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반창고 Nov 25. 2020

깃발을 꽂아라

유치원생 아이가 스승입니다

아이는 딸기 케이크를 좋아한다. 

정확히 말하면 케이크에 장식한 딸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딸기 케이크에는 금세 구멍이 뻥뻥 뚫리곤 했다. 

확고한 취향은 둔감한 나도 기억나게 한다. 

얼마 전 아내 생일을 맞이해서 케이크를 몰래 사기로 했다. 

아이랑 만드는 둘만의 비밀은 아빠로서 포기할 수 없는 즐거움이다. 

“어떤 케이크 살까? 우리 딸기 케이크 어때?”

나는 당연한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아이의 입에서 의외의 말이 나왔다.

“난 딸기 케이크가 맛있지만, 초코 케이크 사자.”

이게 무슨 일인가! 

있을 수 없는 사건에는 닭이 숨어있다. 까닭. 

나는 이유가 정말 궁금했다. 





“왜? 깜냥이는 딸기 케이크를 좋아하잖아.”

“엄마가 단 거를 좋아해.”

역시 엄마 껌딱지다. 

다섯 살 아이가 엄마를 끔찍이 생각한다. 

정말 이게 다일까? 

뭔가 숨기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턱을 만지며 심문을 시작했다. 

“혹시 또 다른 이유가 있어?”

당연히 있단다. 

아이는 질문에 걸려들었다. 

“딸기 케이크를 먹으면 빨간 고양이가 되거든. 빨개지지 않으려면 초코 케이크를 먹어야 해.”

예상의 벽을 넘는 상상의 답에 당황했다. 

하지만 아이는 계속 나를 설득했다.

“그리고 딸기 케이크를 먹으면 엉덩이가 빨개져서 원숭이가 돼.”

진지한 아이 표정이 귀여웠지만, 아랫니를 깨물며 참았다. 

깜냥이 취향이 바뀌었다는 것을 몇 번의 질문으로 알 수 있었다. 

그런데 나도 초콜릿 케이크가 좋다고 왜 말하지 않을까? 

두 살부터 딸기 케이크만 찾았던 자기를 옹호하고 싶었을까? 

아니면 딸기 케이크를 좋아하는 걸로 기억하는 아빠와 엄마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었을까? 

전자든 후자든 마음이 솔직하지 못하다. 

좋아하는 케이크 중 1위가 된 초콜릿 케이크를 진심으로 축하했다. 

하긴 딸기보다는 초콜릿이 달긴 달다. 





네 살 이전만 해도 좋아하는 것을 분명하게 표현했다. 

심지어 잠에서 깰 때마다 좋아하는 요구르트를 외쳤다. 

그런데 다섯 살이 되더니 마음과 입을 연결하는 통로에 체가 하나 생긴 느낌이다. 

많이 컸다는 뿌듯함과 동시에 최소한 자기가 좋아하는 것은 당당하게 표현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타인 검열보다 무서운 것은 자기 검열이다. 

내가 외치는 주문에 따라 나는 화초가 되거나 숲이 된다. 

좋아하는 것을 참다 보면 좋아했던 게 무엇인지 잊게 된다. 

점점 내 영역은 좁아지고 타인이 좋아하는 영역만 남게 된다. 

삶이 재미있을 리가 없다. 

예전의 '나'는 일단 참는 게 버릇이었다. 

그랬더니 좋아했던 게 숙성되고 복잡한 냄새가 나서 버릴 수밖에 없었다.

그것을 알고 있는 지금의 '나'는 즐거운 일을 하고 있을까? 

아직도 수십 개의 체가 마음과 입 사이에 존재한다. 







김남지 작가의 <좋아요>라는 책을 보면 프레첼이라는 딱딱한 빵에 관한 글이 나온다. 

빵집 주인이 실수로 빵을 두 번 구워서 만든 게 프레첼이다. 

“부드러우면 빵이 되고 딱딱하면 과자가 된다”는 표현이 인상적이었다. 

내가 빵이든 과자든 그 무엇이 되어도 좋다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좋아하는 대상이 빵이나 과자라면 어떻게 될까? 

시간 개념이 들어가면서 상황은 바뀐다.

아무리 부드러운 빵이어도 유통기한이 지나면 먹을 수 없는 곰팡이 덩어리가 된다.

딱딱한 과자가 있어도 이가 성하지 않은 나이가 되면 그림의 과자일 뿐이다. 

그러므로 지금만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반드시 해야 한다. 

그래야 인생이 재미있고 후회가 없다.

집에 와서 간단히 생일파티를 했다. 

케이크를 자르자 달콤한 향이 침샘을 자극한다. 

깜냥이 접시에도 하나 놓자 아이가 큰소리로 외친다.

“나는 초코 케이크 제일 좋아!”

두 시간 만에 자기가 좋아하는 걸 분명히 말했다. 

그래. 그렇게 사는 거야.

매거진의 이전글 한주 댓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