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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원 Jul 17. 2023

다른 사람의 인생을 표절하지 않는 삶



 서점에 갔다. 진열된 책들을 보며 나는 잠시 다른 사람의 인생의 표절을 꿈꾸었다. 내 인생은 반지하에 갇혀  반틈 사이로도 햇빛이 보일락 말락 하는데  수많은 책에 담긴 사람들은 벌레도 올라가기 버거운, 습도도 느껴지지 않는 건조하고 시원한 바람이 부는 지상 11층에 사는  같았다. 괜한 열등감이 차올라 처참한 기분이었지만 아무렇지 않은  태연히 그중 가장 마음에 드는 인생을 골라 이리저리 들춰보았다. 20대에는 그런 책들을 보면 삶에 대한 열정과 야망이 꿈틀거렸다. 30대가 되니 그런 책들을 보면 세상이 얄궂게 느껴졌다. 나도 열심히 살았는데  인생만 구질구질해 보였다. 음성 없는 문자로 난도질당한 나는 아무런 책도 사지 않고 터덜터덜 걸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나다움을 강요받는 사회 분위기 속에 오히려 나는 나를 잃어간다. 자꾸만 나의 인생을 설명하고 정의 내리고 싶어 진다. 나라는 존재를   자극적이고 효과적으로 타인에게 전달하고자 한다. 그것이 시대의 흐름임을 인정하지 않으면 도태될  같은 두려움이 든다. 하지만 선명하게 나를 알아가려고 할수록 나는 점점 희미해진다. 두려움이 밀려온다. 그렇게 세상의 거친 파도에 떠밀려 작은 배를 타고 제주도에 왔다. 이상한  희미해져 지워버리려 노력할수록 짙어지는 지난 기억 속의 나로 인해 때때로 울음이 터진다는 것이다.  모든 감정이 시들어 버린  알았는데 최근에 감사함과 행복, 슬픔과 분노를 느낄 , 파릇파릇 새순 같은 감정이 살아났다. 어느덧 제주도에   1 , 삶이 막막해  죽고 싶던 나는 처음으로 살고 싶어 졌다. 


 예전에는 현실적이고 염세적인 것들에 대해 흥미를 느꼈다. 클래식을 들어도 단조 음악이 훨씬 더 끌렸고 대중가요도 가슴을 후벼 파는 선율과 가사를 더 좋아했다. 책이나 영화를 볼 때도 주인공에게 진흙탕 같은 인생의 서사를 녹여낸 것들을 보며 감정 이입하곤 했다. 그렇게 일부러 나는 나에게 고통을 주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죽고 싶었던 날들이 가득했었기에 거침없이 고통을 선택했다. 내가 행복한 감정을 느끼는 것 자체를 허용하지 않았다. 행복하고 즐거운 감정을 느끼면 죄책감이 들었다. 그런데 요즘은 전혀 관심 없던 동화 같은 기승전결의 해피엔딩이나 판타지를 다룬 영화나 소설을 본다. 꼭 행복을 꿈꾸는 것처럼. 그래서 다시 깨달았다. 나는 이제 숨 막히는 죽음을 갈구하지 않고 진부한 영화의 주인공처럼 해피엔딩으로 살고 싶어 졌다는 것을. 눈물이 났다. 살고 싶다는 건 이런 느낌이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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