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 배우는 인생철학
깜냥스승에게서 두 가지 깨달음을 얻었다.
하나는 밀고 당기기의 의미였다.
우리는 당기는 것만 좋아한다는 의미로 쓰인다.
예를 들어, 당이 당기거나 사랑을 당기거나 하는 식이다.
하지만 뇌는 미는 것도 좋아하는 것으로 인식한다.
우리의 머리는 떠오르는 이미지를 유지하고 싶어 한다.
파란색 코끼리를 떠올리지 말라고 하면
파란색 코끼리가 생각나는 것처럼 말이다.
내가 싫어하는 뱃살을 생각에서 밀어내면
뇌는 뱃살을 원한다고 잘못된 명령을 받는다.
불쾌한 사람의 불친절한 행동을 밀어내면
뇌는 불쾌한 그 사람을 계속 띄워 준다.
밀어내는 것조차 뇌한테는 관심의 표현이다.
그러니 정말 싫다면 차라리 무관심해야 한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관심 있는 것에 몰입해야 한다.
따라서 밀어내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원하는 것을 당기는 시간을 늘리려고 노력해야 한다.
다른 하나는 몸의 가치였다.
나는 나의 몸을 얼마나 알고 있었을까?
몸: 사람이나 동물이 지닌 형상의 집합체
마음: 사람이 지닌 고유의 본바탕
지금까지 우리는‘몸’을 부속품 정도로 여겨왔다.
닳은 기관을 3D 프린트로 만들어 교체할 수 있는 시대에서 더욱 몸을 무시할 예정이다.
과연 인간으로서의 보편적 의미는 살아남을까?
강력한 정신이 육체를 지배하기 때문에 상관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반쪽의 대상을 무시하면 인간에게 허무주의는 전염병처럼 퍼질 것이다.
니체는 우리의 고정관념과 다르게 생각했다.
그는 인간이 몸의 존재라고 말한다.
충격적이었다.
몸이 정신의 지배자라니.
사실 우리가 존재한다고 할 때는 몸을 빼놓고 말할 순 없다.
나는 전적으로 신체일 뿐, 그 밖의 아무것도 아니며,
영혼이란 신체 속에 있는 그 어떤 것에 불과하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실제로 머리의 과부하는 몸의 허약함에서 온다.
집중력이 떨어지거나 화가 늘었다면 정신의 문제가 아니라 신체의 문제일 가능성이 크다.
예를 들어, 제2의 뇌인 장을 깔보면 행복은 죽을 때까지 드물게 오는 이벤트가 될 것이다.
‘행복 호르몬’으로 부르는 신경전달 물질 세로토닌의 95%가 장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뇌와 장이 연결되어 있다는 ‘장-뇌 연결축’ 이론은 다양한 연구를 통해 증명되고 있다.
몸을 무시한다는 것은 ‘나’라는 존재를 무시하는 것과 같다.
대부분의 자기 계발서는 인간의 머리와 가슴을 이야기한다.
아무리 좋은 글이라도 그건 반쪽짜리 이야기에 불과하다.
몸을 뺀다면 말이다.
자신의 신체는 끊임없이 알아가야 할 동반자인 셈이다.
먹는 음식을 통해 성향을 배울 수 있다.
유쾌한 몸의 상태를 통해 한계를 알 수 있다.
상황마다 오는 몸의 반응을 통해 내면을 이해할 수 있다.
몸으로 표현하는 기술을 통해 소통을 배울 수 있다.
나의 부족한 신체를 수용하거나 보완할 수도 있다.
몸은 언제나 많은 것을 말하고 있었다.
나는 나를 어디까지 알고 있었던 건가?
나 자신도 잘 모르면서 사랑하는 사람을 안다고 자만할 수 있을까?
마음이 통하는 길은 결국 몸이다.
-깜냥스승의 제자‘아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