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의 확신

확신은 깊이를 증명하지 않는다.

by Ree



정치 얘기를 하다 보면, 같은 편이라는 사실이 무색해지는 순간들이 있다. 조금 더 사실적으로 말하자면 부끄러움에 가깝다. 방향은 같아도, 그 말의 방식까지 납득되는 건 아니다. 오히려 같은 입장이라는 이유로 더 불편해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정치는 보수와 진보처럼 몇 갈래로 나뉘지만, 실제로 더 뚜렷하게 갈리는 건 사고의 깊이다. 같은 진영 안에서도 어떤 사람은 맥락을 보려 하고, 어떤 사람은 결론만 붙잡는다. 그리고 대개 문제는, 그 결론을 가장 확신에 차서 말하는 쪽에서 시작된다.




정치를 말하는 태도를 보면, 그 사람이 얼마나 알고 있는지보다 어떻게 알고 있는지가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특히 한쪽 입장에 서 있다는 이유만으로 반대편을 원색적으로 깎아내리는 사람들을 보면, 그 확신의 근거가 깊이에서 나온 것인지 아니면 단편적인 이해에서 비롯된 것인지 의심하게 된다.


복잡한 사안을 단순하게 정리하는 능력은 분명 필요하다. 하지만 그 단순화가 현실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확신을 강화하기 위한 방향으로만 작동할 때 문제는 시작된다. 다양한 맥락과 이해관계를 걷어내고 나면 남는 건 편리한 결론뿐이고, 그 결론은 대개 지나치게 선명하다. 선명하다는 건 때로 명확함이 아니라, 생략의 결과이기도 하다.




더 흥미로운 건, 이런 유형일수록 표현이 유독 거칠다는 점이다. 논리로 설득하기보다 감정으로 압도하려는 태도는 오히려 그 주장 자체의 취약함을 드러낸다.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면 굳이 그렇게까지 과격해질 필요가 없다. 복잡함을 견딜 수 있는 사람은 쉽게 단정하지 않고, 쉽게 분노하지도 않는다.


결국 문제는 ‘어느 편이냐’가 아니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가깝다. 같은 입장에 서 있더라도, 사고의 깊이와 태도는 전혀 다를 수 있다. 하나의 책으로 세상을 정리하려는 사람과, 여러 관점을 오가며 스스로를 계속 수정하는 사람 사이에는 분명한 간극이 존재한다.


정치는 의견의 문제가 아니라, 사고방식의 문제를 더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영역이다. 그리고 그 사고방식은 말의 결보다 먼저 드러난다. 강한 확신과 깊은 이해는 철저히 다른 영역이다. 오히려 때로는 확신의 크기만큼 이해의 깊이가 얕은 경우도 적지 않다.



한 권으로 세상을 정리한 사람은 결국 그만큼만 말한다.

그리고 그 한계는 생각보다 훨씬 빨리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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