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와 난, 나와 그녀는 스치듯이 잠깐 만났다.
2002년 한일 월드컵. 우리나라의 첫 경기 상대는 폴란드.
한국에서 개최되는 첫 경기였기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 열기가 고조되었었고 모두가 경기의 시작만을 기다리고 있었을 때. 나의 머릿속은 2년 전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영어 할 줄 아는 사람 있어요? (Anybody can speak English?)”
다급했고 절박했다.
그래서 창피함 따위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창구 앞에 앉아 있던 수많은 사람들을 향해 외쳤다. 몇 시간 같았던 몇 초의 정적이 흐르고 한 아가씨가 영어를 할 줄 안다며 무엇을 도와주면 되느냐고 물었다. 그 순간, 그녀는 나에게 말 그대로 구세주였다.
브라티슬라바에서 야간기차를 타고 바르샤바로 넘어가던 밤.
밤 기차에 소매치기가 많다는 얘기를 워낙 많이 들었던 터라 쉽게 잠들지 못했다. 게다가, 한 번 의심이 시작되면 모든 게 의심된다고 같은 칸에 타고 있던 유럽 남자가 의심스럽기도 했다.
그렇게 얼마쯤 갔을까.
그 남자가 내리는 것을 확인하고는 깜빡 잠이 들었고, 중간에 표 검사한 것을 제외하고는 무탈하게 아침까지 잘 자고 일어났다. 워낙 잠귀가 예민한 내가 아무것도 못 느꼈으니 아무 일도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는 화장실에서 이를 닦다가 무심코 찔러 넣은 바지 뒷주머니에서 아무것도 만져지지 않자 순간 덜컥했다.
‘내 지갑’
바지 뒷주머니에 넣고 누워서 자면 아무도 못 빼갈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갑이 없어진 것이었다. 설마 하면서 부리나케 자리로 돌아와 이리저리 살펴보니 다행히 의자 밑에 떨어져 있던 지갑을 보고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바지 뒷주머니에 넣는 순간 지갑이 다시 바닥에 툭 하고 떨어졌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의아해하며 다시 뒷주머니에 손을 넣어보니 아뿔싸, 주머니가 도려내져 있었다. 황급히 지갑을 열어보니 현찰 전부와 신용카드가 없어졌다. 그 순간부터 급하게 이리저리 기차를 돌아다니며 승무원을 찾았고 자초지종을 설명했으나 영어가 통하지 않았다. 아니, 대충 알아들은 듯했지만 ‘뭐 어쩌라고’하는 표정뿐이었다.
허탈했다. 그렇게 조심하고 또 조심했지만 나도 기차에서 지갑을 털린 것이다. 어쩔 수 없이 하릴없이 기차가 바르샤바에 도착하기만을 기다렸다가 도착하자마자 역사 안으로 뛰어 들어가 외쳤다.
“영어 할 줄 아는 사람 있어요?”
알렉산드리아라는 이름을 가진 그 아가씨를 통해 역사 근무자에게 상황 설명을 했으나 딱히 도와줄 수 있는 게 없다고 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현찰은 포기. 대신 그녀는 신용카드 분실신고하는 것을 도와주겠다고 했고 마침 비자카드 고객센터를 알고 있어서 안내해주었다.
가는 도중에 이런저런 얘기를 해보니 나이는 스무 살이며 의대생이라고 했다. 자기도 여행을 좋아한다며, 최근에도 러시아를 다녀왔다고 했으며, 그래서 여행자인 나를 도와주고 싶었다고도 했다.
그런 마음씨가 고마워서였을까, 정말 천사가 있다면 알렉산드리아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지갑 털이를 당한 충격은 컸다.
카드 분실신고를 마치고는 너무 고마워서 점심을 사겠다고 했다. 여행자수표는 그대로 남아 있어서 밥 한 끼 정도는 대접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함께 점심을 먹으며 들은 그녀의 얘기는 다소 충격적이었는데, 그때 당시 이미 기차 소매치기들이 객실 안에 들어가기 전에 마취가스를 쏜다는 것이었다. 그때서야 모든 게 이해가 됐다. 그토록 잠귀가 예민한 내가 주머니가 뜯기고 지갑이 털리는 걸 모른 채 곤히 잘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그렇게 식사를 하며 대화를 나누고는 이메일 주소를 교환하고는 헤어졌다. 내가 태어나서 언제 폴란드 아가씨와, 그것도 의대생과 만날 기회가 있을까 싶어서였다. 전화위복이란 말은 적합하지 않은 듯 하지만, 나쁜 일 때문에 얻게 된 소중한 인연을 간직하고 싶어서였다.
실제로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이메일로 계속 연락을 주고받기도 했었다. 그러다 한국을 상징하는 선물, 이를 테면 부채 같은 것을 보내주고 싶어서 집 주소를 물어본 이메일을 끝으로 연락은 끊어졌다. 몇 번 더 메일을 보내봤지만 회신은 없었다.
그리고 2002년 월드컵.
우리나라의 첫 경기가 시작되고 난 알렉산드리아를 떠올렸다. 그녀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학교는 잘 다니고 있을까? 그때보다 더 예뻐졌을까? 우리가 폴란드를 2:0으로 이겼는데 어떤 심정이었을까?
아니, 그것보다 나라는 사람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을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수필인 피천득의 [인연]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그리워하는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그녀와 난, 나와 그녀는 스치듯이 잠깐 만났다.
그리고는 스치듯이 소식을 주고받았고 훨씬 더 오랜 시간 동안을 기억만 한 채 지내왔다.
하지만 아직도 나에게 있어 ‘폴란드’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그 무엇도 아닌 알렉산드리아다.
셀 수 없이 긴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Leggi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