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04. 재난영화의 두 가지 거짓말

정보의 권력과 기술 낙관주의의 공모

by 가오나시

〈아마겟돈〉 (Armageddon, 1998, 미국, 마이클 베이 감독, 브루스 윌리스 주연)

〈컨테이젼〉 (Contagion, 2011, 미국,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 맷 데이먼 주연)

〈투모로우〉 (The Day After Tomorrow, 2004, 미국,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 데니스 퀘이드 주연)

〈체르노빌〉 (Chernobyl, 2019, 미국/영국, 요한 렝크 감독, 재러드 해리스 주연)

〈돈 룩 업〉 (Don't Look Up, 2021, 미국, 애덤 맥케이 감독,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주연)

〈인디펜던스 데이〉 (Independence Day, 1996, 미국,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 윌 스미스 주연)

〈설국열차〉 (Snowpiercer, 2013, 한국/미국/프랑스, 봉준호 감독, 크리스 에반스 주연)

〈월드워 Z〉 (World War Z, 2013, 미국, 마크 포스터 감독, 브래드 피트 주연)




0. 우리가 재난영화에서 본 것과 보지 못한 것

무너지는 도시, 뒤집힌 대륙, 얼어붙은 하늘. 스크린 위의 재난은 언제나 압도적인 스펙터클이다. 우리는 그 아비규환 속에서 피어나는 용기와 희생을 읽고, 인류애에 안도하며 극장을 나선다. 하지만 한 발짝만 떨어져 보면, 이 장르가 반복하는 것은 위로가 아니라 정교하게 설계된 서사적 장치에 가깝다. 재난 영화는 ‘생존’과 ‘해결’에 관해 두 가지 체계적인 거짓말을 생산한다.


첫 번째 거짓말은 생존의 윤리다.

화는 살아남는 사람이 더 선하고, 더 용감하며, 더 자격 있는 존재처럼 보이게 만든다. 그러나 실제로 살아남는 사람은 대부분 더 빨리 알고, 더 먼저 움직인 사람이다.영화는 그 불편한 우연을 도덕적 서사로 덧칠한다.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의 〈투모로우〉(2004)는 지구 온난화로 촉발된 기후 대재난을 다룬 SF 영화다. 주인공 기후학자 잭 홀은 누구보다 재난의 규모를 잘 알고 있다. 그는 인류를 구할 수 없다는 것도 안다. 그래서 그가 눈보라를 뚫고 달려간 곳은 아들이 있는 뉴욕이다. 영화는 그것을 뭉클한 부성애로 보여주지만, 그 선택을 가능하게 한 것은 감정이 아니라 선점한 정보다. 그는 다른 누구보다 먼저, 다른 누구보다 정확하게 알았기 때문에 움직일 수 있었다.


두 번째 거짓말은 종료의 방식이다.

영화는 문제를 해결하는 순간을 감동으로 포장한다. 하지만 그 해결은 대부분 문제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더 이상 질문하지 않게 만드는 것에 가깝다.

마이클 베이 감독의 〈아마겟돈〉(1998)은 지구로 돌진하는 거대 소행성을 막기 위한 인류의 사투를 그린 SF 액션 영화다. 영화는 인류 전체를 구한다는 대의와 한 아버지의 희생을 겹쳐 놓는다. 그러나 인류의 구원을 결정한 것은 숭고한 희생에서 비롯된 감동이 아니다. 소행성을 멈춘 것은 결국 핵폭탄이라는 기술적 개입이다. 희생의 서사를 전면에 배치함으로써, 관객이 기술이 아닌 사랑이 지구를 구했다는 인상을 안고 극장을 나서도록 설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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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하기가 된 뉴욕 〈투모로우〉/ 석유시추공들의 지구구하기 미션 〈아마겟돈


1. 재난영화의 진짜 주인공은 '정보'다.

① 누가 먼저 알았는가

재난 영화에서 살아남는 사람은 더 일찍, 더 정확한 정보를 가진 사람들이다. 정보는 사후에 획득되는 것이 아니라 사전에 배분된 자원이다. 그리고 그 자원이 어디에 먼저 닿는지는 능력이나 용기가 아니라 구조적 위치에 의해 결정된다.


〈컨테이젼〉(Contagion, 2011)은 전 세계적 팬데믹의 확산과 붕괴를 사실적으로 그린 의학 스릴러다. 수백만 명이 정보의 바깥에서 감염되는 동안, 정보망 안에 있던 사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는 재난의 현장이 아니라 전화 한 통이다. CDC 치버 박사는 시카고 봉쇄가 결정되기 전, 아내에게 먼저 도시를 빠져나오라고 귀띔한다. 수백만 명이 정보의 바깥에서 바이러스에 노출되는 동안, 정보망 안에 있던 한 사람은 조용히 가족을 먼저 지킨다. 람들은 조용히 살아남는다. 영화는 전염의 공포를 그리는 척하지만, 실제로는 정보 접근성의 격차를 해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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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ID19 예고편 〈컨테이젼〉


② 누가 무엇을 숨겼는가

정보 비대칭은 단순한 격차가 아니라, 의도적으로 만들어지는 구조다. 정부, 기업, 전문가 집단이 재난의 규모와 원인을 통제하는 순간, 정보는 공유 자원이 아니라 선별적으로 배분되는 권력이 된다. 이때 정보밖에 놓인 사람들은 위험을 인지할 기회조차 갖지 못한다.


〈체르노빌〉(Chernobyl, HBO, 2019)은 1986년 원전 폭발 사고와 그것을 둘러싼 소련의 거짓말을 추적하는 5부작 미니시리즈다. 원자로 폭발 직후 소련 당국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사실을 은폐하는 것이었다. 방사선 수치는 측정 불가 판정을 받았고, 대피 명령은 늦어졌으며, 인근 주민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창문을 열고 폭발 현장을 구경했다. 정보를 가진 소수는 방호복을 입었고, 정보 밖의 다수는 맨몸으로 방사선에 노출되었다. "진실의 비용"이라는 주제로 수렴하는 이 드라마의 핵심은 방사선이 아니라 거짓말과 은폐다.

체르노빌.jpg 현실공포 〈체르노빌〉

③ 재난은 물리적 사건이 아니라 정보의 비대칭 구조다

재난의 규모를 결정하는 것은 물리적 파괴력이 아니라 정보의 분포 구조다. 같은 위협 앞에서도 누군가는 먼저 알고 움직이며, 누군가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조차 모른 채 노출된다.


영화 〈돈 룩 업〉(Don't Look Up, 2021)은 지구로 다가오는 혜성의 충돌을 경고하는 두 과학자가 정치·언론·기업·대중의 무관심과 허무주의 속에서 투쟁하는 과정을 그린 SF 재난 블랙코미디다. 영화에서 과학자들은 혜성이 지구에 충돌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고, 경고도 한다. 그러나 정보는 전달되지 않는다. 미디어는 자극적인 장면만을 선택하고, 정치는 정보를 여론 게임의 도구로 삼으며, 대중은 스크롤을 내린다. 이 영화가 묘사하는 재난은 혜성이 아니다. 정보가 왜곡되고 묵살되는 구조 그 자체다.


코로나19는 이를 현실에서 증명했다. 같은 바이러스 앞에서도 누군가는 마스크와 백신 정보를 선점했고, 누군가는 접근 자체가 제한되었다. 재난이 모두에게 평등하게 찾아온다는 것은, 재난영화가 만들어낸 또 하나의 서사적 거짓말이다.

돈룩업.jpg 진찌로 종말이 온다면 차라리 아무도 말 안해 주는 게 속 편할지도..


2. 기술 낙관주의는 '희망'이 아니라 '종료 버튼'이다

① 도덕적 부채의 강제 상환

재난영화의 관객은 영화 내내 파괴되는 지구를 보며 막연한 부채감을 느낀다. 환경 파괴, 탐욕, 오만 — 인류가 쌓아온 과오들이 재난의 배경으로 깔린다. 그러나 기술적 해결책이 극적으로 등장하는 순간, 관객은 안도하며 극장을 나선다. "그래도 인류는 답을 찾을 거야."


기술이 재난을 '종료'시키는 순간, 인간의 반성도 함께 '종료'된다.


〈인디펜던스 데이〉(Independence Day, 1996)는 거대한 외계 우주선이 지구를 침공해 주요 도시들을 파괴하고, 인류가 최후의 반격을 준비하는 과정을 그린 SF 재난·액션 블록버스터다. 지구를 한순간에 점령할 정도로 고도로 발달한 외계 문명이 컴퓨터 바이러스 한 줄에 무너진다. 이 황당한 결말이 관객에게 통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우리는 이야기가 끝나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기술은 문제를 풀기 위해 등장한 게 아니었다. 우리가 더 이상 불안해하지 않아도 된다는 신호였다.

인디펜던스 데이.jpg 지금 누가 이렇게 해주면 안될까..?


② 정치적 상상력의 박제

재난은 원래 새로운 사회 질서를 상상하게 만드는 계기다. 시스템이 무너졌을 때, 인간은 어떻게 연대할 것인가.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버릴 것인가. 그러나 기술 낙관주의는 이 질문들을 엔지니어링으로 환원한다.


협력 대신 시스템 개선. 관계 대신 장치. 정치 대신 기술. 질문이 사라진 자리에 남는 것은 대화가 아니라 매뉴얼뿐이다.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Snowpiercer, 2013)는 지구 온난화를 막으려는 기후공학 실험이 역효과를 일으켜 빙하 지구가 된 세계를 배경으로, 유일하게 살아남은 인류가 탑승한 거대 열차 안에서 벌어지는 계급 전쟁을 그린 SF 디스토피아 우화다. 이 영화는 기술 낙관주의의 흐름을 역행하는 드문 사례다. 기술(열차)이 생존의 조건이자 억압의 구조가 되는 세계에서, 영화는 그 기술적 질서에 저항하는 인간의 정치적 상상력을 다룬다.

설국열차.jpg 꼬리칸은 불법탑승이었던 걸로 기억남..저 입장에서는 물에 빠진 걸 구해줬더니 보따리 내놔라 였겠지..


③ 비극의 데이터화와 공감의 유통기한

기술은 재난을 수치로 변환한다. 확률, 그래프, 예측 모델. 이때 일어나는 변화는 미묘하지만 결정적이다. 개인의 고통은 변수가 되고, 죽음은 통계가 되며, 공감은 계산으로 대체된다.


〈월드워 Z〉(World War Z, 2013)는 전 세계로 빠르게 퍼지는 좀비 바이러스 속에서 전직 UN 조사관이 원인을 찾아 백신의 실마리를 쫓는 과정을 그린 SF 재난·액션 영화다. 이 영화에서 좀비 확산은 지도 위의 붉은 점으로 시각화된다. 각각의 점은 한 인간이었지만, 지도 위에서 그것은 패턴이다. 데이터 프레임이 올라오는 순간,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분석하기 시작한다. 그것이 기술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조용한 선물이자 가장 위험한 습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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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는 과학적으로 불가능한 거 같아서 별로 무섭지는 않음


3. 두 거짓말이 만나는 지점

정보와 기술은 서로 다른 문제가 아니다.

정보는 누가 살아남는가를 결정한다. 기술은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를 묻지 않게 만든다. 이 두 가지가 함께 작동할 때, 재난 서사는 완성된다. 살아남은 자는 자격이 있었던 것처럼 보이고, 죽은 자는 서사 밖으로 밀려난다.

재난이 끝난 뒤 살아남은 자들이 나누는 포옹과 눈물. 그 감동의 이면에는 정보를 갖지 못해 선별에서 탈락한 이들의 이야기가 있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기술이 등장하는 순간 이미 편집되어 있다. 우리가 극장에서 보는 것은 살아남은 자들의 서사다. 우리가 보지 못한 것은, 그 서사가 시작되기 전에 이미 끝난 이야기들이다.


4. 재난영화가 진짜로 숨기는 것

재난 영화가 무서운 이유는 재난을 보여 주기 때문이 아니다. 재난 이후에도 아무것도 묻지 않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 재난은 왜 일어났고, 누가 책임지는가. 재난영화는 이 모든 질문에 답하는 대신, 스펙터클과 감동과 기술로 질문 자체를 덮는다. 그리고 관객은 감동을 받았기 때문에, 질문을 잊었다는 사실조차 눈치채지 못한다.


진정한 재난 서사는 정보와 기술이 닿지 않는 사각지대에서 시작된다. 정보망 바깥에 있었던 사람, 대피 명령을 듣지 못한 사람, 지도 위의 붉은 점이 되어버린 사람 — 이들의 이야기가 재난의 진짜 본문이다. 영화는 그 본문을 표지로 덮고 스펙터클이라는 제목을 붙인다.


"이 세계를 계속 이렇게 살아도 되는가?"

재난 영화는 이 근원적인 질문을 상영 시간 내내 유예시킨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 그 무거운 질문은 영화관의 어둠 속에 버려진다. 우리가 언젠가 마주할 현실의 재난을 애써 외면한 채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