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람 스토커의 드라큘라

생명, 욕망, 관계와 기억

by 가오나시


브람 스토커의 드라큘라

원제: Dracula

By Bram Stoker

In 1897

He is a monster, a barbarian from the darkness of Eastern Europe, an outrage to all the laws of civilisation as we know it.


1. 시대를 초월한 불안의 보편성

불안의 얼굴은 시대를 바꿔도 닮아 있다. 욕망과 두려움, 문명과 파괴의 이중성을 비추는 거울이기 때문이다.


브램 스토커가 느꼈던 19세기 말의 불안—낯선 것에 대한 공포, 급변하는 기술과 가치의 충돌, 문명의 붕괴에 대한 두려움—은 지금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다. AI, 팬데믹, 기후 위기, 정체성의 혼란 속에서 우리는 또 다른 형태의 '드라큘라'들과 마주하고 있다.


동유럽에서 온 백작이 영국 사회를 위협했듯, 오늘날 우리는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 제어할 수 없는 알고리즘, 예측 불가능한 미래 앞에서 같은 무력감을 느낀다.


공포의 대상은 달라졌지만, 인간이 느끼는 불안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것, 이해할 수 없는 것, 그러면서도 우리 삶 깊숙이 침투해 들어오는 것에 대한 원초적 두려움 말이다.


2. 빅토리아 시대 영국의 이중성과 억압

19세기 말, 세계의 중심이던 영국은 산업과 제국의 번영 속에서도 보이지 않는 불안에 흔들렸다. 겉으로는 도덕과 규율이 사회를 지탱하는 듯 보였지만, 그 이면에는 억압된 욕망과 몰락의 공포가 들끓었다.


브람 스토커의 『드라큘라』(1897)는 그런 시대가 만들어낸 악몽이다. 빅토리아 시대 영국은 전례 없는 번영을 누렸지만, 동시에 식민지 확장의 폭력, 계급 간 격차, 여성 억압, 성적 금기라는 어둠을 품고 있었다.


드라큘라라는 존재는 빅토리아 사회가 애써 지우려 했던 욕망과 공포가 응결된 모든 억압된 것들의 귀환이었다.


3. 생명, 욕망, 그리고 현대적 소진의 언어

『드라큘라』에서 가장 중요한 메타포는 ‘피’ 그 자체이다. 피는 생명이고, 욕망이며, 관계이고, 기억이다. 의학적으로 피는 산소와 영양을 운반하는 생명의 매개체지만, 상징적으로 피는 혈통, 유산, 정체성을 의미한다.


드라큘라는 이 모든 의미를 전복시킨다. 생명을 주는 피가 그의 입을 통과하면 죽음이 되고, 신성한 혈통은 저주가 된다. 가족과 공동체를 잇는 혈연은 그에게 지배와 소유의 수단으로 변질된다. 피를 나눈다는 것은 더 이상 생명의 선물이 아니라 정체성의 침탈이다.


드라큘라의 흡혈은 결국 상대를 비워버리는 행위다. 사랑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그 안에는 지배와 소유가 숨어 있다.


피를 마신다는 건 금지된 접촉이다. 빅토리아 시대의 독자들은 그 장면에서 공포와 쾌락을 동시에 느꼈다. 드라큘라는 그 시대가 숨기려 했던 욕망의 그림자였다. 오늘의 우리는 욕망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시대에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더욱 정교한 규범과 알고리즘 속에서 감정과 본능을 끊임없이 조율한다. 드러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드러냄조차 선택되고 관리된다.


4. 관계 속에 숨은 흡혈의 구조

우리는 서로의 감정과 시간을 조금씩 빨아들인다. 그러나 그 흡혈의 구조는 개인적 차원을 넘어 사회 전체로 확장된다. 누군가는 끊임없이 헌신과 희생을 요구받고, 누군가는 타인의 노동과 에너지를 흡수한다.


오늘의 사회에서 피를 빼앗는 존재는 더 이상 한 개인이 아니다. 플랫폼과 시장, 국가와 기업, 알고리즘과 권력 구조가 보이지 않는 송곳니를 드러낸다. 드라큘라가 피를 통해 타인을 지배하듯, 오늘의 사회 역시 누구의 자원은 무한히 흡수되고, 누구의 존재는 점점 투명해지는 구조를 만든다.


끊임없이 연결될수록 우리는 더 빨리 비워진다. 끊임없이 드러낼수록 우리는 더 희미해진다.


5. 두려움과 매혹 사이

드라큘라는 단순한 악이 아니다. 그는 인간이 억눌러온 모든 것—욕망, 본능, 자유, 불멸—의 형상이다. 우리가 그를 두려워하면서도 매혹되는 이유는 그 안에서 우리 자신의 그림자를 보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가 되고 싶지만 될 수 없는 존재이자, 우리가 부정하고 싶지만 부정할 수 없는 우리 자신이다.


그는 죽지 않는다. 그의 불멸의 원천은 피가 아니라 인간의 욕망이 결코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시대가 바뀌어도 인간은 여전히 갈망한다—생명, 사랑, 인정, 권력이라는 이름으로.


드라큘라의 진정한 저주는 불멸이 아니라 고독이다. 영원히 산다는 것은 영원히 갈망한다는 뜻이고, 영원히 채워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신을 저주하며 수백 년을 버티게 한 미나를 향한 집요한 갈망조차 결국 허기로 남았으니, 그의 불멸은 완성되지 못한 욕망의 연속일 뿐이다.


그는 인간과 괴물 사이 어딘가에 머무는 존재다. 그의 고독은 끝없는 생보다 더 깊고, 그의 욕망은 인간의 삶보다 더 솔직하다. 소설 속 인물들은 드라큘라를 죽이지만, 그것은 일시적 승리일 뿐이다. 새로운 시대는 새로운 형태의 드라큘라를 낳는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드라큘라 영화

Bram Stoker's Dracula (1992) by Francis Ford Coppola

Starring: Gary Oldman, Winona Ryder, Anthony Hopkins, Keanu Reev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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