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어이 네 편, 내 편

미워해야만 아낄 수 있는 사이

by Ree



1-1) 미안함


아주 어린 날, 철없고 멋모르던 시절, 이 세상 나 밖에 몰랐던 유치했던 그 시절.


그 시절만 떠올리면 나는 동생에게 미안한 것이 참 많다.

지금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고, 왜 그렇게까지 했을까 싶을 만큼 동생을 꼬붕 다루듯 굴었다.

다루듯이 아니라 정말 나의 꼬붕이었지.



왜 그렇게 너의 기를 죽이고 싶었을까.

왜 그렇게 네가 내 말에 꼼짝 못 하길 바랐을까.

왜 그렇게까지 너를 괴롭혔을까.



고작 1년이다. 5년도, 10년도 아닌 고작 1년.

그 1년이란 격차로 언니와 동생이라는 서열이 생기고,

나는 그 한 뼘짜리 서열을 마음껏 누리고 싶었다.





연년생 자매.
그 어느 형제보다도 더 피 터지고 박 터지게 싸운 사이


아주 징하게 싸웠다. 정말 징하고 징하게.

머리끄덩이를 잡아당기고, 이리 치고 저리 치고, 악을 쓰며 울면서도 서로를 향한 주먹질은 멈추지 않았다.


이유는 뻔하다.

내 옷을 입어서, 내 음료수를 마셔서, 내 저금통 속 동전을 훔쳐 가서.

여느 자매들의 전쟁 사유와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우리는 이십 대 초반까지도 물리적으로 싸웠다. 정말 열심히 싸웠다. 진이 다 빠져도 서로를 할퀴고 다치게 하기 위해 그리도 애를 썼다.



서로를 밀어내기 위해 썼던 그 모든 힘이, 사실은 서로를 가장 깊이 알고 싶어 했던 몸부림이었음을 깨닫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 긴 시간 끝에,


나이를 조금 먹은 탓일까. 그 시절 나의 모습, 그리고 너의 모습을 종종 떠올리곤 한다.


그리고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잠시 돌아갈 수 있다면,


악을 쓰고 미워했던 마음은 잠시 내려두고,

너를 안아주고 싶다.


그 작은 너를 그냥 한 번 안아주고 싶다.




여기서나 끄적일 수 있는 오글거리고 낯간지러운 말이다.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아니까 기꺼이 뱉을 수 있는 그런 말인 셈. 우리는 딱 그 정도의 온도인... 그런 사이다.






1-2) 단 하나의 편


우리는 서로가 서로의 유일한 증인이다. 동시에 어린 시절 우리에게 일어났던 모든 일에 대해 서로의 편에서 서로를 대변하는 서로의 유일한 변호인이다.


우리만이 이해할 수 있고, 우리만이 아파할 수 있고, 우리만이 용서할 수 있고, 우리만이 기뻐할 수 있는 ‘우리만의 주제’가 있다.



아무리 서로를 증오하고,

서로를 다치게 하려고 애를 쓰던 사이어도

우리는 결국, 어쩔 수 없는 형제다.




느껴지겠지만,

우리는 서로에게 그리 상냥한 자매는 아니다.

오히려 틱틱대고 츤데레에 가깝다. 서로 “미안해”라고 사과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지만 어느새 풀려있고, 용서했고, 친해져 있었다.



서로 앞에선 서로를 있는 힘껏 내려치고, 무시하며 까대지만 누군가 서로를 무시하면 기를 쓰고 대변한다.


아닌 척, 은근히 내비치는 서로의 자랑은 덤.


- 2021년 어느 날, 나의 합법적 꼬붕이 자기 친구에게 내 자랑을 늘어놓는 걸 보고 몰래 사진 찍어놨다.



무엇보다 놀란 건, ‘우리 언니’라는 호칭이다.

쟤 입에서 ‘우리 언니’라는 말이, 아니 그러니까, 쟤가 그런 단어를 쓸 줄 아는 애였다니. 이런 단어가 존재하는 줄 몰라서 안 쓴 게 아니라, 그냥 안 쓴 거구나.


아,

아무튼.



우리는 여전히 서로가 그다지 믿음직스럽다거나 의지가 된다거나 크게 도움 되진 않는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에, 정말 필요한 그때엔 그 누구보다도 서로에게 꽤나 영양가 있는 그런 사람이 되어준다는 것.

기꺼이 서로의 편이 되어주고 만다는 것.


쓸모없다가도, 꼭 필요한 순간엔 가장 쓸모 있어지는 사이.

아마 우리는 그런 사이로 계속 살아갈 것 같다.

언젠가 내가 처음으로 동생에 대해 툭 올렸던 게시물



오래 싸워온 사람들이 결국 도달하는 지점은,

아마 이런 형태의 편일지도 모르겠다.








너를 가장 미워해서, 너를 가장 아낄 수 있었다.

너를 가장 좋아해서, 너를 가장 미워할 수 있었다.


네가 내 동생이어서 좋은 건 아니지만,

뭐... 싫진 않다.


그러니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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