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의 기억처럼, 나를 단련한 사건
변호사 생활을 시작하고 몇 년쯤 지나서
처음 일을 시작할 때의 열정이 조금씩 사그라들고 있다고 느낄 때쯤,
내 열정을 시험할 만한 의뢰인이 나타났다.
그 사람은 이름만 대면 알만한 재벌집 막내아들이었는데, 아버지인 회장님이 남기신 유산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더 많은 몫을 주장하고 싶어 했다.
의뢰인은 아버지인 회장님이 자신을 핍박하고 다른 형제를 편애하여 재산을 불공평하게 증여해 주었다고 주장하였는데, 담당 변호사인 내가 자신의 주장을 법률서면에 충실히 반영해 주기를 원했다.
의뢰인은 사건을 맡긴 이후 우체국에서 가장 큰 크기의박스 5개에 관련 자료를 담아서 보내더니,
그 후로는 수시로 전화를 하여 사건 관련 에피소드가 생각났다며 자신이 회장님 밑에서 얼마나 핍박을 받았는지에 관한 이야기를 수십 분 동안 늘어놓았다.
의뢰인의 전화공세를 버티다 못한 나는 재판이나 다른 의뢰인 미팅으로 인해 계속 전화를 하시면 곤란하다고 에둘러 이야기하였는데, 그러자 그 의뢰인은 변호사님 시간 되실 때 들어보시라며 매번 1시간 가까이 되는 녹음파일을 카카오톡으로 보내왔다.
그리고 다음날에는 녹음파일에서 자신이 이야기한 것들에 대한 검토답변 내용을 보내달라고 촉구하였다.
나는 한동안 음성녹음을 글로 옮겨주는 네이버 클로버 어플을 이용하다가 이대로 가다간 다른 일을 처리하지 못해 내가 수행하고 있는 다른 의뢰인들에게까지 피해가 가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 의뢰인에게 전달할 내용이 있다면 글로 정리해서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자 그 의뢰인은 나에게 카톡으로 사건 관련 내용과 자신이 궁금해하는 것을 적어서 메시지를 보내기 시작했고, 그 카톡 내용을 워드파일에 복사해 보니, 글자크기 10포인트로 A4용지 10장 분량이나 되었다.
그 후로도 6개월 정도는 이러한 인고의 세월을 보낸 후에 사건은 마무리되었고, 그 이후 나는 마치 군 시절을 떠올리면 아무리 힘든 일도 버텨낼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해병대 출신 사람들처럼 이 일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스리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