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선택이 최선이었을까.
엄마는 어릴 적 불쌍한 사람을 못 보셨다. 축구 경기를 해도 항상 지는 팀을 응원했고, 자식 중에서도 항상 안 된 자식들을 감싸줬다. 물론 시기에 따라 그 자식들은 바뀌었다.
우리는 싸움을 결코 멈추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어른이 될 때까지 항상 상대방을 못 마땅하게 생각했고, 누구 하나 참는 사람도 없어서 만나기만 하면 싸우기 일쑤였다.
간혹 잘 지내는 기간도 있었지만 그 기간은 오래가지 않았고 맨날 상대방을 깎아내리느라 시간을 허비했다. 어릴 때는 주로 내가 일방적으로 당하는 입장이라 엄마는 주로 내편이 되어줬는데 언젠가부터 엄마는 나의 편이 아니었다. 엄마에게 약자가 바뀐 셈이다.
사실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적대적이어서 엄마가 누군가 편들어주는 순간 엄마를 못살게 굴기 시작했다. 왜 내편이 아니냐고 왜 쟤 편을 들어주냐고.
엄마에겐 어떤 선택이 최선이었을까. 만날 때마다 으르렁 거리는 자식들 자체가 지겨웠을지 모른다. 각각의 자식이 각각의 이유로 약자, 아픈 손가락이었을지 모른다.
지금도 상처를 주고 싸워대는 자식들 통에 엄마는 어쩌면 말 못 할 고통을 가지고 있을지 모른다. 누구의 편을 들어주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그 자체가 고통임을 그동안 왜 몰랐을까. 이렇게나 어리석다.
내 입장에서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일이 발생했다. 평생 나를 괴롭히고도 또 못된 짓을 일삼는 사람을 용서할 수 없게 되었다. 한 배에서 나온 것이 맞나 싶을 정도로. 이번에도 선택의 기로에 놓여야 하는 엄마는 과연 누구 편일까.
내가 자리를 피했다. 같이 있으면 또 싸울 것이 보이기에 아예 자리를 옮겼다. 엄마의 약자는 현재 내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에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을 취했다.
처음에는 엄마도 한통속으로 느껴져서 미운 마음도 들었다. 아빠는 나를 이해한다고 했는데 엄마는 나의 손을 잡지 않았다. 그러다 생각을 하게 되었다. 엄마는 어릴 적부터 약자를 안쓰러워했지. 그리고 엄마는 달리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었겠어. 나는 엄마를 이해하기로 했다. 엄마는 그렇게라도 엄마를 이해해 줘서 고맙다고 했다.
아.. 나의 엄마! 사실 이건 돼먹지 못한 자식들 싸움인데 그 속에서 고통을 받는 사람은 엄마인데 이해한다는 자식에게 고맙다고 말하다니.
이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자식들이 번듯한 직장에 다니고 잘 사니 엄마를 부럽다 하곤 했다. 엄마의 마음은 모른 채. 언제나 전전긍긍한 마음을 모른 채. 거기에 내가 일조를 했다. 하고 싶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그렇게 됐다.
엄마의 마음은 잘 모르겠다. 맨날 내 라인이라면서도 꼭 그 애를 도와준다. 내가 미워하는 마음을 알면서도. 모든 게 걔의 잘못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러다 생각해 보면 엄마가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었겠나. 언제나 안쓰러운 자식을 향했으니까. 사실 엄마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편해지길 바라서 내가 약자임을 포기했다. 사실 내가 약자 같지만, 나에게는 그 애가 빌런이지만 엄마에게는 빌런 짓하는 자식이 약자일 수도 있을테니까. 그렇게 이해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