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잔혹동화
‘씨앗 소년’은 세 살배기 씩씩한 노랑무늬 고양이입니다. 씨앗 소년의 가족은 올봄 이곳 산 아래 마을에 이사를 왔습니다. 소년에게는 고양이 누나와 동생이 있습니다. 소년의 엄마는 사람이지요. 실은 남자 사람이지만, 소년에게는 그저 엄마로 여겨질 뿐이니 우리도 엄마라고 하겠습니다.
씨앗 소년은 외출냥입니다. 해 질 무렵이면 엄마가 소년에게 캔 간식을 먹이고 이름이 적힌 목걸이를 걸어 주고서 창고로 쓰는 뒷방 창문을 열어 줍니다. 씨앗 소년과 남매들은 창문으로 호로록 뛰어나가 밤새 쏘다닙니다. 공터에서 신나게 뒹굴고 화단을 파 헤집지요.
하지만 너무 멀리 가지는 않습니다. 밤 골목에는 때로 술 취한 아저씨와 시커멓고 큰 개가 서성이고, 집에는 언제나 신선한 물과 아늑한 방석이 기다리거든요. 적어도 가을이 오기 전까지는 그랬지요.
소년에게 ‘씨앗 소년’이라는 별명이 붙게 된 것은 고작 얼마 전입니다. 아마도 뒷산에 억새가 높게 자라난 늦여름이었을 겁니다. 소년은 어지러이 날아다니는 잠자리 떼를 쫓아 뒷산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뒷산 꼭대기 숲에 다다른 소년의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소년은 밟기 적당하게 바삭한 낙엽과, 다가가면 매섭게 야단치는 까치 부부, 강아지와 산책하는 아주머니, 그리고 땅굴 속으로 후다닥 숨어드는 멧쥐 가족과 맞닿뜨렸습니다.
“우와, 뒷산은 참 멋진 곳이로구나! 매일매일 와야겠다!”
신나게 수풀을 헤치다 마침내 잡은 잠자리를 물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엔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돌아온 소년의 등에는 자잘한 풀씨들이 참빗처럼 털을 꼭 움켜쥐고 매달려 있었습니다. 엄마가 웃으며 소년의 등을 쓰다듬었습니다.
“넌 뭐랄까. 풀씨의 전령, 아니 씨앗 소년이구나.”
씨앗 소년은 엄마를 무척 좋아해요. 그래서 잠자리를 먹지 않고 엄마에게 양보했습니다. 엄마는 웃으며 씨앗 소년의 머리를 쓰다듬었습니다. 씨앗 소년은 기분이 좋았습니다. 이튿날에는 메뚜기를 물어다 주었습니다. 엄마는 또 웃으며 칭찬했습니다. 씨앗 소년은 엄마를 더욱더 기쁘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하여 어느 날은 방아깨비, 또 다른 날은 사마귀를 물어 왔습니다. 엄마는 이상하게도 칭찬만 해주고 메뚜기나 사마귀를 먹지 않았습니다.
씨앗 소년이 버둥거리다 토막토막 끊어지는 그리마를 물어 온 날, 엄마는 칭찬해주지 않았습니다. 엄마는 얼굴을 찌푸리고 야단치며 그리마를 휴지로 집어 버렸습니다. 씨앗 소년은 의아하고 속상했습니다.
‘엄마는 어째서 잠자리나 메뚜기는 좋아하고 그리마는 좋아하지 않을까? 왜 엄마는 내 선물을 먹지 않고 버리는 걸까? 전처럼 엄마를 기쁘게 만들 방법이 없을까?’
골똘히 생각한 끝에 씨앗 소년은 답을 내렸습니다.
‘그래, 엄마는 내 선물이 너무 작아서 맘에 안 드는 거야! 엄마는 아주 크니까!’
어느덧 깊어진 가을 쌀쌀한 저녁, 오늘도 뒷방 창문이 열렸습니다. 씨앗 소년은 부리나케 뛰쳐나갔습니다. 산과 마을이 만나는 경계에는 귀뚜라미 무리가 찌르르 울어댔지만, 씨앗 소년은 그들을 지나쳤습니다.
‘오늘 밤은 반드시 더 큰 것을 사냥하겠어…… 엄마를 기쁘게 해줄 아주 큰 것…….’
씨앗 소년은 굳게 다짐하며 한달음에 나무계단을 올라 숲으로 내달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