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리터러시
명절 밥상머리 토크 주제는 단연 손혜원 의원과 목포 원도심 이야기였다. 우리 집이 40년째 손혜원 거리로 불리는 만호동에 살고 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전국의 많은 집들이 설 명절에 한 번쯤은 얘기를 나눴을 것이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벽에 부딪혔다. 그 동네를 잘 알고 심지어 살고 있기 때문에 우리 집 친척 어른들도 당연히 모두 나와 생각이 같을 거라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모두 손혜원을 두고 투기는 맞다고 한 목소리를 내셨다.
한 술 더 떠서 감옥에 하게 될 거라는 둥, 손혜원 의원이 감옥에 안 가면 김정숙 여사가 가게 될 것이라는 황당한 얘기까지 단호하게 얘기하셨다. 황당 그 자체였다. 그러면서 늘어놓은 근거는 죄다 가짜 뉴스들이었다. 조카들에게 1원 한 장 주지 않았다더라. 남동생은 부인과 서류상으로만 이혼하고 같이 산다더라. 올케를 일 시키면서 최저시급으로 월급 준 게 전부이고 퇴직금도 주지 않고 쫓아냈다더라..... 등등. 나는 그 모든 것은 거짓이고 가짜 뉴스라고 하자 화를 내시면서 여기 다 나온다며 그럴싸한 뉴스처럼 꾸민 유튜브를 보여주셨다.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이거였구나. 저들이 그린 그림이....
SBS는 그저 마중물에 불과했다. 우리가 SBS에 집중하며 왜 그런 보도를 하게 되었는지 분석하고 비판하는 동안 수백, 수천 개의 가짜 뉴스는 유튜브라는 매체 속에서 날개 돋친 듯 퍼 날라졌다. 가짜 뉴스를 내밀며, 이게 진실이야를 외친 작은아버지의 두 눈은 확신에 차 있었다. 나는 헛웃음이 나왔고. 우리 어머니의 만류에 더 이상 언쟁하지 못하고 물러섰다.
작은 방에 들어가 귀에 이어폰을 꽂고 흥분된 감정을 추스르는데 도통 화가 가라앉지 않았다. 무엇이 저분들을 그렇게 만들었을까? 그 많은 진실보도는 왜 작은아버지한테 도달하지 못했을까?
우리는 뉴미디어 시대, 크로스미디어 시대를 넘어 옴니미디어 시대를 살고 있다. 소셜미디어의 단순 활용을 넘어 수많은 기술력이 버무려져 쌍방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저널리즘으로의 파워까지 갖게 되었다. 특히 그중에서 유튜브의 성장은 상상 이상으로 엄청나다. 유아, 초등학생들의 유튜브 사랑이야 핑크퐁, 캐리와 장난감 친구들의 성장만으로 충분히 설명될 테지만. 50대 이상 어른들의 유튜브 사랑도 눈여겨볼만하다
10대에서 50대 이상까지 연령대별 유튜브 총 사용시간을 비교해도 50대 이상이 10대 다음으로 높을 정도로 유튜브 사용시간은 엄청나다. 중장년층의 유튜브는 충분히 다양한 미디어를 활용하지 못하는 것에 비해 유튜브 의존율이 상당하다. 스마트폰의 이용시간 대부분이 유튜브 시간일 수 있다. 위기감이 느껴진다.
유튜브 이용률을 보면 20대는 10명 중 9명이 50대, 60대도 10명 중 7명이 유튜브를 이용하고 있다. 또한 유튜브를 통해 가짜 뉴스를 본 경험자 비율 역시 20대 다음으로는 60대 이상이 가장 높다. 문제는 매체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무분별하게 거짓 콘텐츠에 노출될 때 맹목적인 수용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미디어로 접한 뉴스나 콘텐츠를 맹목적으로 수용한다면 가짜 뉴스는 진짜 뉴스로 둔갑한다. 그러나 그 현상이 나이가 들면 들수록 더욱 맹목적이 된다는 점은 아쉽지만 현실이다. 어른들에게 유튜브 콘텐츠는 지상파 뉴스와 다르지 않은 공신력을 갖는다. 어른들은 유튜브의 수많은 콘텐츠가 누구나 쉽게 만들 수 있다고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유튜브가 뉴스매체냐 아니냐는 이견이 있겠지만 뉴스매체로서의 기능을 한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셀 수조차 없는 콘텐츠가 나름의 이름을 달고 온 국민의 손에서 손으로 퍼 날라진다. 개인이 실제로 인터넷 언론사를 만들려고 하면 수많은 절차와 제약이 있으나 지금 내가 유튜브를 통해 뉴스를 제작하려고 채널을 하나 만들고 적절히 짜깁기 한 영상 콘텐츠에 광고까지 붙이는 데는 반나절도 걸리지 않는다. 그러나 어르신들에게는 유튜브의 콘텐츠와 지상파 뉴스의 콘텐츠를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고 둘 다 똑같은 뉴스라고 생각한다. 누구나 만들 수 있고 많이 보면 돈도 벌 수 있음을 알지 못한 탓에 유튜브에서 본 가짜 뉴스도 공신력 있는 진짜 뉴스로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건전한 정치논쟁의 장을 저들에게 빼앗긴 적이 몇 번 있다. 네이버 뉴스 댓글이 그랬고, 다음 아고라가 그랬다. 국가권력의 힘으로 댓글을 조작했고, 말도 안 되는 거짓을 그럴듯하게 포장해 정상적인 논쟁이 불가능하게 물을 흐리는 작전을 써왔다.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보상 없이 움직이지 않던 그들에게 유튜브는 더없이 좋은 먹잇감이었다. 삼성, 국정원을 통해 돈을 받고 그 흔적이 계좌에 고스란히 남게 됨에 따라 밝혀질 수밖에 없었던 공작들이 유튜브 속에 들어간 순간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돈을 받고 목적 달성을 위한 거짓 뉴스를 퍼트리는 게 가능해졌다.
보수는 왜 유튜브로 갔나?
유튜브는 콘텐츠의 신뢰도를 다각도로 평가해 광고수익을 배분한다. 하지만 모두 조정 가능한 수치들의 결합일 뿐 실제로 내용의 신뢰도를 평가하지 않는다. 예컨대 구독자수, 조회수, 좋아요 수, 시청시간 등 소위 말해 충성도를 평가해 일정 수준 이상이 되었을 때 해당 콘텐츠에 붙는 다양한 광고수익을 유튜브 채널 관리자와 나눈다. 그에 따라 유튜브의 수익은 콘텐츠의 진실 여부는 수익과 전혀 상관이 없으며, 거짓이라 할지라도 영상을 삭제하거나 채널을 폐쇄하기란 역시 쉽지 않다.
결국 돈이다. 말도 안 되는 가짜 뉴스를 퍼트리는 유튜브 채널에 돈을 벌게 하고 싶다면 이제는 계좌로 쏴줄 이유가 없어졌다. 수많은 유튜브 계정을 만들고 수시로 해당 영상을 시청하게 하는 매크로를 돌리고 생방송을 할 때 자연스럽게 후원을 하면 그만이다.
유튜브를 통해 상당한 금액을 후원하는 게 가능해져 더 자극적인 콘텐츠를 만들게 되고 욕설과 거짓은 더욱 늘어만 가게 된다. 게다가 진보진영의 메신저들이 지상파 등 기성 언론에 집중하는 사이 상대적으로 설자리를 잃었던 보수진영의 메신저들이 유튜브를 통해 입지를 굳혀가고 있다.
이 모든 게 나의 억측일 뿐, 자신들의 유튜브에서는 진실만을 말하고 있다고 할지 모른다. 그리고 실제로 돈도 되지 않는다며 제 돈 들여 희생과 봉사를 하고 있다고 할는지 모른다. 하지만 이걸 알아야 한다. 보수진영에서는 여태 기브 앤 테이크 정신없이 순수한 양심에 따른 행동을 해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유튜브는 앞으로도 거대한 힘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 유튜브는 24시간 내내 공짜다. 유저들은 돈을 내지 않아도 다양한 것을 쉼 없이 볼 수 있다. 주제와 방식에 제약이 많은 지상파에 만족 못한 어른들은 유튜브를 통해 자극과 일탈을 경험한다. 그렇게 경험이 축적되고 나면 더 강한 자극을 찾기 마련이다. 오늘부터 부모님께 말씀드리자. 유튜브는 누구나 만들 수 있고 영상을 보고 나면 영상을 올린 사람이 돈을 버는 구조라고 알려드리자. 그리고 가짜 뉴스를 일삼는 채널을 구독하고 계신지 체크해보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른들이 로그인을 하시면 자동적으로 어르신 세대에서 인기가 높은 보수진영의 가짜 뉴스 채널이 추천되고 수시로 유혹하게 될 것이다. 유튜브는 세분화된 세그먼트 분석을 통해 유저와 비슷한 그룹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를 수시로 추천한다. 유튜브 내에서 유저의 체질을 바꾸지 않으면 계속 그 거짓 뉴스들이 우리 부모님을 유혹하고야 말 것이다. 지속적으로 부모님들의 휴대폰을 점검해보자.
기성 언론사 채널을 제외하고 진보, 보수의 채널 구독자수를 봐도 보수의 우세가 압도적이다. 우리는 판을 읽고 전략을 짜서 장악하는데 또 한 번 실패했다. 빨강을 당색으로 선택할 때도, 5.18을 지만원을 통해 물 흐리기 할 때도, 김경수를 증거 없이 추측만으로 구속할 때도... 저들은 생각보다 전략적이고 치밀하다는 것을 잊지 말자.
꺼진 유튜브도 다시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