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핑크스|제10.5화. 초록동색의 진짜 뜻

같은 것을 다르게 보는 힘을 느끼다.

by 반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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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3학년 현우는 아직 글씨 쓰기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 손바닥만 한 글씨를 삐뚤빼뚤 쓰면 나와 현우만 알아볼 수 있는 둘만의 글자가 된다. 수업 진도를 다 나가면 가끔 손 조작활동에 좋은 색칠하기를 시키는데 그날따라 현우가 고민에 빠졌다. 똑같은 초록 색연필 두 자루를 두 손에 쥐고 한참을 쳐다보고 있는 게 아닌가!




같은 색을 고민하다니! 같은 게 아니었나? 성질 급한 예전의 나였으면 '이걸로 해!'라고 말했겠지만 이젠 아빠의 심정으로 기다린다. 부글부글 끓다가 식다가를 반복하며 라면이 불어버릴 시간이 되자 현우는 스스로 만족스러운 선택을 했다.




훗날 생각해보니 민감한 시각을 가진 현우에게는 색연필의 겉에 아주 미세한 차이가 있었던 것 같다. 내가 똑같다고 치부하는 것들이 다를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무서워졌다. 아이들에게 판단을 맡기지 않고 당연하게 강요한 게 있는지 모르겠다. 마음이 따끔하다. 현우 덕분에 '초록동색'이라는 사자성어가 내게는 다른 뜻이 되어버렸다.




초록동색草綠同色
자세히 보면 풀빛과 녹색은 다름에도 같다고 주장하는 어리석은 행동이나 강요



#초록잎으로 단정 짓지만 세상에 같은 색의 잎은 없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내 멋진 잎맥 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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