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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사라 Nov 06. 2024

9.두 번 바람+a핀 남편과 사는 아내의 일기

손 많이 가는 여자


24.10.30

남편과 화합하기로 던 때가 마침 가을이었다.
2시간 정도의 산행 끝 닿은 명성산 정상의 광활한 억새밭이 떠오른다.

밝은 햇살 아래, 부드러운 바람결.
어찌나 좋던지…

그냥 다 좋았다.
절로 미소를 베어 물고 행복으로 충만했다.
이런 좋은 곳이 있다니…

자연이 주는 충만감에 가슴이 채워지는 듯했다.


둘 만의 데이트가 17년쯤 만일까?

처음마냥 설레었다.
이런 좋은 곳으로 안내해 주고 함께 해주는 남편이 고맙고 달리 보였다.

애 낳고는 단둘이 다녀본 적이 없던 터라,

애들을 챙기지 않고, 나만 신경 쓸 수 있는 해방감이 유난히 좋았다.
그 뒤로 가을이면 억새밭을 찾는다.

작년에는 오서산, 올해는 일정이 명성산 축제와 겹쳐 주차할 엄두가 나지 않아 유명산 억새밭으로 방향을 틀었다.
산행을 1시간쯤 해서 캠핑지기들과
즐겁게 비박을 하고, 다음 날 하산하는 길에

 남게 되자, 눌러 두었던 섭섭함 

남편에게 털어놓았다.

“참 손이 많이 가.~”라고 웃으며 놀리는 캠핑지기들과 동조하는 남편 때문에 거슬렸던 것을 예전부터 참아오다가 그날 터져버린 것이다.

손이 많이 가는 예 들자면,
손 힘이 약해 병뚜껑을 잘못 따서 남편이 따주는 것과 내가 묶으면 자꾸 풀리는 등산화 끈을 남편이 보다 못해  묶어주는 것이다. 그러면 끝까지 풀리지 않는다.



그 얘기가 나온 지 꽤 되었다.
자기들은 한번 말하는 것이라 별거 아닐지라도,
듣는 나는 돌아가면서 듣는 거라 하루에

10번씩도 듣게 된다.


그날은 5명이 같이 움직였으니 1박 2일간
음료 뚜껑 딸 때, 신발끈 새로 묶고 등산, 하산할 때마다
내 귀에 메아리 져 울릴 정도다.

듣기 싫은 소리니 더욱 크게 꽂혔을 것이다.

하산하면서 남편과 둘이 있을 때
“손이 많이 간다는 말 듣기 싫어!”라고
말을 꺼냈다.
"그래?"라는 대답을 기대했다가 ,

"자기가 생각해도 너무 하다는 생각 안 어?"
"비박용 배낭 짐도 여즉 한 번도 안 싸봤잖아!”라고,
생각도 못해본 비박용 짐 싸기까지 덤터기를 맞았다. 하필 그 타이밍에 터뜨리는 남편 대답에

욱해 버렸다.

“듣기 싫었구나. 틀린 말은 아닌 거 같은데” 까지는 괜찮았을 것이다. "그래?"라고 만 했어도 조근조근 말하고 지나갔을 테고.
"그래?라고 한 템포 쉬어 준 다음에, “자기 배낭인데 직접 싸면 좋겠어.”라고 말을 꺼냈으면, 그동안 힘들었었냐고 물으면서 좋은 방법을 찾아갈 수도 있었을 텐데,
내가 먼저 발뻗었는데, 내 발은 바로 튕겨낸 채

자기 다리를 욱여넣타이밍 란 말인가?

'티키타카'가 아니라 '티타티타'가 되니 고구마 열개 먹은 기분이다.

욱한 마음에 알았다고, 이제 신발끈 내가 묶을 거고, 배낭 짐도 내가 싼다고 말을 뱉고 언쟁을 멈췄다.
30분 정도 남은 하산길 말없이 고요했으나, 속은 쭉이며 시끄러웠다. 차 타는 순간까지 10미터는 앞서 가는 남편의 뒤로, 모르는 사람처럼 떨어져 걸었다.






감정이 가라앉고 보니, 왜 그렇게 손이 많이 간다고 하는 말이 듣기 싫었을까 싶다.
넉살 좋게 “맞아요.~”라거나, “내 남편 손이 쓸만하다.”라고 넘어가면 될 걸, 왜 들을 때마다
그리 불편한지…

의문을 갖고 있다 보니 2~3일쯤 지나
답이 다가왔다.

어릴 적에 사랑받고 싶었던 어떤 아이들은
부모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는 말이
유튜브에서 들려왔다.

‘아! 저거구나!’
손이 많이 간다는 말이 불편했던 이유는
내 존재가 짐이 되어 미움받을까 봐 눈치 보며 두려웠던
어린 마음의 발현이었구나!

너무 바쁘신 부모님께 내가 짐이 되면 안 될 것 같아, 불안해서 보내는 내면 아이의 신호였나 보다.

‘너, 그 말을 듣게 행동하면 안 돼!
손이 많이 가는 아이는 바쁜 어른들이 싫어해!
귀찮게 하면 안 된다고! 그러지 마!'

이런 알아차림이 있을 때마다
잊지도 않고 존재를 드러내는 어린 마음의 발현에 놀란다.

원인을 알았다.
내면 아이의 마음이 공감이 되고, 이해가 되니
이제는 그 말이 그다지 불편하지 않다.

이제 와서 남편의 의견을 다시 고민을 해본다.
비박 배낭짐을 내가 쌀 것인가?
비박 배낭은 배낭 머리가 내 머리만큼 올라올 정도로 크다. 요새 젊은 친구들이 매고 다니는
미니멀 배낭이 아니다.
게다가 내 짐만 알아서 싸면 되는 것이 아니다. 


가는 곳의 위치나 계절, 날씨 별로 텐트부터 침낭등 준비물이 다 달라지고, 우리 둘만의 것이 아니라, 남편이 형들과 상의해서 공동의 짐도 결정한다.

거기에 그날그날 먹을 것 장 봐서 남편 것까지 함께 등분해서 담아야 되니 복잡하다.
내가 혼자 알아서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닌데,

갑자기 짐 싸기를 얘기해서 황당했던 마음은 여전하다.


이틀 정도는 차라리 내가 안 가고 만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가져갈 텐트도 남편이 다 결정하고
타프나 쉘도 남편이 캠핑지기 형들하고 상의해서 결정하면서 나보고 뭘 알아서 싸라는 걸까?

그렇게 고민해 보다가 짐 싸는 건 역시 내 일이 아니라고 남편에게 계속 미뤄야겠다고 생각을 정했다.

신발끈은 나 혼자 할 수 있으니 노력해 봐야지.






이 일에 대해 더 이상 거론한 적이 없이

1주일이 지난 주말 아침.

이번엔 4인 참여, 운길산 비박으로 정해졌다.


남편은 평소처럼  당연스레 내 것까지 배낭을 쌌고,

나도 언급 없이 자연스레 가방을 메었다.


신발끈은 내 선에서 노력해 봐야지며,

집에서 나오면서 직접 묶은 신발끈은 주차장까지 오는 길에 세 번이나 풀리는 걸 보고 민폐다 싶어

산행 시에는 직접 묶는 걸 포기기로 맘을 먹었다.


일단 중간에 을 묶으려 멈춰 서면 일행과 속도 차이가 난다.

내가 묶는다고 해도 거운 비박 배낭 때문에 엎드리기 힘이 들어, 배낭을 들어주는 둥의 남편의 도움을 받아야 다.

남편이  준다 해도, 남편 자신의 100리터짜리, 엄청 무거운 배낭을 진 채 무릎을 꿇고 묶어야 해서 힘이 들기에, 출발 시에 만반의 준비를 하는 게 좋기 때문이다.


차에서 내려 남편이 싸준 배낭을 지고,

발을 착 내밀었다.

남편 동으로 무릎 꿇고서 신발끈을 묶어주었다.

둘 다 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일주일 전의 싸움이 없었던 것처럼.

그러고 씩씩하게 산행을 시작한다.


오늘도 캠핑지기인 남편의 선배들이 놀린다.

"아이고. 우리 동생은 평생 마누라 신발끈 매야겠네.

팔자다. 팔자!"


그러거나 말거나 이미 마음의 정리를 마친 내 귀에 이제는 거슬리지 않고 흘러간다.

남편도 반응 없이 묻혀간다.


이번에는 산에서 비박짐을 쌀 때 처음으로

내 가방에 넣을 것을 물어봐 가면서 직접 쌌다.

이것이 1주일 전 싸움 뒤 유일한 변화다.

내가 할 수 있는 것 정도는 직접 하는 것.






어릴 적 혼자서 많은 것을 감당했던 아이는 의존을 힘들어한다.

차라리 주는 게 낫지, 받는 게 더 힘들다.


적절한 의존성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낀다.

의존은 서로의 존재를 필요로 한다는 인정이다.

인정 속에서 안정감을 느낀다.

화합을 통해 부부간의 의존을 배우는 요즘,
마치 테트리스 조각처럼 맞물림을 경험한다.


남편은 나에게, 나는 남편에게 의존하면서

관계에 친밀감이 더 해진다.

친밀하니 함께 할 수 있는 게 많아진다.

둘이서도 전보다 풍족한 시간을 보낸다.

일상이 더 다채로워진다.


타인에게 의지하는 게 불편했던 꼿꼿한 마음은

길에 놓인  빼족한 돌멩이처럼 발에 걸려

불편하게 했다.


내 체급을 무시하고 모든 짐을 직접 지어야 속이 편했던

' 일은 내가 알아서~' 컴플렉스라고 하면 되려나?


이 컴플렉스의 가장 큰 병은 도움을 요청한다는 것은 딴 나라 얘기라는 점이다. 이 부분은 길 위의 돌멩이 정도가 아니라, 큰 바위가 가로막고 서있는 정도의 고난이 된다.




나이 먹어 좋은 점이랄까?
뻔뻔함? 유연함?

예전 같으면 내가 뱉은 말지키려

(그런 줄 알았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핑계 대며 나약한 모습 보이기 싫고, 싫은 소리도 듣기 싫어서. 결국 의존을 못해서)
꼿꼿이, 뻗뻗하게 딱거리며 직접 짐 싸고, 신발끈 묶은 게 계속 풀려도 미련하게 버티다가 결국은 틀어져 

차라리 안 가고 만다고 우기다

둘 다 피곤해졌 수도 있을 것 같다.


이제는 아무 말 없이도 둘 다 접을 건 접고,

포기할 건 포기하면서 편안한 동행을 얻었다.


남편 무언가를 내려놓겠지.


 삶에 50대가 있을 줄은 생각을 못했었다.

어릴 때는 30대, 40대가 생각의 최대치였으니까.


이혼결정을 보류하고, 그동안은 화합을 목표로

결혼 생활을 되돌아보며 노력을 시작한

50부터 멈춰있던 내 삶의 시계가

다시 돌아가는 느낌이다.


나로 살기 위한 몸부림…
중심…
적당한 독립성과 적당한 의존성의 사이

그 어딘가의 적정함을 찾아가기…

조화와 균형…

전체 속의 나.
나이 어 좋은 것들이다.



Ps: 24.11.11 손 안타는 여자. ^^


청명한 가을의 북한산에 오르며, 신발끈이 안 풀리게 묶는 법을 물었다. 남편이 시범을 보이며 세세히 가르쳐주어 따라 해보니, 완주할 때까지 한 번도 풀리지 않았다. 조이기를 느끼며 직접  조절하니 더 좋았다.



2024.10.유명산 억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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