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는 언제나 많은 비용을 치르게 한다
우리는 미디어에서 앞다투어 노출되는 ‘분노’에 관련된 소식을 보거나 듣게 되면 자연스레 눈살을 찌푸리게 된다. (예전에 읽은 책에 따르면 더 자극적인 것들에 시선을 빼앗기는 우리의 본능과 클릭 수에 비례하는 성과 때문에 더 자극적인 내용과 제목만을 다룬 기사들 위주로 송출하는 문제점이 있다고 미디어를 지적했다.)
분노가 팽배한 사회의 분위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실제로 ‘난폭운전’을 겪은 경험에서 착안해 제작된 ‘BEEF (성난 사람들)’라는 드라마가 OTT 플랫폼을 통해서 제작 및 방영된다는 광고를 보았고 그 순간 어떤 계시인지는 모르겠으나 분노와 정반대의 감정을 말하는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라는 책을 손에 쥐고 있었다. 어떻게 정 반대의 기분들이 우리 안에 공존할 수 있는지 궁금했으며, 내 나름대로 분노와 다정함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상상을 해볼까 한다.
BEEF (BEEF라는 영단어는 우리가 흔히 고기로 알고 있는데 이 뜻만이 아니라 불평하다, 싸움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라는 드라마에서는 부족한 삶을 사는 사람이든 풍족한 삶을 사는 사람이든 물질적인 것을 떠나 그들 내면에는 공허함이 있을 수 있고 이런 사람들이 자신 삶의 경계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과감히 분노를 표출하고 폭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갖고 이야기를 전개해나갔다.
반면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라는 책에서 말했다. 우리 인간이 과거부터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뛰어난 두뇌 때문이 아니다. 서로의 감정을 이해하며 협력을 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다툼으로 발생하는 비용을 줄일 수 있으며 공동의 적에 대항할 힘을 기를 수 있다는 것을 터득했기에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다 (위 책에서는 보노보, 고릴라, 여우 등의 동물 실험부터 어따ᅠ갛게 다정한 인간이 잔인한 학살까지 일으키게 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 말해주었다.)
우리는 분노의 비용이 얼마나 많이 드는가에 대해서는 책과 드라마뿐만 아니라 역사 그리고 가까운 일상생활에서도 배울 수 있었다. 어떤 국가들은 종교의 문제로 전쟁을 시작했고 그것은 폭력이 폭력을 낳는 사태를 만들었으며 지금까지도 많은 희생을 치르고 있다. 그리고 가끔 나의 눈과 귀를 멀게 하는 분노로 인해 내려진 결정과 행동은 후회와 죄책감이 남는 경우가 많았고 분노로 인해 그르쳤던 결과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감정적인 소모를 치르게 했다.
다정함이 가득했던 사회가 왜 분노가 가득한 사회로..
물론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 이전에도 분노로 일으키게 된 사건 사고가 많았지만, 이를 더 가속하게 하는 것은 내가 보고 싶고 듣고 싶은 것만 듣게 하는 알고리즘이라는 기술이지 않을까 싶다. 정보의 출처를 따지지 않고 내 입맛에만 맞는 정보의 편식은 나와 의견이 다른 이들을 배척할 확률이 더 커지지 않을까?
그리고 현저히 부족해지고 불평등하게 배분된 자원은 우리를 멀리 내다보지 못하는 바보로 만들고 당장눈앞의 이익만을 좇으며 나 이외에는 모두 경계해야 할 적으로 만들게 한다.
이제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는 다정함은 예전처럼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 아닌 것 같다. 우리가 좀 더 다정해지기 위해서는 가끔은 나에 관한 알고리즘을 흩트릴 수 있는 용기 갖고 주어진 자원을 아끼고 이타적으로 배분될 수 있는 사회 시스템을 만드는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다정함으로 우주를 구한 영화인 ‘에브리띵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대사로 끝내보겠다.
“내가 아는 유일한 것은 우리가 친절해야 한다는 것이야. 제발, 친절하게 대해줘. 특히 우리가 무슨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를 때”
내가 유일하게 아는 것은 우리 모두 다정해야 한다는 거야. 다정함을 보여줘. 특히 무슨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를 때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