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워해야만 아낄 수 있는 사이
아주 어린 날, 철없고 멋모르던 시절, 이 세상 나 밖에 몰랐던 유치했던 그 시절.
그 시절만 떠올리면 나는 동생에게 미안한 것이 참 많다.
지금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고, 왜 그렇게까지 했을까 싶을 만큼 동생을 꼬붕 다루듯 굴었다.
다루듯이 아니라 정말 나의 꼬붕이었지.
왜 그렇게 너의 기를 죽이고 싶었을까.
왜 그렇게 네가 내 말에 꼼짝 못 하길 바랐을까.
왜 그렇게까지 너를 괴롭혔을까.
고작 1년이다. 5년도, 10년도 아닌 고작 1년.
그 1년이란 격차로 언니와 동생이라는 서열이 생기고,
나는 그 한 뼘짜리 서열을 마음껏 누리고 싶었다.
연년생 자매.
그 어느 형제보다도 더 피 터지고 박 터지게 싸운 사이
아주 징하게 싸웠다. 정말 징하고 징하게.
머리끄덩이를 잡아당기고, 이리 치고 저리 치고, 악을 쓰며 울면서도 서로를 향한 주먹질은 멈추지 않았다.
이유는 뻔하다.
내 옷을 입어서, 내 음료수를 마셔서, 내 저금통 속 동전을 훔쳐 가서.
여느 자매들의 전쟁 사유와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우리는 이십 대 초반까지도 물리적으로 싸웠다. 정말 열심히 싸웠다. 진이 다 빠져도 서로를 할퀴고 다치게 하기 위해 그리도 애를 썼다.
서로를 밀어내기 위해 썼던 그 모든 힘이, 사실은 서로를 가장 깊이 알고 싶어 했던 몸부림이었음을 깨닫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 긴 시간 끝에,
나이를 조금 먹은 탓일까. 그 시절 나의 모습, 그리고 너의 모습을 종종 떠올리곤 한다.
그리고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잠시 돌아갈 수 있다면,
악을 쓰고 미워했던 마음은 잠시 내려두고,
너를 안아주고 싶다.
그 작은 너를 그냥 한 번 안아주고 싶다.
여기서나 끄적일 수 있는 오글거리고 낯간지러운 말이다.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아니까 기꺼이 뱉을 수 있는 그런 말인 셈. 우리는 딱 그 정도의 온도인... 그런 사이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의 유일한 증인이다. 동시에 어린 시절 우리에게 일어났던 모든 일에 대해 서로의 편에서 서로를 대변하는 서로의 유일한 변호인이다.
우리만이 이해할 수 있고, 우리만이 아파할 수 있고, 우리만이 용서할 수 있고, 우리만이 기뻐할 수 있는 ‘우리만의 주제’가 있다.
아무리 서로를 증오하고,
서로를 다치게 하려고 애를 쓰던 사이어도
우리는 결국, 어쩔 수 없는 형제다.
느껴지겠지만,
우리는 서로에게 그리 상냥한 자매는 아니다.
오히려 틱틱대고 츤데레에 가깝다. 서로 “미안해”라고 사과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지만 어느새 풀려있고, 용서했고, 친해져 있었다.
서로 앞에선 서로를 있는 힘껏 내려치고, 무시하며 까대지만 누군가 서로를 무시하면 기를 쓰고 대변한다.
아닌 척, 은근히 내비치는 서로의 자랑은 덤.
무엇보다 놀란 건, ‘우리 언니’라는 호칭이다.
쟤 입에서 ‘우리 언니’라는 말이, 아니 그러니까, 쟤가 그런 단어를 쓸 줄 아는 애였다니. 이런 단어가 존재하는 줄 몰라서 안 쓴 게 아니라, 그냥 안 쓴 거구나.
아,
아무튼.
우리는 여전히 서로가 그다지 믿음직스럽다거나 의지가 된다거나 크게 도움 되진 않는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에, 정말 필요한 그때엔 그 누구보다도 서로에게 꽤나 영양가 있는 그런 사람이 되어준다는 것.
기꺼이 서로의 편이 되어주고 만다는 것.
쓸모없다가도, 꼭 필요한 순간엔 가장 쓸모 있어지는 사이.
아마 우리는 그런 사이로 계속 살아갈 것 같다.
오래 싸워온 사람들이 결국 도달하는 지점은,
아마 이런 형태의 편일지도 모르겠다.
너를 가장 미워해서, 너를 가장 아낄 수 있었다.
너를 가장 좋아해서, 너를 가장 미워할 수 있었다.
네가 내 동생이어서 좋은 건 아니지만,
뭐... 싫진 않다.
그러니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