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좀 '취존'이 되는 적당한 사회를 바라며
엄밀히 따지자면, 나는 아마 페미니스트가 아닐 것이다. 그 이유야 딱 한가지로 답할 수는 없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나의 젠더 감수성이 그렇게 예민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 생각한다.
사회적으로 켜켜이 쌓여 오던 '여성인권'과 '젠더감수성'의 문제는 모종의 사건을 계기로 사회 현상처럼 퍼져 나와 주변을 잠식하고 있다. 다른 나라에서 살아보지 않았으니 타국의 사정은 모른다손 치더라도, 대한민국의 여성인권이 상당히 낮은 수준이고, - 지속적으로 아주 조금씩 나아져 오고는 있지만 - 여전히 남성 우월주의 프레임에 갇힌 채 '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부분도 일정 이상 동의한다.
그런데 나는 요즘 피곤하다.
사회의 모든 현상, 그렇게 이어져왔던 관습과 그중에서 어느 정도 용인해야 할 부분, 혹은 나이 많이 잡수신 노인들의 언행까지를 모두 젠더감수성과 혐오, 역혐오의 프레임 내에서 사고하는 것은 과연 옳은 것일까?
누군가는 분명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 그래야 변할 것이다.
하지만 사회 구성원 모두가 한 문제에 매달리는 것은 절대로 건강한 사회가 아닐 것이다.
누군가는 결식아동의 복지 문제를 걱정하고, 누군가는 '서류상의 자식'이 있는 관계로 생계비 지원을 받지 못하는 독거노인들의 문제를 걱정하고, 나 같은 누군가는 사람보다 동물에 초점을 맞춰 무엇을 걱정하고. 이런 걱정과 개선의 노력이 모여야 정말 건강한 사회로의 변화가 일어나는 건 아닐까. 난 아무래도 이게 맞는 것 같은데.
문득 생각나는 두 가지. 첫 번째는 안재현이 출연하는 신혼일기? 뭐 그런 프로그램의 인터뷰 캡처가 나돌며
가사노동은 '함께' 하는 것이지 '도와'주는 것이 아니다, 또 누군가가 소유진 짤을 가져와서는 요리해주는 남자 받아먹는 아내, 원래 요리는 누가 하는가, 함께하다와 도와주다의 명백한 차이... 물론 맞벌이 가정에서 여자'만' 살림을 도맡아 한다면 그건 문제가 있다. 분명히. 하지만 그 이전에 각각의 가정과 그 구성원이 가진 '개인적인 부분'에 대한 이해는 왜 고려대상이 아닌가. 맞벌이를 하지만 내 신랑의 밥만은 내 손으로 차려먹여야 속이 시원한 아내도 있을 것이고, 아내보다 청소와 빨래를 잘 하는 남편도 있을 수 있다. 그저 '도와주는'것이 아닌 '알아서 함께하는' 것 이상의 대결 구도를 만들고 싸움질을 조장하는 이유는 대체 뭘까.
논란의 중심이 된 김민희의 발언도 매한가지다. 물론 (다양한 이유로) 여론이 집중되고 있는 연예인이라, 말을 조금 더 완곡하게 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은 있지만서도. 모든 여성이 '사회가 여자에게 존나 불평등해!'를 반드시 느껴야 할 의무는 없다. 그게 본인이 예뻐서이든, 돈이 많아서이든, 혹은 둔하고 무감해서든 간에.
어떤 '건수'를 가져와서든 기필코 대결 구도를 만들고 싸움질을 시켜야 맘이 풀리는 사회 분위기 역시, 역시 문제가 있다. 나는 그냥 응 너는 그렇구나, 근데 나는 이렇게 생각해. 이런 관점에서의 생각도 있단다. 오, 생각도 못 해봤네 ㅇㅇ 너는 그렇구나. 이런 커뮤니케이션이 좀 일상적으로 가능하기를 바란다.
(물론 말투가 저렇게 곱지는 못할 것이다. 결코.)
요리와 청소를 잘 해야만 '괜찮은 여자'인 게 아니듯, 페미니즘에 대한 공부를 해야만 '괜찮은 남자'인 것도 아니다. 그전에 선행되어야 할 것은 상호 존중. 이해. 그리고 정도를 지키는 것.
이 기본적인 게 (나도 안 되긴 하지만) 참, 어렵다. 조용히 좀 살고 싶다. 적당하게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