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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사라 Oct 30. 2024

7.두 번 바람+a핀 남편과 사는 아내의 일기

'이별할 때'에 대한 단상


24.10.22


동창회에 대 내 생각을 쏟아내놓고 서로 건드림 없이 휴지기를 갖고 있다.


내 생각은 여전하기에 다시 주워 담고 싶은 말은 없다.


하지만, 어제 말을 토해내듯 꺼내놓고서

하루종일 가슴께가 답답하니 막혔었다.

맞는 말이다 싶고, 하고 싶던 말이지만

남편에게 철부지니, 아이 같다는 등의 내리까는 말을 들려준 것에 맘이 불편했다.

남편이 3살 연하라 그런 식의 언급은 피해왔었다.

그가 받았을 상처가 걱정되지만, 지금은 기다릴 때이다.


내가 했던 말들이 너무 싫었다면,

남편의 마음이 나에게서 튕겨나갈 수도 있겠지.


내 말과 입장을 철회할 생각이 없으니 감수해야겠지만,

역시 나를 싫어하게 된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쫄리는 일이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오늘 아침 청소를 하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이별의 순간은 각자가 정하는 거구나.

상대 잘못이 첫 번째 이유가 아니라,

내가 아쉽지 않다고 판단되는 순간이 시작이고,

놓아지는 순간에 이별인 거구나.


얘들이 컸다, 경제적 자립이 됐다, 부모님 눈치를 안 봐도 된다, 등의 더 이상 참을 이유가 없어졌을 때.

밖에 다른 사람이 생겨서 너 아니어도 아쉽지 않을 때.

그 사람이 주는 이득에 좌우되지 않고 자유로워졌을 때.

네가 아니어도 괜찮을 때.


내 손해가 아니고, 아쉽지 않을 때.

참고 견딜만한 가치가 없다고 느낄 때.

거기에 뭔가 +1이 얹어지면

그 순간 마음의 추가 넘어가는 것.


그 위에 각자의 의리나 정, 인내심, 책임감 등이

+ -의 그래프를 그리다 결국 만나는 마침표.


결국 이별의 판단이 선 순간, 놓아버려 질 때.


그래서 상대가 나한테 소홀할 때, 이별을 통보할 때, 가책을 느끼면서 미안해할 필요가 없는 거구나.


상대는 자신의 이득을 고려한 계산을 끝낸 것이지,

내 탓이 아니다.


너의 이별은 네가 정하는 거지

내가 집착한다고 해서 좌우할 수 있는 게 아니구나.


나는 남편에게 뭐가 아쉬울까?


집착의 이유가 뭘까?



내가 선택했다. 바람핀 그와 더 살아보기로.


내 선택을 존중하고 믿고 충실해야 한다.


나를 위한 선택이었고, 내 삶은 소중하니까.



하지만 그의 모든 걸 존중하고 배려할 수는 없다.


문제인식 없이 여전히 동창회를 고집하는 안일함 같은 것들.

밖의 사람들에게 호인으로 보이고자,

가까운 가족들이 안 보이는 순간 같은 것들.


그렇다면 나는 그의 무엇에 집중하고 존중하고 배려해야 할까?


나는 무엇 때문에 그를 선택했지?


함께 하는 게 이익이라 판단했을 텐데


그 기준이 무엇일까?


일단, 가장으로서 존중. 존경.




분리할 필요가 있다.


그의 유책에 프레임을 씌워 모든 걸 싸잡아서 깎아내려선 안된다.


완벽하지 못하다고 불만스러워하는 이니

어리석은 면도 있다.


완벽주의적이고 감정적인 내 성향은

서로를 힘들게 한다.


모자이크 조각처럼 잘게 쪼개서 분화해서

볼 필요가 있음을 느낀다.


얘들의 아빠로 남편으로 가장으로서 충실하다.


화합을 결정한 후

4년 전에 먼저 각방을 시작했던 남편이

다시 안방으로 들어와 합방하고,


캠핑, 백패킹, 등산을 함께 하며, 술친구, 여행친구 등 가장 편안한 절친이 되었다.


소중하고 대체하기 어려운 가치이다.


아쉬운 점이야 바람 경력자라는 점이다.

도덕적 해이와 충동성도 문제다.


사람을 좋아하고, 노는 걸 좋아하는 한량 기질이 있.

이것은 때에 따라 장점도 되고 단점도 되어 쓰기 나름이다.


자기 욕망과 쾌락을 우선한다는 점, 타인에 대한 의존도(체면, 인정욕구)가 높은 성향인 점에 주의가 필요하다. 이 부분에 대한 관점은 숙제다.

내 기준이 높은 면도 있고, 서로 다르다는 점도

고려해야 할 테지.


내가 집중해야 할 점은

지금 나에게 필요하고 아쉬운 점이다.


정서적 보살핌.


신체적 보살핌.


경제적 보살핌.


필요로 하고 의지하고 있다.

내 안의 결핍된 어린아이는 아직 보살핌이 필요하고 남편의 보살핌이 좋다고 말한다.

남편이 현재의 애착대상이 되어주고 있다.

다행히 아직 시간이 있다.

기회가 있다.


어떤 기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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