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02. 죽이는 상상 (슬래셔)

판단 알고리즘의 해부

by 가오나시

할로윈 (Halloween, 1978, 미국, 존 카펜터 감독, 제이미 리 커티스 주연)
스크림 (Scream, 1996, 미국, 웨스 크레이븐 감독, 네브 캠벨 주연)
캐빈 인 더 우즈 (The Cabin in the Woods, 2012, 미국, 드류 고다드 감독, 크리스 헴스워스 주연)
잇 팔로우즈 (It Follows, 2014, 미국, 데이비드 로버트 미첼 감독, 마이카 먼로 주연)
데스티네이션 (Final Destination, 2000, 미국, 제임스 웡 감독, 데번 사와 주연)
해피 데스 데이 (Happy Death Day, 2017, 미국, 크리스토퍼 랜던 감독, 제시카 로테 주연)
메간 (M3GAN, 2022, 미국, 제라드 존스톤 감독, 앨리슨 윌리엄스 주연)




1. 죽음의 순서를 읽는 법

불이 꺼진 복도.
형광등이 한 번, 두 번, 짧게 깜빡인다.

멀리서 삐그덕하고 낡은 마룻바닥을 누군가 밟는 소리가 난다.

혼자 남은 사람이 고개를 돌린다.
아무도 없다.

어둠 속 어딘가에,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무언가’가 숨어 있다.


"저 사람은 이제 죽겠구나."


〈할로윈〉(1978)의 로리는 첫 장면부터 이미 ‘살아남을 인물’처럼 보인다. 그녀는 두꺼운 안경을 쓰고 교과서를 끼고 다니며, 할로윈 밤에도 동생을 돌본다. 반면 그녀의 친구 애니는 남자친구에게 전화를 걸며 킬킬대고, 린다는 남자를 데리고 이웃집으로 사라진다.

영화가 시작되고 채 10분도 지나지 않아 당신은 이미 알고 있다. 누가 먼저 죽을지를.


당신은 그것을 본능적으로 ‘느꼈다’고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막연한 직감이라기보다, 슬래셔가 오랫동안 관객에게 훈련시켜 온 판단에 가깝다. 슬래셔를 본다는 것은 공포를 수용하는 행위가 아니다. 우리는 단순히 공포를 느끼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판단을 수행하고 있다. 우리는 스크린 앞에서 타인을 분류하고, 처벌하고, 채점한다. 다만 우리는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할 뿐이다.


2. 슬래셔 관람의 알고리즘


1단계: 신호 탐지

〈스크림〉(1996)의 오프닝 10분은 슬래셔 역사상 가장 유명한 장면 중 하나로, 관객이 공포를 느끼기도 전에 이미 위험 신호를 감지하고 판단을 시작하게 만드는 구조를 가장 명확하게 드러낸다. 케이시 베커는 혼자 집에 있다. 혼자 팝콘을 만들며 한가로운 저녁을 보내던 중 전화가 울린다. 잘못 걸린 전화는 몇 번이고 계속 오고. 처음에는 가벼운 농담 같던 목소리는 점점 공포스럽게 바뀐다.


어둠, 고립, 낯선 소리. 우리의 뇌는 이 신호들을 노이즈에서 걸러내고 즉각 경보를 발령한다. 우리는 장면을 '보는' 것이 아니다. 위험 데이터를 '추출'한다.


2단계: 패턴 인식

〈캐빈 인 더 우즈〉(2012)의 첫 10분은 슬래셔의 클리셰를 너무도 정직하게 나열한다. 다섯 명의 대학생, 낡은 지도, 인적 없는 주유소의 섬뜩한 노인, 그리고 숲속 오두막. 우리는 이미 이 구조를 알고 있기 때문에, 누가 먼저 죽고 누가 끝까지 살아남을지 자연스럽게 떠올린다. 이 영화는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영화 속 어딘가에는 이 모든 것을 설계한 '조직'이 있고, 그들은 관객이 예상하는 바로 그 방식대로 사건을 조율한다.


영화는 우리가 수백 편의 슬래셔를 보며 쌓아온 장르 문법을 훈련 데이터로 삼아 우리 스스로 결말을 예측하게 만든다.


3단계: 예측

〈잇 팔로우즈〉(2014)에서 제이는 남자친구와 하룻밤을 보낸 뒤, 의자에 팔다리가 묶인 채 깨어난다. 그는 담담한 목소리로 설명한다. 이제부터 무언가가 제이를 따라온다. 천천히, 끊임없이, 멈추지 않고. 피하려면 다른 누군가에게 이 저주를 옮겨야 한다.


영화는 이후 제이를 향해 걸어오는 존재들을 보여준다. 그것들은 뛰지 않는다. 그냥 걷는다. 그런데 그게 더 무섭다. 관객은 생각해 본다. 제이와 그것 사이의 거리는 얼마인가,제이가 저 문을 잠근다고 막을 수 있는가,저주를 다른 사람에게 옮기지 않으면 결국 죽는 건가.


공포의 정체는 감정이 아니다. 그것은 확률적 긴장이다. 우리는 공포를 느끼는 것이 아니라 발생 가능성을 계산한다.


4단계: 판정

〈해피 데스 데이〉(2017)의 트리는 처음 등장하는 순간부터 호감을 사지 못한다. 친구가 좋아하는 남자를 빼앗고, 유부남 교수와 바람을 피우고, 아빠의 전화와 룸메이트를 무시하고, 모든 이에게 불친절하다. 그리고 그날 밤 누군가에게 살해당한다. 관객의 반응은 놀랍도록 일관적이다. 그럴 만했지.


이 단계에서 우리는 윤리적 판단을 내린 것이 아니라 분류를 수행했다. 트리는 생존 점수가 낮은 캐릭터였고, 우리는 그녀의 죽음을 예측했고, 예측이 맞았다. 우리는 그 판정을 '공정하다'라고 느꼈을 것이다.


5단계: 지연

한 대의 통나무 트럭이 앞에서 달리고 있다. 통나무는 느슨하게 묶여 있다. 카메라는 그 묶음을 천천히 비춘다. 저것이 풀리면 뒤의 차를 덮칠 것이라는 걸 알고 있지만 어쩐지 풀리지 않는다. 트럭은 덜컹거리며 계속 달린다. 아직도 풀리지 않는다.


〈파이널 데스티네이션〉(2000)은 죽음을 지연시키는 데 특화된 영화다. 우리는 누가 죽을지 알지만, 언제인지는 모른다. 바로 이 보류의 구간이 핵심이다.우리가 즐기는 것은 폭력의 스펙터클이 아니라, 판단이 보류된 시간에서 발생하는 긴장이다.


6단계: 검증

〈캐빈 인 더 우즈〉(2012)에서는 누가 먼저 죽을지를 두고 감시자들이 내기를 건다. 맞춘 사람은 환호하고, 틀린 사람은 짜증을 낸다.


예측이 맞았을 때 찾아오는 그 기묘한 감정을 당신도 알 것이다. 안도인가, 만족인가, 아니면 그 이상한 중간 어딘가. 우리는 죽음을 슬퍼하지 않는다. 예측이 틀렸을 때는 오류 신호가 발생하고, 우리는 다음 판단을 수정한다. 슬래셔를 보는 행위는 감상이 아니라, 끊임없이 예측을 수정하는 과정에 가깝다.


7단계: 강화

〈메간〉(2022)의 M3GAN은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설계된 AI 인형이다. 그녀는 주변의 위협을 감지하고, 분류하고, 제거한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불안정하게 보이던 그 판단이 점점 빨라지고 정교해진다.

슬래셔를 많이 볼수록 우리는 더 정확한 분류기가 된다. 예측 적중률이 높아지고, 장르 문법이 몸에 밴다.


3. 편향된 알고리즘

〈스크림〉(1996)에는 유명한 장면이 있다. 파티 한켠에서 랜디가 친구들에게 슬래셔의 생존 규칙을 늘어놓는다. 섹스하면 죽는다. 술 마시면 죽는다. "I'll be right back"이라고 말하면 죽는다. 다들 킬킬대며 맥주를 마신다. 그리고 실제로 그 규칙대로 죽는다.


관객도 웃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웃음 속에는 묘한 동의가 섞여 있었다. 맞아, 그러니까 죽지—라는 생각이 거의 반사적으로 따라온다. 우리는 그 규칙이 어디서 왔는지 누가 만들었는지도 묻지 않았다. 그냥 장르의 문법으로 받아들였다.

이 규칙들은 영화가 만든 것이 아니다. 사회가 영화를 통해 반복해서 주입해 온 것이다. 욕망을 드러내는 인물은 더 위험한 존재로 간주되고, 혼자 있는 사람은 더 쉽게 희생된다. 규범에서 벗어나면 제거 대상이 된다.


〈캐빈 인 더 우즈〉(2012)의 조직은 제물을 고를 때 명확한 유형을 요구한다. The Virgin, The Athlete, The Scholar, The Fool, The Whore. 이 분류가 낯설지 않은 이유는 우리가 이미 그 분류법을 내면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관객은 알고리즘을 실행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 편향된 알고리즘으로 업그레이드된 상태다.


슬래셔는 살인의 장르가 아니다. 욕망을 죄로 번역하는 사회의 시스템이다.


4. 능숙한 관객의 역설

〈메간〉(2022)의 후반부, 메간은 더 이상 명령을 따르지 않는다. 그녀는 스스로 판단한다. 위협을 분류하고, 우선순위를 정하고, 제거한다. 제작자들은 그녀를 멈추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알고리즘은 스스로 진화했다.


슬래셔를 보며 강화된 우리의 판단 시스템은 현실로 이어진다. 지하철에서 마주친 낯선 사람을 0.1초 안에 스캔하는 직관. 처음 보는 이력서에서 '위험 신호'를 감지하는 채용 담당자의 감각. 특정 동네, 특정 외모, 특정 말투에 즉각 반응하는 그 판단. 이 판단 방식은 낯설지 않다. AI 채용 시스템도, 신용 점수 알고리즘도, 범죄 예측 소프트웨어도 모두 같은 구조다. 훈련 데이터로 패턴을 학습하고 입력값에 점수를 부여한 뒤 결과를 출력하는 방식은 우리가 영화를 보며 이미 수행해 온 판단과 다르지 않다.


능숙한 관객은 더 정확하게 예측한다. 그러나 능숙한 관객은 더 위험한 분류기가 된다. 더 잘 예측할수록, 더 빠르게 타인을 분류하고, 더 쉽게 누군가를 '제거 가능한 존재'로 인식하게 된다.


당신은 정말 공포를 즐긴 것뿐이었을까? 아니면 누군가가 죽어도 되는 이유를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