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는 후회를 싫어한다
위급한 순간은 나를 돌아보게 한다. 자동차가 강물에 빠졌다. 심지어 아기까지 탄 상황이다. 침착하자고 수없이 중얼거렸다. 아기를 안심시키고 '괜찮아. 뉴스에서 배운 대로 하자.'라고 생각했다. 물이 목까지 차오를 때 빠져나가면 된다. 그런데 막상 물이 목까지 차오르자 당황한 나는 다른 행동을 했다. 자동차의 창문을 열려고 시동을 계속 건 것이다. 결국 물을 먹으며 깼다. 개꿈이었다. 새벽 2시 15분. 그 뒤로 나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옆에 있던 스핑크스가 베개로 입을 가리고 움찔거린다. 야! 그만 좀 웃지?
꿈이 너무나 생생해서 계속 생각났다. 자꾸 떠올라서 나를 구박하기에 이르렀다. 난 왜 멍청하게 시동을 걸고 창문을 열려고 했을까? 침수된 차에 시동이 걸릴 리가 있나? 원래는 목까지 물이 차오를 때 문을 여는 거 아닌가? 당장 컴퓨터를 켜고 기사를 뒤져보기 시작했다.
침수차량 기사를 살펴보니 최근에도 강원도 강릉에서 10대 남녀 5명이 탄 승용차가 바다에 추락해 숨지는 사고가 있었다. 안타까운 일이다. 대처법은 실제로 턱밑에 물이 차오를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자동차 외부 압력과 내부 압력이 같아지려면 턱밑까지 물이 들어와야 한다. 난 알면서도 배운 대로 하지 못했다. 기다릴 때 심리적인 압박이 엄청나다고 한다. 아마 꿈속의 나도 당황해서 엉뚱한 행동을 했으리라. 조금 용서해줬다.
아침이 되자 두 가지를 깨달음이 아침 인사를 했다. 깨달음 하나, 나는 사고 현장에서 긴장을 안 한 줄 알았는데 사실은 극도로 긴장하고 있었다. 마치 새해에는 새로운 나라고 착각하고 매번 뒤통수를 맞던 그때의 느낌이다. 모르던 나의 현실을 다시 알게 됐다. 나를 과장했고 과장한 높이만큼 도끼를 들어 나의 발등을 찍었다. 차라리 내 감정을 인정하고 달랬으면 조금 나았을까? 중요한 일은 나도 배신할 수 있으니 착각하는 부분이 없는지 살피고 모든 가능성을 대비해야 한다. 깨달음 둘, 진짜 제대로 알고 행하는 일이라면 꿈속에서도 틀릴 리 없다. 내가 잘 모르거나 모의훈련을 그려보지 않았던 게 탄로 났다. 운동선수가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듯이 나 역시 그래야 했다
이런 개꿈을 왜 꿨나 했더니 곧 해야 할 중요한 강의 때문이었다. 잠재의식이 큰 부담감을 느끼는지 내게 꿈으로 깨달음을 줬다. 첫째, 나를 맹신하지 말고 모든 가능성을 생각해서 준비하자. 둘째, 이상적인 이미지를 트레이닝하자.
아내에게 생생했던 꿈 이야기를 했다. 탈출을 못했다고 안타까워하자 심드렁한 표정으로 한마디를 한다. "왜 기다려? 물에 들어가자마자 창문을 열거나 깨야지." 맞다. 기다리는 공포 때문에 일반인은 목까지 물 차기를 기다리기 힘들다. 요즘 대처법에는 '비상망치'로 창문을 깨고 탈출하는 것이다. 그리고 오늘 난 비상망치를 장바구니에 넣었다. 아침까지 웃던 스핑크스가 즐거웠다는 표정으로 묻는다.
Are you ready?
예전에 겪었던 위급한 상황이 생각났다. 특수학교에서 근무했을 때이다. 수 치료실에서 6학년 아이들과 잘 보내고 있었다. 수심이 성인의 무릎도 안 오는 곳이라서 정말 안전했다. 하지만 사고는 걱정을 치울 때 일어난다. 한 아이를 도와주면서 나머지 아이들도 잘하는지 살피는 그때, 덩치가 큰 승우가 성은이와 가볍게 부딪혔다. 생각하지 않은 충돌에 놀란 성은이는 그 자리에서 뇌전증(간질발작)을 일으켰다. 물에 풍덩 빠져서 엎드린 채 몸을 떨었다. 수치료실은 넓지 않은 공간이었지만 성은이에게 달려가는 2~3초가 정말 길게 느껴졌다. 물의 저항에 이토록 화났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급하게 안전한 바닥으로 옮겨서 응급처치를 했다. 다행히 별 탈 없이 사건은 마무리되었다. 대단한 건 아니지만 내가 준비되지 않았다면 뇌전증에 당황하며 잘못된 처치를 했을 것이다.
준비準備는 갖춘다는 의미이다. 핵심은 ‘준하게’ 갖춘다는 것이다. ‘준하게’의 기준은 사람마다 눈높이가 다르겠지만 합리적으로 결정하는 방법은 알고 있다. 바로 죽음이다. 내일 당장 죽는다는 생각을 한다면 적절한 기준을 세우기 한결 쉬울 것이다. 난 매일 죽음을 준비하려고 노력한다.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삶을 되새김질하곤 한다. 내일은 누구에게도 보장되지 않는 선물 아니던가? 그럼 지금 남긴 내 흔적들이 너무나 부끄럽다. 아직 정리되지 못한 삶을 그대로 둔 채 후회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삶을 마무리하는 심정으로 원 없이 하루를 소풍처럼 즐기는 편이다. 그렇게 되면 싫은 사람도 싫은 일도 싫은 세상도 달라진다.
준비는 거창하지 않다. 지금 죽어도 크게 아쉽지 않을 정도로 한 걸음 한 걸음을 걷는 게 내가 생각하는 준비다. 방임은 교육용어이지만 우리의 삶 속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자율적인 나를 위한다며 방임을 행해선 안 된다. <미움받을 용기>라는 책을 보면 이런 구절이 있다.
청년이 철학자에게 묻는다.
"그러면 아이가 전혀 공부하지 않아도 그것은 아이의 과제니까 방치하라는 겁니까?"
철학자는 말한다.
"방임이란 아이가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 태도라네. 그게 아니라 아이가 무엇을 하는지 알고 있는 상태에서 지켜보는 것. 공부에 관해 말하자면, 그것이 본인의 과제라는 것을 알리고 만약 본인이 공부하고 싶을 때는 언제든 도울 준비가 되어 있다는 의사를 전하는 걸세."
여기서의 아이가 꼭 자녀를 말하는 건 아니라고 믿고 싶다. 우리 안의 아이에게도 해당한다고 생각한다. 하고 싶을 때 도울 준비는 ‘지금 당장’ 해야 한다. 스핑크스가 다시 묻는다. “Are you ready?”
“네, 준비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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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