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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바 May 05. 2018

고양이 연애기

원래 없던 것처럼


비가 오려다 오지 않는 발리의 저녁은 스산하다. 먹구름을 피해 낮게 나는 새, 무리 지어 활동을 시작한  박쥐 떼, 날파리를 닮은 나방 떼가 휘적이듯 머리를 스치면 풀숲에서 나온 모기가 귓가에서 앵앵거린다. 날아다니는 모든 것들이 불안하게 비행한다. 나방은 불빛으로 돌진한다. 정자의 전등을 향하다 지푸라기 천장에 머리를 박는 것들은 그나마 다시 깨어나 푸닥거리는 데 수영장  물속의 전구를 향해 돌진한 것들은 그대로 수영장 표면에 날개를 붙이고 이내 익사한다. 


나비는, 나비는 여전히 우리 집을 찾는다. 닫힌 문밖으로 야옹거리면 내가 문을 열고 먹을 것을 내민다는 것을 기억한다. 집에 돌아와 타월을 들고 수영장에 가는 길에도 그랬다. 오늘은 혼자가 아니라 볼 따귀를 잔뜩 얻어맞아 퉁퉁 붓고 얼굴 여기저기가 상처 때문에 털이 빠진 근육냥 한 마리와 함께다. 


“너로구나. 나비를 꾀어낸 것이.”


나는 그 아이가 마땅치 않아 한동안 얼음 상태인 근육냥을 마주 보았다. 나비는 원하는 것이 있을 때만 내 다리를 휘감고 머리를 내민다. 오늘은 그런 나비도 마땅치가 않다. 이사를 거듭하던 나비는 다섯 마리의 새끼 중 네 마리를 잃었다. 네 번째 새끼 가죽던 날 나에게 항의하듯이 문 앞에서 연신 야옹거렸다. 문을 열자 그녀가 서두르며 계단을 내려갔고 그녀를 따라 도착한 수도 펌프에 죽은 새끼 옆으로 남은 한 마리가 낑낑거렸다. 


“집에 가자.”


나비는 죽은 새끼가 내 탓이라도 되는 듯 끊임없이 나를 향해 앙알거렸다. 명이 다한 새끼를 가드너에게 묻어주기를 부탁하고 남은 새끼를 안아 들고 집안으로 들어왔다. 나비는 원하는 것이 그것이 아니라며 소리를 높였다. 낮은 책상 아래를 판자로 막고 새끼를 놓아두자 금세 나비가 목덜미를 물고 문 앞으로 향했다.


“아는데, 너 밖에 있으면 이마저도 죽어.”

“절대 문 안 열어줄 거야. 두 달이 될 때까지 그냥 여기 살아.”


나비는 동이 틀 때까지 나에게 하악질을 하며 화를 냈다. 창에 빛이 어스름 들어올 때쯤에서야 내가 만들어준 거처로 들어가 새끼와 잠이 들었다. 밤새 나비와 전쟁을 벌이느라 피곤한 나도 나비가 상황을 받아들인 것으로 알고 잠이 들었다. 서너 시간 후 나비는 다시 거세게 문을 열어 줄 것을 요구했다. 새끼를 물고 이리저리 옮기는 것을 보다 보니 이러다가 집안에서도 일이 날까 싶어 포기하고 문을 열었다. 나비는 그 길로 담을 넘어 옆집으로 숨어들었고 그 집에서 새끼와 잘 있다는 소식을 옆집 주인 파라스에게 들었다. 


“키우고 싶어 그 아이들.”


나비를 집냥이로 키우고 싶은 생각은 여러 번 했다. 어디로 흘러갈지 모르는 내가 누군가를 책임질 수 없다는 미래형 죄책감에 나비를 산책냥이라 규정하고 나비의 방문만을 기다리던 날도 있었다. 우유를 따라 준다는 파라스에게 고양이에게 먹이지 말아야 할 음식과 자꾸 들추어 보지 말 것을 당부했다.


“고양이는 우유를 소화시킬 수 없어. 닭 가슴살을 좋아해. 그리고 키우고 싶다 면한 달쯤 더 있다가 새끼를 집으로 들여.”

“나비는?”

“나비는 이제 집안에서는 살 수 없어. 이미 어른이 되었거든.”


나비를 집안으로 들인 그날 밤 아이들 몸에서 옮겨 붙은 작은 벌레들에게 겨드랑이와 발목 여러 군데를 물렸다. 며칠간 가려워서 긁어낸 자리에는 딱지가 앉았고 이제 떨어진 자리에 딱지만 한 하얀 새살이 점같이 몸에 남았다. 이제 나비는 산책냥이라고 해도 집안에 들일 수 없다. 어디선가 또 벌레를 달고 들어와 수시로 집안에 연막탄을 터트리게 만들 테니까.


오랜만에 수영장에서 만난  파라스가 두사르의 소식을 전한다. 두사르는 파라스가 지은 나비 새끼의 이름이다. 몇 번을 들어도 기억하지 못하던 파라스의 이름처럼 나는 두사르라는 인도말도  낯설다.


“두사르가 없어졌어.”

“나비는 여전히 우리 집에 오는걸?”

“어느 날 사라졌어. 그리고 나비가 있던 자리에 검은 고양이가 다섯 마리의 새끼를 낳았어.”

“배는 하얗고 등은 검은 녀석?”

“아무래도 아빠는 얼굴이 부은 노랑이 그 녀석인 것 같아.”

“봉퉁아리?”


천장에서 기어 내려온 도마뱀이 전등을 탐하는 나방을 연신 우걱되고 있다. 이야기를 하는 잠깐 사이 수백 마리의 나방이 수영장 표면을 뒤덮고 있었다. 봉퉁아리 녀석이 처음부터 아이들을 꾀어내는 줄 알았더라면 녀석부터 잡아 땅콩을 떼었을 텐데. 


집으로 돌아와 열쇠로 문을 열자 어느새 나비가 두어 발짝 떨어진 곳에 앞발을 모으고 나를 바라보았다. 나비는 머리가 좋지 않다. 그렇다고 생각하고 싶다. 새끼를 잃을 때마다 자기가 아이를 낳았던 자리를 뒤적였다. 자신이 물어서 자리를 옮겨 놓고 우리 집을 한참을 둘러봤다. 나비는 머리가 좋다. 멸치가 가득 들어있던 상자의 자리를 기억하고 배가 고플 때면 노크를 하듯 문 앞에서 야옹거리니까. 그래도 이번에는 빨리 잊었으면 좋겠다. 어떤 것들은 쉬이 잊히지 않더라도. 나비만은 그것이 원래 없던 일처럼 삭제되기를. 테라스의 외등을 켜자 같은 종류의 나방이 몰려들어 몸을 박아댄다. 후드득 떨어졌다가도 이내 다시 전등으로 돌진한다. 내일 아침에 문을 열면 저것들이 노란 제푼꽃처럼 바닥에 우수수 쏟아져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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