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의 추억 1. 재벌집 막내아들

해병대의 기억처럼, 나를 단련한 사건

by 변호사 이동현

변호사 생활을 시작하고 몇 년쯤 지나서

처음 일을 시작할 때의 열정이 조금씩 사그라들고 있다고 느낄 때쯤,

내 열정을 시험할 만한 의뢰인이 나타났다.




그 사람은 이름만 대면 알만한 재벌집 막내아들이었는데, 아버지인 회장님이 남기신 유산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더 많은 몫을 주장하고 싶어 했다.

의뢰인은 아버지인 회장님이 자신을 핍박하고 다른 형제를 편애하여 재산을 불공평하게 증여해 주었다고 주장하였는데, 담당 변호사인 내가 자신의 주장을 법률서면에 충실히 반영해 주기를 원했다.​



의뢰인은 사건을 맡긴 이후 우체국에서 가장 큰 크기의박스 5개에 관련 자료를 담아서 보내더니,

그 후로는 수시로 전화를 하여 사건 관련 에피소드가 생각났다며 자신이 회장님 밑에서 얼마나 핍박을 받았는지에 관한 이야기를 수십 분 동안 늘어놓았다.

의뢰인의 전화공세를 버티다 못한 나는 재판이나 다른 의뢰인 미팅으로 인해 계속 전화를 하시면 곤란하다고 에둘러 이야기하였는데, 그러자 그 의뢰인은 변호사님 시간 되실 때 들어보시라며 매번 1시간 가까이 되는 녹음파일을 카카오톡으로 보내왔다.


그리고 다음날에는 녹음파일에서 자신이 이야기한 것들에 대한 검토답변 내용을 보내달라고 촉구하였다.​




나는 한동안 음성녹음을 글로 옮겨주는 네이버 클로버 어플을 이용하다가 이대로 가다간 다른 일을 처리하지 못해 내가 수행하고 있는 다른 의뢰인들에게까지 피해가 가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 의뢰인에게 전달할 내용이 있다면 글로 정리해서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자 그 의뢰인은 나에게 카톡으로 사건 관련 내용과 자신이 궁금해하는 것을 적어서 메시지를 보내기 시작했고, 그 카톡 내용을 워드파일에 복사해 보니, 글자크기 10포인트로 A4용지 10장 분량이나 되었다. ​



그 후로도 6개월 정도는 이러한 인고의 세월을 보낸 후에 사건은 마무리되었고, 그 이후 나는 마치 군 시절을 떠올리면 아무리 힘든 일도 버텨낼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해병대 출신 사람들처럼 이 일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스리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