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3.12.
어제는 두번째 그림 수업이었다. 그림그리는거 정말정말 재미있다. 2시간반이 쏜살같이 지나간다. 2분씩 팔락팔락 넘어가는 종이 한장이 나의 자존감을 한 계단씩 높여주는 기분이 든다. 나도 이제 취미라는 것을 가슴한켠에 품은 직장인으로 거듭나고 있다!
지금 드로잉 수업을 수강중인데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꼼꼼하게 이것저것 그려나간다기보다는 연필이나 목탄으로 빠르게 그리는 법을 연습중이다. 첫날은 손과 사람 얼굴 드로잉을 하고 어제(둘쨋날)는 전신 그림을 그렸다. 학생들이 각자 돌아가며 서로의 모델을 했는데 역시나 너무 길어 스트레스인 나의 팔다리도 다들 멋지다고 해주었다. 나는 팔을 쭉 뻗었는데 간혹 스케치북에 다 들어가지 않는다는 말들도 해주었다. 평소보다 훨씬 자신있게 손발끝을 뻗을 수 있었다.
손을 그릴때는 사각형을 그리고 손가락들을 그리는데, 엄지손가락만 마디가 두개고 다른 손가락들은 마디가 세개라는 것을 수업을 듣고서야 처음 알았다. 매일 보는 손, 매일 쓰는 손가락을 이제야 찬찬히 바라보게 된 것이다. 난 손이 크고 긴데다가 마디가 굵은 편이지만 손톱은 자그맣다. 이때문에 간혹 남자손처럼 보이기도 해서 약간의 콤플렉스가 있었는데 그림 그리며 찬찬히 뜯어보니 늘씬하고 좋았다. 어제는, 모델들을 그릴때 전체적인 모양, 그러니까 이 사람의 전신이 삼각형인지 마름모인지 사다리꼴인지 먼저 파악하고 그후에 윤곽을 잡아가라는 선생님 말씀이 많은 도움이 됐다. 난 얼굴 어깨 골반 방향을 먼저 생각했는데 사실은 큰 덩어리를 파악하고 그 후에 윤곽을 그려야한다. 사람의 몸은 곡선으로 이어져있다는 말을 명심하니 누구나 아름다운 팔 다리 목을 가진게 보였다.
아직 서로 많은 대화를 나누지 못한 상태인데도, 서로 그림을 보니 성격이나 스타일이 짐작되는 것도 재밌었다. 제3자의 시선으로 뜯어본 나는... 남들보다 더 빠르게 그리고 싶어하고 실제로도 선을 북북 그리는 편인듯하다. 보통 1-3분 안에 그림 한장을 완성해야하는데 그리다가 맘에 안들면 휙 다음장으로 넘겨버리고 금방 이전의 실수를 까먹어버리는 것도 잘한다(실제로 다른 분들보다 스케치북을 많이 쓰는것 같다) 남들보다 그림을 크게 꽉차게 그리는 편이다. 머리보다 손이 먼저가서 휙 슥 슥 탁 휙 북 부우욱 부욱(찢는소리) 하는 경우가 많다. 다만 다른 학생들의 그림에 비해 깔끔함과 디테일은 부족한 것이 여실히 느껴진다. 내 눈에는 놀라울 정도로 세심하고 꼼꼼하게 곡선을 표현한 그림들도 있었는데 그런 그림은 손끝이나 어깨끝이 모델의 표정을 담아내는듯 했다. 나도 보다 꼼꼼하고 차분해질 필요가 있다.
금요일 퇴근 후 수업은 너무 피곤할 것 같아서 일요일 아침반으로 등록했는데 이번주에 주말에 일 있어서 금요일에 보강을 하러갔더니 의외로 이게 더 좋은 것 같아 반도 바꿨다. 금요일 저녁반은 일요일 아침반처럼 차분한 분위기는 없지만(흡사 성당에 온듯했음) 전반적인 연령대가 어린 편이고 사람도 더 많다. 불금이라 그런지 다들 들뜬 느낌도 있다. 선생님을 가운데두고 화판 위 흰 종이를 만지작 대는 학생들을 보고있자니 공연 시작 전 부풀어오르는 마음을 안고 공연을 기다리는 관객들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