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현재에 머무를 수만 있다면 당신은 진정 행복한 사람일 게요. – 파울로 코엘료, [연금술사]
맨발로 부드러운 모래가 깔려 있는 시냇물을 따라 걷는 페어리 스트림 (Fairy Stream)은 마치 정말 요정이 살고 있을 것만 같아서 좋았고, 보는 것만으로도 탄성을 자아내게 해서 두 번이나 가보았던 피싱 빌리지 (Fishing Village)도 좋았다. 바람이 불 때마다 다리를 스쳐가는 따가운 모래가 있었던 처음 보는 화이트 샌듄 (White Sand Dune)도 좋았고, 저녁 노을 보며 길었던 여행을 돌아볼 수 있었던 레드 샌듄 (Red Sand Dune)도 좋았다.
여태까지 살아오면서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것을 보고 체험하면서 무이네가 이토록 알고 있던 것보다 많은 보석을 숨기고 있었다는 사실에 놀랐고 또 좋았다.
그런데 레드 샌듄에 도착했을 때 8살이나 되었을까 싶은 꼬마들이 썰매 같은 것을 타라고 달려드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들은 악착같았다. 어떻게든 돈을 벌기 위해 썰매를 타라고 달려들어 떨어지지 않는 아이들이, 한창 공부하고 뛰어 놀 나이의 아이들이 학교도 가지 않은 채 돈을 벌기 위해 썰매를 대여하는 장사를 하고 있으니 마음이 아프지 않으면 이상한 것이겠지. 그러고 보면 자본주의도 슬프지만 공산주의면서 자본주의를 받아들인 모습은 더 슬프다.
윌 스미스가 주연한 영화 [행복을 찾아서]를 보면 결론은 ‘돈’이었다. 돈이 없으면 불행하고 비참하게 살아가지만 엄청난 돈을 벌고 나니 행복해진다는 것이 이 영화의 줄거리이자 결말이었다. 또한 영국의 철학자 프란시스 베이컨은 새로운 이상향인 '신 아틀란티스'를 얘기하면서 인간의 불행은 빈곤과 궁핍으로부터 온다고 했다.
그리고 굳이 이런 얘기를 하지 않더라도 인간이 살아가는데 가장 필수적인 세 가지 요소인 의∙식∙주 (衣∙食∙住)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으며 그런 것들이 해결되어야 비로소 행복할 수 있는 출발점에 서게 된다. 그랬을 것이다.
레드 샌듄의 그 아이들은 행복하기 위해 아니, 행복할 수 있는 출발점에 서기 위해 돈이 필요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악착같을 수밖에 없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행복해 보였다. 몇 대 안 되는 자전거를 대여하며 작은 구멍가게를 운영하는 그 아저씨는 하루 종일 그물침대에 누워 있다가 누가 물 사러 오면 물 팔고, 또 그물 침대에 누워 있다가 자전거 빌리러 오면 자전거 빌려주고, 이따금씩 손자를 안고 쉬엄쉬엄 산책하는 모습이 전부였다. 그런데 그런 그의 모습이 너무나도 행복해 보였다.
무이네에서의 마지막 날.
지는 해를 바라보다 저 멀리 까이뭄을 타고 노를 저어 가는 어부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그다지 높지 않은 파도이건만 어부는 힘겹게 노를 저어 목적지를 향해 앞으로 나아간다. 순간 울컥해졌다. 그는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일까?
아니, 나는 행복한 삶을 살아왔던 것일까. 아니면 지금은 행복한 것일까.
갑자기 왈칵 눈물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