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마다 다리의 개수는 다르다
학습도움반(특수학급)에는 크기 비교를 배우는 학생부터 세 자리 덧셈도 척척 하는 학생까지 수준이 다양하다. 여러 수준의 학생이 조화로운 소리를 내도록 통솔하는 지휘자가 교사다. 그런 교사에게 수업의 특별한 무대가 펼쳐질 때가 있다. 바로 공개 수업일이다. 교사는 매년 몇 차례 학부모나 동료 교사 앞에서 수업하곤 한다. 이번에는 내 차례다. 초반 분위기는 좋았다. 새롭게 시도한 활동도 아이들이 잘 따라주었다. 좋은 흐름이 이어지던 그때 꽈당하는 소리가 교실을 울렸다.
다른 아이를 지도하는 중에 한 아이가 의자를 뒤로 젖히다가 의자와 함께 뒤로 넘어진 것이다. 공개수업 때만 두 차례 이런 경우가 있었다. 평소에는 전혀 없거나 빈도가 낮았던 행동이 공개수업 중에는 반전영화처럼 일어난다. 사실 안타깝다. 학부모가 상처만 받진 않을까 염려되었다. 아이는 부모가 있으면 산만해지고 평소에 잘 안 하던 문제행동까지 늘어난다. 예전에 어떤 아이는 엄마가 보라고 책상 위에 올라가 서 있기도 했다. 가르치는 내내 단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행동이었다. 한편으로는 산만한 수업을 보시고 교사의 능력을 의심하진 않을까 걱정했지만, 여태껏 그런 학부모는 만나지 못했다. 평소 학생에 관한 정보를 자주 공유해서 그런 것 같다. 갑자기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의자의 다리가 많았으면 더 나았을까? 앉아있는 스핑크스가 꼬인 다리를 반대로 꼬며 물었다.
의자의 다리는 왜 네 개일까?
다리가 많으면 더욱 안정적일 수 있는데 말이다. 최소한의 다리로 최대한의 안정감을 나타낸 거라고 유추해본다. 사람 역시도 마찬가지다. 두 개의 다리로 진화한 것은 분명 그 자체로 충분히 효율적이고 안정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힘들면 꼭 두 발로 지탱할 필요는 없다. 내가 달라지면 지탱하는 다리의 수도 달라져야 한다. 때론 앉기도 하고 눕기도 해야 한다. 그냥 상황이 변한 것뿐이다. 현상에 맞게 지지하는 수도 달라져야 그곳에서 고개를 떨구지 않고 바라볼 수 있다.
다리의 수를 생각하다가 내가 가르친 학생이 떠올랐다. 문수는 진행성 근이영양증을 가진 학생이었다. 근이영양증은 근육이 점차 지방으로 바뀌는 질환이다. 처음에는 똑같은 신체조건이지만 점차 걷는 게 힘들고 나중에는 누워서 지내다가 사망에 이르는 끔찍한 희소병이다. 진행 정도는 아이마다 다르다. 문수는 저학년까지 일반학생들과 똑같이 뛰어다녔다. 하지만 점차 병은 진행되었고 5학년부터는 힘겹게 걸었다. 6학년 때는 종종 휠체어를 타기도 했다. 나는 문수 앞에서 더 밝게 지냈지만 속은 걱정과 안쓰러움이 교차했다. 아이는 자신에게 일어나는 불행을 잘 알았다. 그럼에도 누구보다 쾌활했다. 작은 것에 감사하며 해맑은 표정으로 하루를 이겨내는 그를 보면 오히려 내가 힘을 받았다. 문수는 나에게 하나의 다리였다. 나도 문수에게 작은 다리였길.
우리가 평소에 두 발로 세상을 지탱하듯이 멕시코 화가 프리다 칼로는 침대의 다리에 의존했다. 그녀는 18세 때 큰 교통사고로 심한 부상을 얻는다. 척추, 다리, 자궁을 심하게 다쳐 평생 30번 넘은 수술을 받았고 국민화가이자 남편인 디에고 리베라의 바람기 때문에 마음의 상처가 심했다. 그럼에도 당당하게 세상을 향해 자기 생각을 행동으로, 예술로 표현했던 그녀다. 결국, 가장 중요하고도 큰 다리는 나를 지지하는 '나'인 셈이다.
오늘 나를 지지하는 다리는 몇 개인가?
스핑크스가 중얼거린다. "아침에는 네 개, 점심에는 두 개, 저녁에는 세 개인 것은 역시나 인간이 맞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