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현에게 보내는 안녕의 말
열 권쯤, 자존감에 관한 책이 책장 한 켠에 쌓여 있다. 당장 죽을 것 같았으니까- 뭐라도 해보려고 발버둥을 쳤다. 가루가 되어 바스러진 정신머리를 어떻게든 붙들고 있어 보려는 노력이었다. 두서없이 쓸어 담은 책 중 제대로 읽은 책은 결국 한 권도 없다. 나의 불안과 우울을 재단하고, 규격화하고, 심지어 다 이해한다는 듯 조언을 건네는 활자 속에서 얻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정신과 상담을 받고, 유경험자인 친구들에게 밤새 하소연을 하고, 혼자 틀어박혀 울었다. 극단의 우울을 겪고 나서 느낀 것은, 사회의 또 다른 폭력이었다.
행복하라고, 너는 행복할 수 있다고, 너는 사랑받기에 충분한 사람이라고, 그러니 스스로를 사랑하는 법을 먼저 배워야 한다고 사회는 끊임없이 강요한다.
행복하지 않으면 좀 어때서.
행복이라던가 사랑 따위, 정성적으로도 정량적으로도 분석이 불가능한 그 말장난 같은 감정의 조각을 '획득했다'고 '믿기 위해' 사회는 모두에게 강요한다. 행복하라고, 스스로를 사랑하라고, 타인을 사랑하라고, 세상은 아름답다고, 너는 행복하다고.
사실 사회의 사회적 책임을 따진다면, 개개인이 행복을 강요당하지 않아도 행복하다고 은연중에 느낄 수 있어야 한다. 몸 담고 있는 사회의 테두리가 안락해야 하고, 그래서 애쓰지 않아도 그저 행복해야 한다. 최소한의 울타리도 되어 주지 못하는 사회는 개개인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한다. 불우이웃을 도우라고, 환경을 보호하라고, 소외계층에게 관심을 가지라고, 특정 개인을 비극의 주인공 혹은 영웅으로 만들어가며.
이것은 아주 어릴 적부터, 그리고 내가 태어나기 전 내 부모와 조부모의 세대의 어린 시절부터 강요당한 성공과, 출세의 연장선상에 있다. 부와 권력, 그리고 명예를 얻은 수많은 명사들은 이야기한다. 치열하게 살아야 한다고. 원하는 일을 치열하게 하라고. 꿈을 꾸라고. 네가 하고 싶은 일을 찾으라고. 그럼 너는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너는 성공해야만 한다고.
성공하지 못하면 좀 어때서.
모든 사람이 의사나 변호사가 될 필요도, 모든 사람이 강남 60평대 아파트와 외제차와 별장을 가지고 있을 필요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물질적 부를 꿈꾸고, 그것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것이 마치 보장된 성공인 것처럼. 그러면서도 동시에 - 행복은 돈으로 살 수 없다는 모순적 가치를 함께 역설한다.
당신들이 바라는 것은 뭔가. 결국 사회 구성원 모두가 자신에게 없는 것에 대해 박탈감을 느끼고, 갈망하고, 지쳐 쓰러지기를 바라는 것은 아닌가.
다시 돌아와서, 스스로에게 묻는다.
행복하지 않으면 좀 어때서.
그리고 나는 대답한다.
딱히 행복하지 않아도 괜찮아.
너의 우울을 걱정했어야 하는데, 너의 우울까지 사랑하기만 해서 미안하다는 한 팬의 말이 사무치도록 아프다.
너무 많이 힘들었지. 고생했어. 수고 많았어. 이제 괜찮아.
우리는 너를 조금 더 기억할게.
잘 가, 종현아.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