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로를 포기하는 과정 속에서
최근 데이터 분석이 참 유행이다. 그리고 나는 데이터 분석이라는 말이 생기기도 전에 정보와 데이터에 대해서 진로를 꿈꾸고 대학 학과를 선택했다. 대학교에 가서도 오로지 이것만 생각했다고 말하면 거짓말이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분야를 보면서 다른 진로들에 대해서도 이것저것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졸업할 때쯤 다시 데이터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학교에서 다양한 수업을 들으면서 코딩하면서 괴롭고 어렵고 힘든 일도 많았지만, 결론적으로 나는 숫자를 보면서 분석하고 그것을 세상에 연결하는 일에 흥미와 재미를 느끼고 있었다. 그러던 중 미국으로 인턴을 가는 좋은 기회를 잡게 되었다. 대다수의 모든 학문이 그렇듯이(아닌 곳도 있겠지만, 내 주변 사람들의 분야는 대체로 그러하여 일반화한다.) 미국은 보통 롤모델이 되기 때문에 기회를 잡아서 출국하였고, 그곳에서 대학원을 꿈꾸게 되었다. 학부에서 데이터분석을 배우지만, 프로젝트에 관련된 경험이 부족하였고 조금 더 전문성을 키우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한국에 돌아와서 대학원을 찾고 석사과정에 진학하였다.
이즈음부터 데이터 분석 붐도 불기 시작했다. 석사과정에서 생각했던 데이터 분석보다는 머신러닝, 딥러닝과 같은 모델링을 중점으로 해야 했고, 기존에 학부에서 사용하던 R이 아닌 파이썬을 새롭게 배워야 했다. 학부 시절에 배웠지만 까먹은 통계를 복습하고 텐서플로1과 2를 배우고, 파이토치를 배우면서 쉴새없이 달려왔다. 온갖 온라인 데이터 대회에, 연구실의 프로젝트에, 학술대회 발표에, 논문 출판까지 할 수 있는 건 모두 해보았다. 그런 과정에서 나름의 성과도 나왔다. 부족하지만 수상을 했고, 국문 논문도 출판할 수 있었다.
엉엉 울면서 석사논문을 마쳤음에도 나는 박사과정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약 1년 반 뒤, 현재 내가 맞이하고 있는 건 트럼프로 인해서 예산 삭감당한 내 박사과정 지원 단과대들과 수많은 불합격이다.
사실 처음에는 괜찮았던 것 같다. 괜찮은 학과도 있겠지만, 내가 지원한 학과 단과대는 NIH와 밀접하게 연관된 연구실들이 많고 심지어 인기도 있다. 그러니 비자가 중간에 중단될지도 모르는 인터내셔널을 뽑지 않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유럽을 다시 지원하거나 한국에서 어렵더라도 취직하도록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했다.
회사 면접 탈락 소식을 들은 날, 갑자기 지원한 한 학교에서 장학금 있는 석사 합격을 통보했다. 초반의 언질과 다르게 적은 퍼센티지의 장학금이었다. 물론 알고는 있다. 석사에게 장학금 자체가 굉장히 귀하다는 것을. 그와 별개로 뭔가 내 안에서 무너지는게 느껴졌다. 참고 있던 게 터진건지 잘 모르겠다. 웃기는 일이다. 그 많은 탈락이 아니라 오히려 이 합격에 더 슬퍼한다는게.
대학원을 괜히 간 걸까? 내 능력이 되지 않는데, 대학원을 욕심내서 여기까지 오게 된 걸까? 석사 학위가 있으면 있다고 어떤 곳에서는 지나친 스펙이라고 반기지 않고, 어떤 곳에서는 박사가 아니라서 또는 더 순혈 전공에 가깝지 않아서 원하지 않는다. 대학원에서 조교로 일한 경력도 인턴으로 일한 경력도 직접 연관이 없으면 그냥 의미 없다고 판단 받는다
박사라는 꿈을 가진 게 과분했을까? 아니면 트럼프가 대선 후보로 나온 순간부터 바로 접어야 했을까? 바로 국내박사로 돌려야 했던걸까? 내가 박사를 하기에 연구에 대한 사랑이 부족했던 걸까? 내 연구가 필요하지 않은 한심한 연구였던 걸까?
수많은 질문이 스쳐 지나간다. 요새 나는 가만히 앉아 있다가 갑자기 눈시울을 붉히고 눈물을 줄줄 흘리는 수준이다. 저 질문들에 더해져서 대답하지 못하는 질문들만 쌓여간다. 누군가는 국내 박사과정이 있지 않냐고 할 수도 모르지만, 이제 박사과정의 기회가 주어진대도 나스스로 잘 모르겠다. 돌고 도느라 나이만 먹은 것 같다. 부서지고 무너진 상태로 계속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작성하고 수정하면서 나는 박사과정이라는 진로와 이별하는 과정 중이다. 끝이 있기를 바라면서.
이 엉망진창이고 감수성 넘치는 글을 쓰게 된 건 나 스스로를 자책하는 것과 별개로 어드미션이 지난하고 고단했기 때문이다. 이것저것 찾아보면서 올해 어드미션에 성공하신 분들도 있지만, 불합격하신 분들도 제법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아마 불합격은 보통 많이 글을 쓰지 않으시니 더 많은 분이 계시지 않을까 추측한다. 실제로 유학에서 재수는 생각보다 흔한 걸로 알고 있다. (나는 미국 유학 재수를 현재 생각하지 않는 것과 별개로) 그래서 우울감 해소를 겸해서 글을 써본다.