합니다. 

지나고 나서 돌아보니 영어를 마스터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엄청나게 어려운 것도 아닙니다. 영어 학습에 실패하는 가장 큰 이유는 영어 학습을 지속하지 못하고 포기하는 것입니다. 포기하는 것은 영어를 나의 삶과 연결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내 삶과 연결되지 못한 영어는 재미없고 막연하기 때문에 금방 싫증이 납니다. 영어를 할 수밖에 없는 절박한 상황에 닥친 사람은 반드시 영어를 정복할 절호의 기회를 만난 것입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그 절박함이 나를 영어에 몰입하게 하고 정성을 쏟게 하여 영어의 벽을 넘을 수 있게 됩니다. 그런데 현명한 사람은 그 절박함을 스스로 만들어 그 속에 뛰어듭니다. 그런 사람은 걸림돌을 디딤돌로 만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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