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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케이 May 02. 2022

인간관계의 매개체에 대한 고찰

레인 맨, 터미널

매개체: 둘 사이에서 어떤 일을 맺어 주는 것 (국립 국어원)



'인간'이라는 글자의 의미



예전 글에서 살펴봤듯이 사람은 누구나 외롭습니다.


누구와 함께 있어도 외롭고 누구와 함께 있지 않아도 외로운 것이 사람이 가지는 기본적인 속성인 것이죠.


그리고 그 외로움은 치유하는 것도 결국 사람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얘기했었는데요, 오늘은 그 연장선상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볼까 합니다.


오래전 친구가 한 말 중 유달리 인상적이어서 아직도 기억에 남는 말이 하나 있는데, 인간이란 단어 그 자체의 의미는 사람과 사람 사이라는 것입니다. 


사람 人과 사이 間이 합쳐져서 생기고 쓰이고 있는 단어이니 친구 얘기가 틀린 얘기는 아닌 듯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어쩌면 그게 더 정확한 뜻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인간관계, 즉 사람과 사람 사이가 어떻게 규정되느냐가 너무도 중요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사실 따지고 보면 그 누구도 관계를 맺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은 없으니까 말입니다. 


누군가의 아들 혹은 딸, 누군가의 친구, 누군가의 형제자매, 누군가의 삼촌이나 고모 혹은 이모, 누군가의 선∙후배, 누군가의 직장상사 또는 직장 후배, 누군가의 군대 동기 혹은 선임병이나 후임병처럼 태어나는 순간부터 생을 다하는 순간까지 관계의 연속에서 우리는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런 관계 속에는 언제나 대상을 떠올릴 수 있는 매개체가 있기 마련입니다.



눈에 보이는 매개체

아련한 기억 속의 뷰익 자동차




1988년 개봉되어 신들린듯한 더스틴 호프만의 자폐증 연기와 톰 크루즈의 신인 시절 연기로 화제가 되었던 영화 [레인 맨]. 


하지만 이 영화에서 제가 관심을 가진 것은, 영화를 보는 내내 시선을 떼지 않았던 것은 따로 있었습니다.


그것은 불법 자동차 중개상인 찰리 (톰 크루즈)와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살수 밖에 없는 자폐증을 가진 레이먼 (더스틴 호프만)의 관계를, 생면 부지의 두 사람의 관계를 ‘형제’라는 이름으로 연결시켜준 매개체, 그들의 아버지가 찰리 (톰 크루즈)에게 남긴 두 가지 유산 중 하나인 1949년형 뷰익 자동차였습니다.



찰리가 가족을 등지고 그 누구의 도움이나 지원 없이 혼자서 살아가게 된 것도


언제나 자신에게 냉담했던 아버지가 가장 아끼던 1949년형 뷰익을 16살 때 몰래 몰고 나갔다가 아버지의 신고로 경찰서에서 이틀을 지내야 했던 찰리는 질풍노도의 시기 때문이었는지 그런 아버지가 못마땅해서 가출을 하게 되고, 이후 그 누구의 도움이나 지원도 없이 혼자서 험난한 세상살이를 하게 됩니다.



기억 너머에조차 존재하지 않던 형 레이먼을 만나게 된 것도


어느 날 들려온 아버지의 부고 소식에 아버지의 장례식을 찾은 찰리는 아버지의 유언장에서 오래전 그 뷰익 자동차와 장미만을 유산으로 상속받게 되었다는 소식과 함께 나머지 300만 달러에 달하는 유산은 다른 누군가에게 상속되었다는 얘기를 듣게 됩니다. 


그리고는 그 누군가를 찾기 위해 월부룩에 있는 한 보호소로 뷰익 자동차를 몰고 찾아가는데 그곳에서 세 살 때 헤어진, 하지만 기억의 저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던 자폐증 환자인 형 레이먼을 만나게 됩니다. 


처음 만났을 땐 서로 누군지도 몰랐지만 레이먼이 어렸을 때 한 번 운전해봤던 뷰익 자동차를 보고는 어린 시절 기억을 되짚어 내자, 찰리는 그가 어린 시절 함께 살다가 어린 찰리를 다치게 할까 봐 일찌감치 아버지에 의해 요양원에 보내졌던 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레이먼과 월부룩에서 LA까지 6일간의 여행을 하면서 함께 타고 간 것도


레이먼에게 남겨진 유산의 절반을 차지하기 위해 찰리는 몰래 그를 데리고 LA로 돌아가게 되는데 비행기 폭파 사건과 고속도로 자동차 교통사고에 대한 기록을 외우고 있는 레이먼의 공포심 때문에 결국 아버지의 유산인 뷰익을 타고 국도를 통해 먼 길을 떠나면서 겪게 되는 형제만의 6일간의 여행이 펼쳐집니다.


바로 1949년 형 뷰익 자동차와 함께인 것입니다.


이 영화에서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지만 극의 흐름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는 아버지와 형제를 ‘가족’으로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끊임없이 연결시켜주는 매개체가 바로 뷰익 자동차인 것이지요. 



그리고 이 영화에는 또 하나의 매개체가 등장하는데, 바로 이 영화의 제목인 [레인 맨]이 바로 그것입니다.


영화 속에 나타난 바로는 찰리가 어린 시절 두려움을 느낄 때면 자신에게 노래를 불러줬던 상상 속 존재가 ‘레인 맨’입니다. 


평생 외아들인 줄 알고 살았을 정도로 기억에 흔적조차 남지 않았던 형이 사실은 살아오는 내내 레이먼이란 이름 대신 발음이 비슷한 ‘레인 맨’이란 이름으로 함께 했었던 것입니다. 


서두에 얘기했던 사람이 살아가면서 갖게 되는 수많은 관계 중 피로 맺어진 혈연관계는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다는 점에서 언제나 우리에게 애잔한 ‘감동’을 선물합니다. 


때로는 눈물짓게 하며 때로는 감동에 가슴이 벅차오르기도 하고 때로는 미워하게도 하지만 결국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바로 피로 맺어진 관계가 아닐까요?


그리고 이 영화는 마지막 레이먼의 대사를 통해 그런 ‘감동’을 선물하며 우리를 눈물짓게 합니다.


336시간/ 20,160분/1,209,600초.


찰리가 레이먼을 다시 만나러 가기로 한 2주 후라는 시간을 레이먼은 그렇게 되뇌이며 이제는 영원히 함께 할 수 있는 피붙이인 동생을 다시 볼 가슴 벅찬 순간을 그렇게 기억하고 기다릴 것을 표현한 것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매개체

아버지와의 약속




이처럼 매개체는 눈에 보이는 어떤 물건일 수도 있지만 때로는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그 어떤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바로 영화 [터미널]에서 빅토르가 그토록 공항을 벗어나 뉴욕으로 가려했던 이유처럼 말이죠.


뉴욕에 도착한 시점, 입국 심사대를 통과하는 그 시점에 자신의 국가인 크로코지아에서 일어난 내전으로 빅토르는 그 입국 심사대를 통과하지 못하게 됩니다. 


정부와 혁명군의 내전으로 이른바 ‘무정부 상태’이기 때문에 이미 받아 온 비자는 무용지물이 되었으며 본국으로 돌아가기엔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기 때문에 추방 조건이 성립되지 않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설상가상으로 영어도 하지 못하는 그는 공항 보안 책임자인 딕슨에 의해 그냥 공항에 머무르게 됩니다. 


공항에서 잠을 자고 공항에서 머리를 감고 공항에서 식사를 하며 그냥 공항에서 생활하게 되는 것. 그것도 9개월씩이나 말이죠.



사실 빅토르가 공항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기회는 있었지만 그는 스스로 공항 밖으로 나가지 않았습니다. 아무 이유 없이.


어쩌면 두려움 때문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문을 넘어 한 발자국만 걸어가면 목적도 달성하지 못한 채 어쩌면 다시 그 먼 고향으로 다시 돌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두려움. 


공항에 살면서 그곳에 익숙해진 빅토르는 그렇게 공항에 적응해 갑니다. 


익숙하다는 것은 그래서 무서운 것입니다. 불편함이 편함으로 바뀌고 나의 인식이 남의 인식과 같아지고, 그 익숙한 것을 떠나보내면 또다시 불편함으로 회귀하게 되는 그런 것.



하지만 그곳에서 그는 친구를 사귑니다. 


인도에서 비리 경찰을 칼로 찌르고 도망 온 공항 청소부 굽타, 기내식을 관리하고 운반하는 엔리크 크루즈, 

수하물 처리반인 멀로이, 하루에 한 번씩은 비자 신청서에 도장을 받으러 찾아가는 그래서 나중에는 친구만큼 익숙해진 토레스까지. 


그 와중에 엔리크와 토레스의 사랑의 징검다리 역할도 해주고요.


운명적인 사랑도 만나게 됩니다. 


‘Wet Floor’라는 안내문을 보지 못하고 미끄러져 구두의 뒷굽이 나간 승무원 아멜리아 (캐서린 제타 존스).


그런 그녀를 도와준 첫 만남 이후 몇 번의 우연한 만남을 거쳐 그는 그녀를 사랑하게 되지만 원래의 남자 친구였던 유부남에게 돌아간 그녀 때문에 실연의 상처도 안게 됩니다. 바로 공항 안에서.



그러던 어느 날, 본국의 내전이 종식되어 드디어 공항을 벗어나 뉴욕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가 그토록 긴 시간을 공항에서 지내면서까지 뉴욕에 들어가려 했던 이유는 돌아가신 아버지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인데요, 바로 아버지를 대신해 색소폰 연주자 베니 골슨의 사인을 받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생전에 재즈 음악에 심취하며 다양한 방법을 통해 뉴욕의 한 재즈 클럽에 있는 연주자들의 사인을 받아서 모았는데 아버지가 그토록 좋아하던 베니 골슨의 사인만 없었던 것이었고 그래서 베니 골슨의 사인을 받아 아버지의 소원을 대신 이뤄주고 싶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영화에서 빅토르를 그 긴 시간 동안 답답한 공항에 머무르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아버지와의 약속이며 그것은 다시 말하면 돌아가신 아버지와 살아 있는 빅토를 연결시켜주는 매개체인 것입니다.


여담입니다만 이 영화는 다음과 같은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되었다고 합니다.


이란 사람인 '메르한 카리미 나세리'는 1970년 영국으로 유학을 갔다가 1976년 고국으로 돌아갔지만 유학시절 왕정 반대 시위에 가담한 전력으로 인해 추방을 당한다.

영국으로 돌아온 나세리는 정치적 망명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하고 추방되고 만다. 이후 네덜란드, 벨기에 등으로 옮겨 다니며 망명을 요청했지만 번번이 거절당했다. 그는 1988년 샤를 드골 공항에 자리를 잡았다.

프랑스 정부는 1999년 마침내 그에게 망명자 신분을 주기로 결정했지만 관련 서류에 자신의 이름이 '메르한 카리미 나세리'라고 적혀있다는 이유로 망명 권유를 거절했다.

16년 동안 그를 돌봐온 공항 소속 의사 필리프 바르갱은 '불행한 과거사를 떠올리지 않으려고 본명을 회피하는 것'이라고 추측했다. 영화 [터미널]의 제작사인 드림웍스가 저작권 개념으로 30만 달러를 그에게 지불했지만 그에게는 관심 밖이다. 여전히 햄버거를 사고 신문을 사느라 매일 몇 유로씩만 지출한다. *


물론 실화 주인공과는 국적이나 상황 등 여러 가지가 많이 다르지만 제작팀에서 저작권료로 그에게 30만 불 정도를 지급했다고 하니 미국의 저작권 개념도 참 대단하네요.


*블로그 [화창한 어느날] 참고

    

* 이미지 출처: 다음 영화 섹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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