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을 회고하며.
이제는 무언가를 좋아한다고 말할 때 ‘얼마만큼’을 설명해야 하는 세상이 된 것 같다.
취향이라는 건 뭘까. 어떻게 하면 생기는 걸까. 내 푸념 섞인 질문에 L이 말했다.
"회사 사람이 그러는데, 커피 좋아한다는 말도 함부로 하지 말래. 커피를 좋아한다고 하려면 원두 품종 차이, 로스팅 정도, 추출 방식, 역사까지 줄줄이 꿸 줄 알아야 한다고. 그래서 어디 가서 커피 좋아한다고 말하지 말래."
"그럼 뭐라고 해?... 나는 커피를 자주 마셔... 라고 해야 해?"
"그러니까. 이런 걸 취향이라고 하나 봐."
올해 나는 취향에 대해 정말 많이 고민했다. 좋은 취향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었다.
취향에 좋고 나쁨이 뭐가 있겠냐마는 그냥 '나'하면 딱 떠오르는 무언가를 가지고 싶었던 것 같다.
얼마 전 알게 된 C는 어릴 때부터 모아온 만화책이 작업실 한쪽 벽 전체를 차지한다고 했다.
절대 모를 것 같은 유명하지 않은 만화책 제목을 말해도 "아 그 만화 알죠-"로 시작한다.
C의 동료 L은 그에 못지않은 시네필이다. 자기 분야에서 나름 이름난 사람들이 소소한 취향에 대해
이야기할 때 눈이 반짝이는 걸 보면, 왠지 덕후들이 성공한다는 말이 실감이 나기도 했다.
나는 덕후 기질이 없어서 그렇게 성공하지 못했나,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어떤 음악 좋아해?
어떤 영화 좋아해?
어떤 음식 좋아해?
그놈의 '좋아해'로 끝나는 질문들은 내 말문을 여러 번 막히게 했다.
좋아하는 색깔은 어디에 쓰이느냐에 따라 다르고,
음악은 기분에 따라 바뀌고,
음식은 어제 뭘 먹었냐에 따라 달라지는데 말이다.
그래서 한동안은 켜켜이 쌓아온 취향을 정체성처럼 지니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동경하면서
정작 스스로는 무색무취의 인간이라 자조하곤 했다.
내 취향이 흐릿해서 나라는 사람도 희미하게 보이는 건 아닐까 생각하면서.
취향을 생각하다 보니 나는 대상이 무엇이든 좋고 싫음이 선 명한 편이 아니다.
작년에 점사를 봐주던 분이 말하길,
“선생님은 주변에 사람이 많이 모이는 데, 좋은 사람도 있지만
똥파리도 꼬이는 팔자”라고 했었다.
이런 사람들까지 다 품으려고 하니 힘이 드는 것이라며
내 인생의 가장 큰일이 바로 ‘똥파리 색출’이라고 당부했었다.
그 말을 듣고 난 후로는, 평소에 잘 어울리던 사람이라도 살짝 맞지 않는 느낌이 들 때면,
순간적으로 ‘혹시 이 사람이 그 똥파리인가?’ 하고 의심하기도 했었다.
이렇게 생각하니 내가 마주하는 사람의 80% 이상은 다 잠정 똥파리로 결론이 나고,
앞으로는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지 못하게 될 것 같았다.
사람은 2D가 아니기에 360°로 돌려봐야 알 텐데, 문제는 단 90°도 돌려 볼 여유가 없다는 것.
올해 초 꾸준히 일기를 써보겠다고 노트 한 권을 샀었다.
꾸준함에는 도달하지 못했지만 드물게 써놓은 기록을 다시 보니
절반 이상이 인간관계로 비롯된 안 좋은 감정들이었다.
불과 열 달 전만 해도 죽일 듯이 미워하고 분노했던 사람이
돌이켜 보면 그냥 자기 발밑은 못 보는 사람이라서 그랬구나 하면서 한 김 식어졌고,
반대로 어떤 사람과는 그때는 서로를 이해할 만큼 마음의 높이를 맞추지 못해서,
감정이 상했었나 보다 하고 털어버렸다.
물론 나는 인류애가 넘치는 사람은 아니다.
이렇게 왔다 갔다 하는 걸 보니 나의 취향은 분명하기보다는 흘러가는 감각에 더 가까운 것 같다.
조금씩 변하고, 상황에 따라 흔들리고,
때로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튀어 오르기도 하는 그런 감각.
취향을 발견하려면 다양한 시행착오를 겪을 여유가 필요하다.
아직까지는 그 여유를 조금 더 가져봐도 괜찮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