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사냥의 '고백'에서 주홍글씨의 '침묵'으로

나다니엘 호손 ≪주홍글씨≫와 세일럼의 마녀재판

by 가오나시
"참될지어다! 참될지어다! 참될지어다! 세상 사람들에게 당신의 최악의 모습은 아닐지라도, 당신의 최악의 모습이 추측될 수 있는 어떤 특징만이라도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라." (Be true! Be true! Be true! Show freely to the world, if not your worst, yet some trait whereby the worst may be inferred!)


1. 비명과 침묵 사이에서

1692년, 세일럼의 공기는 기괴한 비명으로 가득했다. 새뮤얼 패리스 목사의 딸 베티와 조카 애비게일이 원인 모를 발작을 일으키며 몸을 뒤틀기 시작한 것이다. 아이들은 보이지 않는 존재가 자신들을 찌르고 괴롭힌다고 울부짖었다. 원인을 설명하지 못한 마을 의사는 결국 단정한다. 이것은 마녀의 소행이라고.

그 진단은 광기의 도화선이 되었다. 불과 몇 달 사이 200여 명이 마녀로 기소되었고, 19명이 교수형에 처해졌으며 5명은 차가운 감옥에서 생을 마감했다. 세일럼의 처형대 위에서는 거의 매일 비명이 울려 퍼졌다.

그런데 이 아비규환 속에서 기묘하게도 “나는 마녀다. 악마에게 속았다.”라고 자백한 자는 살아남았다. 반대로 끝까지 “나는 마녀가 아니다”라며 진실을 주장한 이들은 가차 없이 교수대로 끌려갔다. 진실은 죽음을 불렀고, 거짓은 생존을 허락했다.


약 150년 뒤인 1850년, 같은 뉴잉글랜드를 배경으로 한 소설 ≪주홍글씨≫가 출간되었다. 그러나 소설 속 시간은 마녀재판보다 오히려 과거인 1640년대 보스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젊은 여인 헤스터 프린이 마을의 처형대 위에 홀로 서 있다. 그녀의 가슴에는 붉은 천으로 수 놓인 글자 ‘A’가 박혀 있다. 간통(Adultery)의 낙인이다. 그러나 이곳의 풍경은 세일럼과 사뭇 다르다. 군중 사이에는 비명 대신 숨 막히는 정적만이 흐른다. 갓난아이를 안은 헤스터를 향해 의원들이 묻는다. “아이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고하라.” 하지만 그녀는 끝내 입을 열지 않는다. 죽음 대신, 끝없는 침묵을 택한다.


마녀재판이 처절한 고백을 요구했다면, ≪주홍글씨≫의 사회는 영원한 침묵을 강요했다. 시대도, 방식도 달랐지만 두 처형대가 겨냥한 대상은 같았다. 사회의 질서를 흔든다고 간주된 여자였다.


이 글은 과거의 잔혹함을 나열하려는 것이 아니다. 청교도 사회가 여성을 통제하기 위해 설계한 두 개의 시스템—고백과 침묵—그 구조의 공통점을 들여다보려 한다. 왜 그 사회는 눈에 보이는 악한 남자들보다, 끝내 설명되지 않는 여자의 존재를 그토록 두려워했을까.


2. 누구의 죄는 이야기로 남고, 누구의 존재는 공포가 되었을까

1) 악한 남자는 질서 안에 남을 수 있다.

청교도 사회에서 남성의 죄는 대개 타락이나 유혹에 넘어간 결과로 설명되었다. 신앙이 흔들렸거나, 악마의 시험에 잠시 실패했거나, 인간적 나약함을 드러낸 경우였다. 문제는 심각했지만 해법은 분명했다. 고백하고, 회개하고, 징계를 받으면 된다. 이 절차를 통과하면 남자는 다시 공동체로 복귀할 수 있었다. 그의 죄는 체제 안에서 관리 가능한 문제였기 때문이다.


≪주홍글씨≫의 딤즈데일 목사가 그렇다. 그는 헤스터와 동일한 죄를 지었다. 아이의 아버지가 바로 그다. 그럼에도 그는 처벌받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처벌될 수 없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마을에서 가장 존경받는 목사였고, 그의 신앙과 권위는 공동체의 중심이었다. 만약 그가 간통의 당사자로 드러난다면 무너지는 것은 한 개인이 아니라 교회와 도덕 질서 전체였다.


그래서 그의 죄는 비밀로 유지되어야 했다. 그리고 그 비밀을 지키는 역할은 여자에게 맡겨졌다.


2) 설명되지 않는 여자는 질서를 어지럽힌다.

마녀사냥의 희생자 목록을 보면 일정한 패턴이 보인다.
미혼 여성, 과부, 남편 없이 혼자 사는 여자, 사회적으로 고립된 노파, 신앙이 의심받던 여성, 가난하거나 괴짜로 여겨진 사람들. 목소리가 지나치게 크거나, 반대로 너무 침묵하는 여자들까지.

이들의 공통점은 분명하다. 그들은 가부장 질서 ‘안’에 있지 않았다. 남편이나 아버지의 보호 아래 있지 않았고, 교회 공동체의 중심에서도 벗어나 있었다. 그들의 존재 자체가 질서 바깥을 의미했다.


헤스터 프린 역시 다르지 않다. 법적으로는 남편이 있었지만, 로저 칠링워스는 행방불명이었다. 그녀는 홀로 신대륙에 건너와 아이를 낳았고, 보호자 없이 존재하는 여자가 되었다. 무엇보다 그녀는 침묵했다. 아이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자신의 감정이 무엇인지—아무것도 설명하지 않았다. 그녀의 내면은 끝내 해석되지 않았다.


이 지점에서 공포가 발생한다. 이 사회는 악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해석되지 않는 존재를 두려워했다.

악은 체제가 다룰 수 있다. 회개시키거나, 처벌하거나, 추방하면 된다. 그러나 설명되지 않는 존재는 어디에도 배치할 수 없다. 그녀가 무엇을 원하는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어디에 속하는지 알 수 없을 때—그 불확실성이 공포로 바뀐다.


마녀는 설명되지 않는 재앙의 원인으로 지목된 여자였다. 아이들의 발작, 가축의 죽음, 흉년 같은 사건에는 반드시 설명이 필요했고, 그 설명은 늘 질서 바깥의 여자에게 돌아갔다.

헤스터는 불륜의 상대를 밝히지 않는 여자였다. 이야기를 완결하지 않는 존재였다. 공동체는 서사를 끝내고 싶어 했다. 누가 죄인인지, 누가 처벌받아야 하는지 확정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녀의 침묵은 이야기를 미완으로 남겼다. 그녀가 말하지 않는 한, 딤즈데일의 죄는 영원히 공동체 안을 떠도는 유령으로 남는다.


3. 마녀사냥: 고백하면 구원받으리라

1) 고백이 만들어낸 역설

세일럼 마녀재판의 논리는 기묘한 역설 위에 서 있었다. "자백하면 살고, 부정하면 죽는다."


마녀 혐의를 받은 사람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두 가지였다.

첫째, 고백한다. "나는 마녀다. 악마에게 속았다. 다른 마녀의 이름을 대겠다." 이렇게 말하는 순간, 그는 악마의 하수인이 아니라 속아 넘어간 연약한 인간이 된다. 동정의 대상이 되고, 회개의 기회를 얻으며, 목숨은 부지된다.

둘째, 부정한다. "나는 마녀가 아니다. 무고하다." 그러나 이 선택은 곧바로 다른 의미로 번역된다. 끝까지 진실을 숨기는 자, 악마의 공범, 공동체를 위협하는 존재. 그 결말은 처형이었다.

선택이라고 불렀지만, 실제로는 강요된 생존 전략이었다. 살려면 거짓을 말해야 했다. 진실을 말하면 죽었다.


세일럼 마녀재판에서 흑인 하녀 티투바는 최초로 지목된 세 사람 중 하나였다. 그녀는 곧바로 자백했다. “악마를 보았고, 다른 마녀들도 있다.” 그녀는 살아남았다. 반면 세라 굿과 세라 오스본은 끝까지 혐의를 부인했다. 세라 굿은 교수대에 올랐고, 세라 오스본은 감옥에서 숨졌다.


2) 고백은 진실을 밝히지 않았다

그렇다면 고백이 진실을 밝혔을까?

아니다. 고백은 진실과 무관했다.


고백은 공동체가 불안을 정리하는 의식이었다. 아이들은 발작을 일으켰고, 원인은 설명되지 않았다. 공포는 확산되었다. 이때 공동체가 필요로 한 것은 진실이 아니라, 원인의 지목과 그 원인의 자기 인정이었다. 누군가가 “내가 마녀다”라고 말하는 순간, 이야기는 완결된다. 설명할 수 없던 재앙은 설명 가능한 사건이 되고, 공동체는 비로소 안도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안도감의 대가는 여성에게 돌아갔다. 여성은 말함으로써 스스로를 악의 근원으로 규정해야 했다. “나는 마녀다”라는 말은 곧 “이 모든 혼란의 원인은 나다”라는 자기 선언이었다.

살아남기 위해, 여자는 자기 자신을 무너뜨려야 했다. 마녀사냥의 고백은 구원이 아니라, 자기 파괴를 조건으로 한 생존이었다.


4. ≪주홍글씨≫: 아무 말도 하지 말아라

1) 헤스터의 침묵: 고백하지 못하게 강요된 침묵

헤스터 프린은 자신의 죄를 부인하지 않는다. 그녀는 간통을 저질렀고, 아이를 낳았으며, 가슴에 주홍글씨 ‘A’를 달고 처형대 위에 섰다. 그 사실 자체를 숨기려 하지는 않는다. 공동체가 요구한 공개적 인정까지는 받아들인다.


그러나 그다음 단계에서 그녀는 멈춘다.

아이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그 감정이 사랑이었는지 실수였는지, 혹은 외로움이었는지—그 어떤 설명도 내놓지 않는다.

의원들은 집요하게 묻고, 목사들은 설득하며, 군중은 숨을 죽이고 지켜본다. 하지만 헤스터는 끝내 입을 열지 않는다. 이 침묵은 강인한 의지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개인적 선택의 영역을 벗어나 있다. 그녀가 말하는 순간, 딤즈데일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딤즈데일은 마을의 영적 중심이었다. 그의 설교는 신앙의 기준이었고, 그의 존재는 공동체가 스스로를 도덕적이라고 믿게 만드는 근거였다. 만약 그가 간통의 당사자라는 사실이 드러난다면, 무너지는 것은 한 목사가 아니라 교회 전체의 권위였다. 그가 해왔던 모든 말은 위선이 되고, 공동체가 지켜온 도덕 체계는 설 자리를 잃는다. 그래서 헤스터의 침묵은 미덕도, 희생도 아니다. 그것은 공동체가 유지되기 위해 그녀에게 요구한 조건이었다.


2) 딤즈데일의 침묵: 고백할 수 없도록 강요된 침묵

흥미로운 점은 딤즈데일 자신 역시 침묵 속에서 고통받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는 죄책감에 시달리며 밤마다 홀로 처형대에 올라섰고, 가슴을 움켜쥐며 자신을 벌했다. 소설은 그의 가슴에도 어떤 표식이 있었을지 모른다고 암시한다.


그는 설교단에서 스스로를 죄인이라 불렀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말을 고백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겸손의 표현으로 해석했다. “저분은 정말로 경건하다.” 그의 지위와 역할이 그의 말을 무력화시킨 것이다. 딤즈데일의 고백은 고백이 될 수 없었다.


이 구조를 유지하기 위해 사회가 필요로 한 것은 헤스터의 침묵이었다. 여자가 말하지 않는 한, 남자의 죄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된다. 여자가 입을 다무는 동안, 공동체의 질서는 흔들리지 않는다.


5. 고백하든 침묵하든, 그녀는 ‘악마’다.

마녀사냥에서 고백하면 살지만, 스스로를 '악의 근원'으로 규정해야 한다. ≪주홍글씨≫에서 침묵하면 살지만, 평생 낙인을 지고 지워진 존재로 산다.


어떤 선택을 하든 여성에게 남는 결과는 같았다. 명예는 상실되고 정체성은 붕괴되고 개인의 삶은 지워지고 오로지 '마녀'로만 기억된다. 그녀가 이전에 어떤 삶을 살았는지,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지워진다. 오직 '악마와 계약한 여자'로만 남는다.


헤스터 역시 침묵하는 순간, ‘간통녀’로 고정된다. 그녀의 재봉 솜씨도, 타인을 돕는 선행도, 조용히 쌓아온 내면의 변화도 모두 붉은 글자 ‘A’ 뒤로 밀려난다. 시간이 흐르며 사람들이 그 글자를 ‘Able’이나 ‘Angel’로 해석하기 시작했을 때조차, 그것은 그녀의 가슴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의미가 바뀌었을 뿐, 낙인은 그대로 남아 있다.


마녀사냥은 고백을 요구했고,≪주홍글씨≫의 사회는 침묵을 강요했다.
방법은 정반대였지만, 두 시스템이 공유한 전제는 같았다. 여성은 자기 파괴를 통해서만 질서에 기여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마녀는 고백함으로써 스스로를 악으로 만든다. “나는 마녀다”라는 선언은 공동체가 공포를 정리하기 위한 제물이 되는 순간이다. 한 사람의 파멸이 집단의 안정을 보장한다.


헤스터는 침묵함으로써 자신을 지운다. 말하지 않는 한 그녀는 ‘이름 없는 죄인’으로 남고, 딤즈데일의 지위와 공동체의 도덕은 보존된다. 그녀의 소거가 체제의 균형을 가능하게 하는 셈이다. 죽이든, 살려두든 결과는 같았다. 여자는 자기 자신을 무너뜨려야만 질서가 유지되는 존재였다.


나다니엘 호손의 조상 중 한 명인 존 해손(John Hathorne)은 세일럼 마녀재판의 악명 높은 심문관이었다. 그는 수많은 여성을 심문하고 고백을 강요하며 처형대로 보냈던 인물이다. 호손은 평생 이 사실을 의식했고, 자신의 성에 ‘w’를 더해 Hawthorne으로 바꾸며 조상과 거리를 두려 했다. ≪주홍글씨≫는 150년 전 조상이 여성들에게 했던 일, 그리고 여전히 사회가 여성들에게 반복하고 있는 구조를 응시하려는 시도이다.


6. 헤스터 프린은 21세기에도 아직 존재한다

오늘날에도 여성은 종종 두 가지 선택지 앞에 놓인다.

말하면 문제를 키운 사람으로 기록되고, 말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없었던 존재가 된다.

고백은 언제나 ‘왜 이제야 말했는가’라는 질문으로 돌아오고, 침묵은 ‘그렇다면 별일 아니었던 것 아니냐’는 해석으로 바뀐다.


그래서 지금도 많은 여성은 여전히 스스로를 검열한다. 어디까지 말할 수 있는지, 어디서 멈춰야 하는지, 나의 말이 누군가를 보호하는 동시에 나를 파괴하게 되지는 않을지를 말이다.

마녀사냥의 고백과 ≪주홍글씨≫의 침묵은 사라졌을지 모른다. 하지만 여성의 말이 여전히 질서의 유지 비용으로 취급되는 구조는 완전히 사라졌다고 말하기 어렵다.


고백하든, 침묵하든 그 대가가 개인의 삶 전체로 돌아오는 한, 우리는 아직 이 이야기의 바깥에 서 있지 않다.




※ 광기의 기록: 마녀사냥에 관한 몇 가지 사실


1. 역사적 배경: 왜 하필 그때였을까?

마녀사냥은 중세 암흑기가 아닌, 오히려 이성이 깨어나던 근대 초입(15~18세기)에 절정을 이뤘습니다. 흑사병과 소빙하기로 인한 기근, 종교 개혁으로 인한 구교와 신교의 갈등은 사회적 불안을 극도로 끌어올렸습니다. 통제 불능의 재앙 앞에서 대중의 분노를 돌릴 ‘공동체의 적’이 필요했고, 그 화살은 사회적 약자였던 여성들에게 향했습니다.


2. 살육의 명분: 혐오의 교과서 『마녀망치』

1486년 출간된 『마녀망치 (Malleus Maleficarum)』는 마녀를 식별하고 고문하는 법을 집대성한 매뉴얼이었습니다. 저자인 하인리히 크라머는 이 책에서 "여성은 본래 믿음이 부족하여 악마의 유혹에 취약하다"는 논리를 폈습니다. 당시 갓 발명된 인쇄술은 이 혐오의 기록을 유럽 전역에 베스트셀러처럼 퍼뜨리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3. 희생자의 숫자와 타겟: 누구의 생명이 사라졌나

희생 규모: 약 300년 동안 유럽과 북미에서 최소 4만 명에서 6만 명 이상이 처형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주요 계층: 희생자의 약 80%가 여성이었습니다. 특히 가부장적 질서 밖에 놓인 과부, 미혼 여성, 보호자 없는 노파, 혹은 산파나 약초사처럼 독립적인 지식을 가진 여성들이 주된 표적이 되었습니다.


4. 잔인한 식별 수법: '죽어야만 증명되는' 무죄

수영 시험: 용의자를 묶어 물에 던집니다. 물에 뜨면 '마녀'라며 화형시켰고, 가라앉으면 '무고'함을 인정받았으나 대개 익사했습니다.

바늘 시험: 몸에 있는 점이나 흉터를 '악마의 표식'이라 부르며 바늘로 찔렀습니다. 피가 나지 않거나 통증을 느끼지 않으면 마녀로 간주했습니다.

눈물 시험: 재판 중 눈물을 흘리지 못하면 마녀의 증거로 삼았습니다. 극심한 공포로 눈물이 마른 것조차 죄가 되었습니다.

쥐 고문: 뜨거운 쥐를 배에 넣고 꿰매 기다림

발목스크루: 나무 발목에 쐐기 박아 비틀기(뼈 으깸)

화형 쇼: 산 채로 불태우며 군중 구경


5. 자백의 역설: 거짓을 말해야 살 수 있는 지옥

세일럼 마녀재판의 가장 자극적인 지점은 "고백하면 살려준다"는 원칙이었습니다. "나는 마녀다"라고 거짓 자백을 하고 다른 공범의 이름을 대는 이는 목숨을 구걸할 수 있었지만, 끝까지 자신의 결백(진실)을 주장하는 이는 교수대로 향했습니다. 시스템은 진실에는 관심이 없었으며, 오로지 공동체의 불안을 잠재울 '유죄의 인정'만을 갈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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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lleus Maleficarum / Tompkins Harrison Matteson, Trial of George Jacobs, Sr. for Witchcraft,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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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rture and burning of women accused of witchcraft / 잔다르크 마녀 혐의로 화형


잔 다르크 (Joan of Arc, 1412~1431)

가장 유명한 마녀재판 희생자입니다. 프랑스를 구한 영웅이었으나, 영국군에 붙잡힌 뒤 정치적 목적으로 설계된 마녀재판에 넘겨졌습니다. 신의 목소리를 들었다는 주장이 '악마와의 소통'으로 몰렸으며, 남장을 한 행위가 성경의 가르침을 어긴 마녀의 증거로 쓰였습니다. 19세의 나이에 루앙 광장에서 화형당했습니다. 훗날 무죄가 입증되어 성녀로 추대되었으나, 전형적인 정치적 마녀사냥의 사례로 기록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