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창조자이자, 누군가의 괴물
프랑켄슈타인: 현대의 프로메테우스
원제: Frankenstein; or, The Modern Prometheus
By Mary Shelley
In 1818
“아, 프랑켄슈타인. 다른 사람들에게는 공정하게 대하면서, 나만 짓밟지는 말아 줘. 내게는 당신의 정의, 심지어 관대한 처분과 사랑이 가장 절실하게 필요하니까. 잊지 마, 나는 당신의 피조물이야. 나는 당신의 아담이라고. 아니, 나는 하늘에서 추락한 천사인 셈이지. 난 잘못한 것도 없는데, 당신은 나를 기쁨에서 쫓아냈지….”
1.
200여년 전에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이 탄생한 이래로 결국 과학과 문명의 빠른 발전을 넘어 인공지능의 시대를 열면서 다시 ‘괴물’은 소환되었습니다. 이 소설은 단순히 무서운 이야기가 아닙니다. ‘과연 인간은 스스로 만들 결과에 책임을 질 준비가 되어 있나’에 대한 질문입니다.
2.
1818년 발표된 『프랑켄슈타인; 혹은 현대의 프로메테우스』는 ‘과학을 통한 생명 창조’를 모티프로 삼은 근대 SF 소설의 시초입니다.
부제 『현대의 프로메테우스』는 과학적 오만과 윤리적 책임의 부재, 즉 "창조는 가능하나 책임은 지지 않는" 비극을 경고하며, 오늘날 AI, 유전자 조작, 생명 공학 등 첨단 과학 윤리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피조물인 ‘괴물’은 세상에 거부당하고 소외된 타자의 상징이며, 우리는 이 괴물의 고뇌를 통해 인간성의 본질을 되묻게 됩니다.
더불어, 이 작품은 당시 19세 소녀였던 작가 메리 셸리의 비극적인 삶과 깊이 얽혀 있습니다. 어머니의 부재, 자녀들의 상실, 그리고 불안정한 관계에서 오는 죽음과 죄책감의 경험은 창조자 프랑켄슈타인의 죄의식과 괴물의 고독으로 투영되었습니다. 『프랑켄슈타인』은 낭만주의 시대의 충돌 속에서 셸리의 슬픔을 형이상학적으로 재현한 심리적 자서전이자, 인간 내면의 공포와 욕망을 탐구한 심리적 고딕 문학의 선구적인 작품이기도 합니다.
3.
프랑켄슈타인은 그를 ‘괴물’이라 불렀고, 태어날 때부터 ‘악마’라 단정했습니다. 그가 만난 세상 사람들 역시 모두 그렇게 믿었습니다. 하지만 피조물은 단지 사랑받지 못한 존재였습니다. 그를 괴물로 만든 것은 흉측한 외모가 아니라, 사회 전반의 냉혹한 외면이었습니다. 이는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고, 사랑받을 권리를 박탈당한 데서 비롯된 극한의 외로움과 좌절의 상징입니다.
반면, 프랑켄슈타인의 도주는 자신이 만든 생명에 대한 윤리적 책임을 회피한 인간의 오만을 보여줍니다. 의 두려움과 회피가 모든 비극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괴물의 외로움에 공감하면서도, 창조자의 무책임함에 분노합니다. 그 복합적인 감정 속에서 우리는 타자에 대한 연민과, 인간으로서의 책임의 무게를 깨닫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만약 우리가 ‘괴물’이라 불릴 만한 경계선의 존재를 실제로 마주한다면— 우리 역시 프랑켄슈타인과 그의 가족, 드 라세 가족처럼 두려움과 거부로 반응할 것이라는 불편한 진실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4.
오늘날 우리 역시 수많은 '창조'를 합니다. 말 한마디, 선택 하나, 관계 하나가 또 다른 존재를 만들어냅니다. 그 결과가 우리에게 돌아왔을 때, 우리는 프랑켄슈타인처럼 도망칠 까요, 아니면 그 '괴물'과 함께 살아갈까요.
우리는 창조자의 무책임함에 분노하면서도, 정작 우리 자신이 만든 결과로부터는 도망치고 싶은 유혹을 느낍니다.
우리가 만든 관계와 결과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책임질 준비가 되어 있을까요?
5.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창조자이자, 누군가의 괴물로 살아갑니다. 관계 속에서 상처를 주고받고, 때로는 사랑을 가장한 무책임으로 서로를 만들어냅니다. 『프랑켄슈타인』은 그 모든 결과 앞에서 도망치지 말라고 합니다.
괴물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결국 내가 만든 세계와 나 자신을 끝까지 마주하는 일입니다.
“당신은 당신이 만든 세계를 사랑할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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