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애들’이라는 오래된 말

존재하지 않는 ‘문제없는 세대’를 찾아서

by Ree
Youtube @주간채권, <육아 2년차 변호사 아빠가 말하는 요즘 육아>



노키즈존에 대해 회의적인 편이라 참 공감이 간다.


유독 한국 사회가 아이에게 친절하지 않다고 느낀다. 물론 부모가 특히 주의하고 컨트롤해야 하는 것도 맞지만, ‘아이니까 그럴 수 있다’를 최소한의 여지조차 좀처럼 인정하지 않는달까. 그냥 좀 서로가 과하고 유난이다, 싶다.



분명 이런 글을 보면


’나 때는 안 그랬다, 요즘 애들은 오냐오냐 커서 그렇다‘등의 근거 없는 일반화가 등장할 거다.


그러나 ‘요즘 애들이 문제’라는 문장은 10년 전에도, 30년 전에도, 100년 전에도 시대를 가리지 않고 늘 반복돼 왔다.


그렇다면 대체 그들이 말하는 ‘오냐오냐 안 자란 세대‘라는 게 과연 존재하기는 한 걸까. 아니면 현재를 비난하기 위해 호출되는 그저 가상의 한 집단일 뿐일까.


난 이토록 유니콘 같은 무형의 그 세대가 참 궁금하다.



모르는 아이에게 특별히 이유 없는 애정을 쏟을 필요는 없지만 굳이 적대적으로 굴 필요도, 각박하게 굴 필요도 없지 않나. 모든 세대가 달라 보여도, 결국 우리는 모두 한때 문제 취급을 받던 ‘요즘 애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이 더 예민하게 느껴지는 건, 예전보다 서로를 마주하는 방식이 달라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공공장소에서의 작은 불편도 더 쉽게 공유되고, 더 빠르게 확산된다.


개인의 경험이 곧 사회 전체의 문제처럼 소비되면서, 우리는 점점 더 타인을 ‘관리해야 할 존재’로 바라보게 된 건 아닐까.


사회가 예민해지면 부모도 예민해진다.
또, 부모가 예민해지면 사회도 예민해진다.


그렇게 되면 태어나면 반드시 겪어야 할 ‘아이’라는 지위는 어느 곳에서도 환영받지 못하게 된다.



대체 왜 한결 같이 개구리는 늘 올챙이 적을 생각 못하는 것일까. 그게 아니라면, 올챙이였던 자신을 부정해야만 지금의 ‘완성된 어른’이라는 권위를 지킬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아닐까.




덧붙이자면, 나는 미혼이고 아이를 가까이서 키워본 경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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