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나를 만나다 中
그날은 바다에 들어가지 못한 아쉬움에 올레길을 걷고 또 걸었다. 그 동네 길을 다 외울 기세로 골목들도 샅샅이 돌아다녔다. 옷과 모자는 색이 변할 정도로 흠뻑 젖었고, 내 몸도 물에 들어간 듯 첨벙거렸다. 입실 시간에 맞춰 그날 필요한 것들만 챙겨 늘솜 게스트하우스에 들어섰다. 다른 게하에서는 만날 수 없었던 반가워하는 사람들이 왠지 모르게 낯설었다. 그들은 바다에 갔다가 잡아온 소라와 고동에 소주 한잔 기울이던 중이었다. 처음 본 내게도 권하며 친근하게 대했지만 땀으로 범벅된 나는 모자를 벗으며 빨리 방을 안내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다행히 센스 있던 그녀가 서둘러 따라오라며 미소 지었다. 나이는 20대 후반쯤 되어 보였고, 화장기 없는 얼굴에 긴 머리를 대충 묶어 올려, 이곳 스태프인가 싶었다. 내가 머물 곳을 안내하고 마른 수건을 접으며 그녀는 늘 그래 왔던 것처럼 주절주절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자신은 스태프가 아니고 5일 전에 손님으로 왔다가 재미있어 머문 것이 어느덧 5일이 지났고, 사장님이 착해서 수건은 1인당 2장인데 여러 장을 쓰도록 그냥 허용하는 것 같아서 자신이 수건을 빨아서 접어 놓은 것뿐이라고. 그리고 일찍 왔으면 맛있는 소라를 함께 먹었을 텐데 아쉽다고. 얼른 씻고 저녁에 술 한잔 함께 하자고. 나는 이야기를 듣는 내내 적당히 웃으면서 수긍하는 척했고, 그녀는 그렇게 수건 정리를 마치고 나갔다.
나는 겨우 한숨을 쉬며. 한낮의 피로를 풀기 위해 미지근한 물로 샤워한 후 침대에 엎드렸다. 내 체력처럼 간당간당해진 휴대폰 배터리도 충전하고, 내일 일정을 다시 확인했더니 배고픔이 밀려왔다. 그때 내가 배고파하는 걸 알고 있다는 듯, 그녀가 다시 등장해 식당으로 오라고 했다. 나는 당장이라도 뛰어나가고 싶었지만 급한 일이라도 처리하려는 듯 곧 가겠다고 해놓고도 좀 더 머물다가 식당으로 향했다. 그 몹쓸 어색함을 누르면서. 해는 뉘엿뉘엿 바다를 넘어가고 있었고 식당에 모인 손님들은 이미 낮부터 기울인 술자리에 발그레한 모습이었다. 나는 원래의 나보다 훨씬 밝은 나를 꺼내어 들고 취기 오른 그들과 보조를 맞춰 나갔다. 그나마 내 성격에 술을 좋아하는 건 신의 한 수가 아닐까? 흐트러지는 게 싫고 정돈되고 싶은 욕구가 있다가도 술 한잔 기울이다 보면 좀 느슨해지고 편해지기도 하니까. 그렇게 그들과 여행을 오게 된 이유나 남은 여행에 대해 이야기 나눴다.
이곳이 좋고 사장님이 좋아서 여행 일정을 변경해 더 머물고 있다는 이야기, 휴가 없이 7년간 해외에서 일하다 한 달 휴가를 받아서 혼자 제주에서 한달살이 중이라는 이야기, 다니던 직장에 사직서를 제출하고, 마지막 휴가를 보내고 있다는 이야기까지…… 그런데, 하나같이 하룻밤을 계획했다가 길어지고 있다고들 했다. 무엇이 이들을 늘솜에 머물게 했을까? 다른 게하에 비해 깔끔하지도 멋스럽지도 고급지지도 않은 늘솜의 무엇이 그들을 붙잡고 더 머물게 하는 걸까? 내게도 그런 무엇이 있었으면 좋겠다. 머물고 싶어 지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