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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강스백 May 04. 2022

가출한 주부가 필요 없는 그릇 세트를 산 이유



쇼핑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사람이 있다. 결혼을 하고 부부싸움을 한 경우, 분노 쇼핑의 액수가 좀 더 커진다. 나도 스트레스를 받으면 평소보다 더 감정적으로 돈을 쓴다. 스트레스로 쇼핑할 때 여자라면 예쁜 옷, 가방, 구두, 화장품 등 예쁜 것 위주로 사게 되는 것 같다. 남친하고 싸우고 화가 나서 쌍꺼풀 수술을 해버린 친구도 있었다. ㅎ     



며칠 전 내가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 쇼핑을 했다. 그릇과 티스푼 세트를 산 것이다. 좀 그렇지 않나?     

우리는 대판 싸우고 이혼을 이야기했다. 남편은 아침에 나에게 나가 달라고 정중하게 말했다. 나는 쿨하게 알았다고 하며 아기에게 인사하고 세수도 안 한 얼굴로 집을 나왔다. 



다신 들어가지 않으리라 어디 한번 해보자 단단히 마음먹었다. 싹싹 빌기 전까지는 절대로 집에 안 들어갈 생각을 하고 있는 가정주부가 집 나와서 집에서 쓸 그릇을 샀다. 비싼 건 쳐다도 안 보는 짠순이가 몽블랑 예쁜 티스푼까지 샀다. 이건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아침에 해장국 한 그릇 먹고, 공원을 산책하며, 예쁜 브런치를 먹었다. 혼자만의 시간을 누리며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나는 왜 집 나와서 그릇을 샀을까?     


 

혹시 집에 돌아가고 싶은 마음인가? -절대 아니다. 남편의 잘못으로 싸웠다. 남편이 잘못했다는 것을 인정했고, 진심으로 사과를 해서 집에 돌아갔다. 부끄럽지만 유치원 선생님까지 개입해서 중재를 했다. (아이 교육이나 인성에 꽤 중요한 문제였다)     





부부싸움을 크게 하면 생각이 많아진다. 남편이 잘못한 거라고 해도, 사과해서 화해했다고 해도, 싸움으로 망가진 에너지는 며칠 힘들었다. 일상에서 큰 불만도 없고 그렇다고 막 좋은 것도 아닌 그저 그런 삶. 물론 싸움 한 번으로 이혼을 결정하지는 않겠지만 여러 생각들이 올라왔다.     



혼자 있는 시간 동안 남편에 대한 원망보다 나 자신에 대한 반성이 컸다. 나는 도대체 뭘 하고 살았나? 남편 회사 보내고, 큰아이 유치원 보내고 나면 집에 제일 오래 있는 사람은 나인데 말이다. 가족을 위해 집을 깨끗하게 정돈하고 음식을 만들지만 정작 나 자신을 위해서는 무엇을 했나? 



특히 주방에서는 더 오래 있는데 나는 나에게 어떤 정성스러운 음식을 해 줬는가? 아이에게, 남편에게 주는 것만큼 그렇게 해 먹었는가? 배달 온 치킨도 그릇에 다시 담아 식탁에 놓는데 내가 먹을 때는 어땠는지 생각해 보니 다 대충 때운 기억밖에 없었다. 나를 잘 챙기며 산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집 나와서 집 안에 있던 나를 보니 초라할 정도였다. 





이제라도 나에게 잘 대접해주며 살아야지. 김밥 한줄을 사 먹더라도 접시에 담아 김치 정도는 예쁘게 내놓고 먹자. 건강하고 맛있는 그릭요거트, 아무도 봐주지 않더라도 손님에게 주는 것처럼 잘 차려 먹자.      



집 나와서 산 그릇들은 나 자신에게 잘 대접해 주려는 일종의 다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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